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왜 논픽션인가
모든 선언과 운동은 역설의 언어로 씌어지며, 자신의 비활동성을 은폐한다. ‘논픽션은 살아있다’는 타이틀로 진행될 <웹진 나비>의 좌담 역시, 논픽션이 멀쩡히 살아 있다면 필요 없는 선언이며 운동이다. ‘논픽션은 살아있다’는 타이틀은 논픽션이 살해당하거나 자살하지는 않았다하더라도, 적어도 가사 상태에 있음을 말해준다.
‘논픽션은 살아있다’란 타이틀이 역설과 은폐로서의 논픽션의 죽음을 가리키고 있다면, 우리가 심심찮게 듣게 되는 ‘문학의 죽음’이나 ‘소설의 죽음’은, 그 마저도 어쩌다 듣게 되는 ‘논픽션은 살아있다’란 말과 달리, 그 빈번함 자체로 활기를 느끼게 해준다. 한국 사회에서 문학의 위상이 예전에 견주어 위축된 것은 물론 사실이지만, 비문학적인 글, 곧 논픽션의 입장에서 보면 문학은 시퍼렇게 살아있다.
생각해보면, 교양은 상당히 폭이 넓은 세계고 글쓰기 역시 다양한 종류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확실히 ‘장르 피라미드’ 내지 ‘장르 계급’같은 게 있어서, 교양하면 곧바로 문학 작품을 읽는 걸 연상하고, 다양다종한 글쓰기 가운데 문학적 글쓰기가 부동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방금 ‘장르 피라미드’를 얘기했지만, 실은 그 피라미드조차 시·소설·수필·희곡 같은 문학적 글쓰기로만 이루어져 있지, 비문학적 글쓰기는 아예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못했다. 이렇듯 문학적 글쓰기가 비대해진 사회, 그리하여 문학적 글쓰기가 비문학적 글쓰기를 천대하고, 따라서 독자들이 그것을 외면하는 사회가 당할 횡액은 실로 ‘반문학적’이다.
예를 들자. 지금은 금기가 되어버린 비비케이(BBK)사건, 또는 작년에 벌어진 부산실내사격장 화재 사건의 경우, 제대로 된 사회에서라면 거의 반년 안에 스무 권이 넘는 논픽션이 쏟아져 나온다. 그 가운데 어느 한 종이 수십 만 부 이상 팔리고, 그 책이 시중의 화제가 되고, 기사와 칼럼에 오르내리는 사회가, 고작 시집이나 소설 몇 권을 읽는 것으로 평생 교양인 행세가 가능한 나라보다 훨씬 건강하고 바람직하다. 문학적 글쓰기가 너무 강한 사회에서는 온갖 사회적 의제와 다양한 소재가 문학이란 대롱으로 흡수되어 버리고 만다. 문학적 글쓰기의 존재성을 무시하거나 외면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문학의 대롱이 한 번 입을 댄 대상은, 활자와 방송 매체가 훑고 간 사건 현장처럼 더 이상 거들떠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정/처녀성을 잃은 현장들. 그리고 쓰나미 같은 무지막지한 사회적 건망증. 그야말로 반문학적 악순환이다.
소설과 시만이 글쓰기의 왕도이며 나머지는 모두 잡문인 세계에서, 문학만 계속 건재할 수 있고 독주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건 크나 큰 착각이다. 비문학적인 글쓰기가 그처럼 천대받기 때문에, 논픽션에 맞춤한 주제와 소재들을 가지고 논픽션을 써야 할 사람들이 ‘팩션[faction←fact+fiction]’으로 월경하고 마는 오늘의 작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소위 주류 문단이라는 순수 문학계(?)가 팩션이라는 문학판의 ‘베스’에게 당하는 수난은 그러므로 인과응보이겠다. 도리어 애처로운 것은, 전체주의적인 문학적 글쓰기가 다종해야 할 글쓰기의 생태계를 파괴시킨 현장에서,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치열한 사실 확인으로 무장해야 할 논픽션 정신이 팩션이란 수상한 ‘허구의 서사’에 오염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문학과 논픽션은 제대로 대립각을 세울 때다. 각을 세우고, 대화를 할 때다.
논픽션은 말 그대로 픽션이 아닌 모든 것이다. 그래서 문학적 글쓰기보다 훨씬 다채로운 형식과 드넓은 대상을 보유한다. ‘죽어서 살아 있는 일부 문학’을 근경에 두고 ‘논픽션은 살아있다’를 진행할 우리는, 우리 시대의 논픽션 가운데 ‘손’이 아니라 ‘발’로 쓴,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현장을 누빈, 상상력보다는 비판적 성찰력이 돋보이는 텍스트를 골라 읽으며, 저자와 독자 사이에 가교를 만들고자 한다. 두 사람이 놓는 가교가 독자나 저자 모두에게 구조적으로 안전하거나 미학적으로 완벽하지 않을 때도 많을 것이다. 우리들은 논픽션이 시민사회의 정치와 윤리, 미학을 지켜내는 보루라고 믿으며, 논픽션과 논픽션 작가들을 뜨겁게 지지한다. 논픽션이 살아야 인간이 산다. 논픽션이 살아야 문학이 산다. 논픽션은 살아있다!
2010년 2월, 이문재와 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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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문재
시인.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생태적 상상력’의 시인으로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내가 만난 시와 시인』,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등이 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과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1987년 희곡 「실내극」을 발표, 1988년 단편소설 「펠리칸」을 발표하며 극작가, 소설가를 겸업하기 시작했다. 저서로 『장정일 삼국지』 전 10권, 『장정일의 공부』, 『고르비 전당포』, 『장정일의 독서일기』 1~7권, 『햄버거에 대한 명상』, 『구월의 이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