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문학상 심사평 (소설 부문)
소설 부문 응모작은 모두 99편이었다. 습작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소설들도 많았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만은 뜨거워 보였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서 논의의 대상이 된 소설은 「남태평양에는 쿠로마구로가 산다」, 「가면극」, 「귀」, 「동거」 등이다.
「남태평양에는 쿠로마구로가 산다」는 원양어선을 타다가 사라져버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쿠로마구로떼’의 이미지에 투영한 소설이다. 안정감 있고 무리 없는 전개가 장점인 반면, 뚜렷한 문제의식이나 눈에 띄는 서사적 장치가 없어 밋밋한 인상을 주었다.
「가면극」은 지하철에서 ‘채칼’을 파는 한 청년을 통해 지금 젊은 세대가 처한 사회적, 심리적 상황을 인상적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얼굴에 오이를 붙이고 채칼을 파는 자신의 모습을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가면극 배우에 빗댄 심리 묘사가 세대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문장이 거칠고 불안정한 것이 결정적인 흠이었다.
동상 걸린 귀를 통해 고통에 대한 방어심리를 형상화한 「귀」는 참신하고 감각적인 면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부풀어오른 한쪽 귀에서 ‘낯선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잊으려 노력해왔던 고통스런 기억들이 되살아난다는 상상력이 무척 흥미로웠다. 다만 전체적으로 소품이라는 느낌이 들고 세부적 전개가 다소 느슨하여 아쉬움을 갖게 했다.
「동거」에서는 바퀴벌레와 개미의 상징성으로 소설 전체를 장악하는 솜씨가 돋보였다. 유년의 기억, 아내와의 관계, 방역업체 직원이라는 주인공의 직업까지, 상징적 고리로 촘촘히 엮어나간 밀도 있는 소설이었다. 그럼에도 가족에 대한 익숙한 관념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최종적으로 「귀」와 「동거」를 놓고 고민하다가, 두 작품을 모두 가작으로 내기로 결정했다. 제1회 ‘나비문학상’에 걸었던 기대에 부족함이 없는 한 편의 당선작을 고르지 못해 아쉽지만, 장단점이 분명하게 엇갈리고 색깔이 대조적인 두 소설을 함께 뽑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응모작들 가운데 가장 큰 가능성을 보여준 두 편의 소설에 나란히 칭찬과 격려를 보내는 한편, 이제 막 등단하는 두 신인작가가 겸허하고도 결연한 마음으로 더욱 분발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더불어 올해 첫 걸음을 뗀 ‘나비문학상’이 참신하고 역량 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믿음직한 통로로 자리잡아가기를 기대해본다. 제1회 ‘나비문학상’ 소설 부문에 응모해준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예심 심사위원 | 김수영 김정희 박진 백가흠 서진 차미령
본심 심사위원 | 도정일 박진 최수철 최인석 황석영
수상소감
조미경
수다가 좋다. 한 시간 정도 수화기를 들고 떠들어대는 것은 일도 아니다. 난 이미 어릴 때부터 발화의 쾌락을 알아버렸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교묘하게 내 순서를 낚아채는 법을 터득했고 말을 하고 있으면 몸 속 깊은 어딘가에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도 있었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내를 만나 결혼을 했고 먹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딸도 낳았다. 우리 가족은 입을 다물고 잠들어야하는 밤을 제일 견디기 힘들어하고 끝없이 쏟아지는 이야기에 동참할 수 없을 때 상처받고 서로를 원망한다. 하루는 남편이 바로 입술 끝에서 증발해버리는 말들을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바로 나비의 문을 여는 일.
봄소식과 함께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든 딸아이가 이야기를 주문했다. 하지만 내 입은 딱딱하게 굳은 번데기처럼 천장 끝에 매달려 대롱대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는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다 됐다고 재촉하는데 정작 나는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결국 아이의 베갯머리를 전래동화가 녹음된 콤팩트디스크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수다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모두 소설이 되지 않는다는 걸 왜 진작 몰랐을까.
앞으로 다가올 침묵의 밤, 나는 하얀 나비 떼를 쫓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진정한 이야기를 찾아 첫발을 어디에 놓아야할지 고민하면서 말이다.
항상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준 남편과 예쁜 딸 고은이, 한 달 후면 태어날 바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소설 쓰는데 큰 힘이 되어주고 한 시간 이상씩 수화기를 붙들어준 양혜영 선배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문화웹진 나비>에 첫발을 허락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문화웹진 나비 관계자분들께 마음깊이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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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 소개
조미경
나를 쏘옥 빼닮은 딸아이와 동화책을 읽으며 둘째를 기다리고 있다.
수상소감
김재아
글은 이미 한 페이지를 넘어가고 있다. 거창한 소감문을 쓰지 말아야지 생각했지만 또 다른 자아가 자꾸만 나타나 자서전이라도 쓸 기세를 보인다. 나는 키보드에서 접신하는 무당처럼 춤추는 손가락을 멈추고 마우스를 움직여 앞의 단락을 통째로 지운다. 살아남은 단락을 소리 내어 읽는다.
‘나비문학상 공고를 보았을 때, 그저 저기서 등단하면 참 멋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은 문예지나 신문처럼 꼭 사서봐야만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더 많은 대중들에게 다가갈 기회라 여겼다. 더군다나 7개 출판사와 YES24가 함께하니 매력적일 수밖에…’
소감문이 내가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할 때처럼 예의바르고 재미없다. 비슷한 분위기의 중간 단락을 또 지운다. 다음 단락에서는 마우스를 멈추고 글을 읽는다. 이 부분은 부끄러워도 살려두어야겠다.
‘자뻑과 자학을 오가며 글을 썼다. 글 좀 쓴다는 자뻑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자학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과 일기는 달랐다. 매일 자학을 하며 소설을 쓰고, 일기를 쓰며 자뻑했다. 오늘 나의 등단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소설을 쓸 때면 성문종합영어를 펼쳐 영문장을 쓰는 기분이다. 다시 자학한다.’
모든 소감문이 지루한 이유는 감사의 인사 때문이리라. 나는 그 뒤를 차지하는 열 줄의 감사 인사를 읽고 암담하다. 제대로 인사를 한다면 이 소감문은 아버지 제사 때 엄마가 삼십 분간 읽었던 금강경 분량이 될지도 모르겠다. 안 할 수도 없는 일, 랩처럼 이름을 줄줄이 내뱉어보면 어떨까. 나는 그들의 이름을 배치해본다. 하지만 운을 맞춘 랩은 될 수 없다. 이 소감문은 재미없는 호명으로 끝난다.
‘박성원 작가님, 김태용 작가님, 이평재 작가님, 어머니, 가족들, 일유, 미희, 수현, 진화, 친구들, 문화웹진 나비의 편집인 도정일 황석영 선생님과 편집위원들, 심사위원들, 편집간사님, 재단 식구들, 일분소설 식구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당신들.
평생 감사해야할 이 모든 분들께 성장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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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 소개
김재아
낮에는 공익재단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밤과 새벽에는 무의식 독립잡지 ‘뚜껑’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