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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동네였다. 강북이라지만 이만하면 도시 복판인데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저놈은 뭔가 싶었다.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몇 번 고개를 들던 승은 새로 인화해낸 사진을 체크하며 다음 소리를 기다렸다. 헌데 녀석은 잠에 빠져 버렸는지 재미를 잃었는지 더 울지 않았다.
채 물기가 덜 가신 흑백사진을 살핀 뒤 불만스럽게 집어내는데, 손끝에서 사진이 미끄러졌다. 방바닥에 허리를 굽히고 주워 올리던 그는 책 묶음에 걸려 휘청거리다가 아무렇게나 널린 짐들을 발로 찼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지만 무엇보다 핸드폰에 계속 들어오던 아내의 메시지가 그를 성가시게 하고 있었다.
다음 사진을 파일지에 놓았다. 칼로 새긴 것처럼 날카롭게 볼이 패인 노인이 시비 걸 듯 쏘아보는 눈매는 마음에 들었지만, 턱 부분에 노출 광을 너무 쪼여 수염 전체가 옥수수자루의 털들처럼 뭉개져 있었다. 구겨버리고 담배를 찾았다.
남은 건 두 장뿐. 믿는 구석이 있어서 앞의 것들을 쉬 버렸는데, 오늘 작업 분 중 제일 낫다 싶어 남겨둔 두 장도 컨트라스에 각각 흠이 보였다. 열악하다 못해 원시적인 작업환경에서 치른 밤샘 작업이 허탕으로 끝나고, 창마다 담요를 치며 궁상을 더 떨어야 하나 생각하니 지루했다. 담배만 빨던 승은 문을 부수듯 여닫고 집 밖으로 나갔다.
나가봤자 아는 데도 없었다.
아직도 낯이 선 아파트 주변을 서성이는데 또 닭소리가 들렸다.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고 새벽부터 도시의 소음이 들끓는 동네에서 때 없이 울어대는 저 녀석은 무슨 생뚱한 물건인가 싶었다. 산책로에 서 있던 그는 동생 연두에게서 얻어들은 소문도 생각나고 해서 모처럼 닭 얼굴이나 구경하자고 비탈길을 내려갔다.
작은 산 하나를 거의 먹어치운 새 아파트 군락으로 일대는 단조롭지만 깔끔한 분위기였다. 단지 밖으로 경사를 이룬 나선형 찻길 구비마다 높다랗게 조성된 축대 위로 개나리가 활짝 폈고, 꽃 부근에선 개와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축대 몇을 지나 터벅터벅 내려가다 샛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곧 차 한 대도 지나기 어렵게 좁아지고 젖은 흙내를 풍기면서 아파트 단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곱창처럼 아무렇게나 얽힌 재래식 골목마다 구석구석 오래된 집들이 까맣게 박혀 있었다.
내키는 대로 걸어 내려가는데 유혹하듯 또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는 그가 두세 갈래 길 어귀에서 머뭇거릴 때마다 모이를 던지듯 길게 뻗어왔다.
돌아보니 연두네 아파트는 저만치 위로 멀어졌고 어느새 그는 버스가 지나는 찻길 가까이 내려와 있었다. 왕왕거리는 야채트럭의 마이크 소리가 닭 울음을 삼켜버려 멍청히 서 있는데, 어쩐 일인지 소리는 거기서 완전히 그쳐버렸다.
주머니에서 뒤져낸 동전을 짤랑거리며 슈퍼로 들어갔다.
“닭이 울던데.”
“예?”
“이쪽 어디에 닭 살죠?”
‘아, 그거요?’ 주인여자가 골목 하나를 가리키며, ‘저기 저 파란 화분에 파 심어 놓은 집’이라고 일러주고 그를 훑어봤다. 눈길도 비키지 않고 쫀쫀히 쳐다보는 늙은 얼굴이 짜증 났지만, 대낮에 닭 우는 소리를 묻는 삼십 대 남자가 특이하다면 특이하기도 할 것이어서 승은 음료 캔을 따각거리며 슈퍼 앞을 떠났다.
파가 아니라 무슨 풀 더미를 잔뜩 우겨 심은 화분을 옥상에 올린 집이 보이고, 다행히 청색 대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의외로 널따란 마당을 가진 구식 단층집이었다.
초봄 나무 아래 플라스틱 물통 두 개가 놓인 화단을 훔쳐봤다. 통마다 물이 담겨 한낮의 쨍쨍한 햇빛을 튕겨내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반사적으로 옆구리를 만진 그는 카메라가 없어 아쉬워했다. 움직일 때마다 각도에 따라 번쩍이는 수면이 최상의 시간대를 만나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재빨리 안으로 들어섰다. 여차하면 비슷한 주소를 대며 집을 찾는 중이라고 얼버무릴 배짱이었다. 일자집 대청마루에 가구 몇 개가 놓였을 뿐, 인기척이 없고 너무 조용한데다가 닭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 없는 집일수록 빨리 나가는 게 좋지 싶었지만, 기왕에 그를 꼬여낸 닭 면상을 꼭 보고 싶었다.
사진 찍기 불편할 때마다 발동시키는 나름의 용기전법으로, 어깨뼈에 힘을 주고 앞뒤 일은 잊기로 하고 대상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어려서부터 유독 낯을 가렸던 그가 처음 사진을 배우려고 학원을 찾았을 때만 해도 노출이나 앵글 맞추기보다 사람 면전에 카메라 대는 게 더 어려워 쩔쩔맸었다. 하지만 몇 달 내내 가로수에 걸린 비닐조각이나 벽에 세운 자전거 따위만 찍다가 실습작 비평 시간에 선생에게 개망신을 당한 뒤, 기술적 테크닉 따윈 집어치우고 혼자서 자기 학대에 가까운 용기훈련부터 쌓은 뒤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들이미는 데 주저한 적이 없었다.
마당 여기저기에 닭똥이 널려 있었다. 닭똥 같은 눈물이란 엽기적인 말이 대체 어떻게 생겨난 걸까 실소하는데, 맨 구석 쪽에 쪽마루 달린 끝방 문이 헐겁게 닫힌 게 눈에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