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청각이에요.”
“청각?”
“해초의 일종이죠. 청각. 일본에서는 해송(海松)이라고 해요. 소나무 가지같이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나. 이 근처에서는 청각채라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바다의 소나무라서 해송?”
“응, 옛날에는 다들 먹었는데 요즘은 웬만해서는 채취를 안 해요. 노인네들이나 그 맛이 그립다고 직접 캐러가고 그러지. 식초에 무치거나 삶아서 간장을 끼얹어 먹어요. 나도 어렸을 때 몇 번 먹어봤는데 맛있다기보다, 뭐냐, 좀 별로였던 거 같아.”
“거칠거칠하고 스펀지 같고 좀 질겨요. 색깔도 덤덤하지만 맛도 덤덤해.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걸 안 먹으면 겨울이 온 것 같지 않다고들 하는데, 나도 벌써 먹어본 지 오래됐네.” 옆에서 아내가 말을 끼웠다. 그리고 장난기 가득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에 먼 바다 속의 청각을 빗댄 오래된 노래가 있다던데? 아, 그리고 천황님. 천황님 댁에 그 신상제(新嘗祭)라나 하는 게 있잖아요. 그 제사에 아직도 공양물로 올린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공양은 해도 천황님은 안 드실 거야, 분명.”
“예에, 사랑하는 사람하고 천황님.”
“아이, 아니지, 그걸 한데 엮으면 안 돼. 그 두 가지는 따로따로.”
부부는 아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눈 속에서 아직 어두운 초록색은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잔교에서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연푸른 물속에서 묵직해 보이는 막처럼 움직였다. 바닷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아마 물속에서 자유분방하게 가지를 펼치고 오른쪽 왼쪽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리라. 내가 바닷가에서 주워온 해초 중에도 청각이 있었는지 모른다. 손에 들자마자 한천처럼 주르륵 무너져버린 짙은 초록빛 해초. 어쩌면 그게 청각이었을까.
“바위에도 있을 테니까 한번 따봐요. 하지만 발밑을 특히 조심해야 돼. 아침 바닷물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니거든. 아차 하는 사이에 발목이 빠지는 일도 있어요.”
나는 빙그레 웃었다.
“청각은 그냥 구경만 할래요. 무슨 맛인지 모르고 있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게다가 내가 수영을 못해요.”
“그래요? 맥주병이시구먼. 우리도 김은 잘 만들지만 실은 맥주병이야.”
부부는 얼굴을 마주보며 다시 아하하 하고 웃었다.
잔교에서 집으로 통하는 절벽으로 올라서자 겨울의 석양이 한눈에 내다보였다. 바다가 빨갛게 빛난다. 겨울바람 속에 시시각각 하늘의 붉은 기운은 짙어져서 단숨에 일몰의 종말이 온다. 무섭도록 빠른 태양의 낙하. 그 태양을 좇아가듯이 겨울새 떼가 숨을 헐떡이며 바닷가를 가로지른다. 물결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리라. 조금씩 청각 군생은 거뭇거뭇한 바다 밑으로 숨어들었다. 일을 끝냈는지 언덕 아래에서 한 대의 트럭이 빠져나간다. 그 부부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후 일곱시. 오늘도 느릿느릿한 차임벨 소리와 함께 할머니에 대한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걸 들으면서 나는 “이제 다 알아. 당신에 대해서는 다 안다니까”라고 생각했다. 단지 수없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 같은 마음이 들었다. 가까운 데 있었는데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가족이 있었어도 할머니의 옛날에는 분명 치자나무 꽃이 냄새를 풍기는 밤이 있었을 것이다. 바짝 마른 치차나무 꽃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꿈도 꾸었을 것이다. 썩은 냄새 역시 떠도는 밤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바로 곁을 그 사람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아, 어서 와.”
바깥의 찬 기운을 품은 고양이의 몸이 내 발목을 비벼대는 걸 깨달은 뒤에도 나는 베란다 새시 문을 열어놓은 채 오래도록 캄캄한 어둠을 보고 있었다. 곳곳에서 나무들이 가지를 흔들며 울었다. 그 소리에 섞여 사락사락 흔들리는 청각의 어두운 초록이 퍼져간다. 동시에 복사뼈까지 물에 적시며 바위를 건너가는 할머니의 웅크린 등이 그림자처럼 떠올랐다. 팔이 달린 긴 앞치마에 검은 바지를 입은 할머니는 춤추듯이 위태로운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걸어간다. 온몸에 힘이 넘친다. 행복해 보인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면 언젠가 청각을 닮은 숲으로 향하는 미래의 나일까. 할머니의 목소리가 어디에선가 다가온다.
“청각 따러가. 청각 떼를 만나러. 가지 않고서는 그리움이 매듭이 지어지질 않아.”
“그렇게 그리워요?”
“응, 그립지. 그립고 쓸쓸해.”
청각의 군생은 무성한 소나무 잎처럼 할머니의 온몸을 휘감고 한 덩어리가 되어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
철썩철썩 바닷물이 차오르는 소리가 났다. 그 바닷물 저 너머에서 환한 빛이 비쳐든다. 눈을 가늘게 하고서 바라보니 그건 등대. 새하얀 등대가 우주선처럼 떠올라 있다. 이런 바닷가 깊은 곳까지도 곶의 등대 불빛이 와 닿는 것일까. 과거로부터 비춰지는 것처럼 누르스름한 빛을 띤 조명의 동그라미 속에 이 집에 모였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등대로, 등대로. 그래, 나도 언젠가 등대로 가지 않고서는 허공에 떠버린 시간은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다.
그건 내 타임머신. 더 이상 그곳에 갈 수 없는 사람 대신 한 번 타보는 거다. 그곳에서 아무도 못 본 빛을 보고 오는 것이다.
그렇게 결심했을 때, 고양이가 밥을 달라고 내 쪽을 올려다보며 날카롭게 냐아, 냐아옹, 배고파, 하고 울었다. 고양이를 안아들고 뺨을 비볐다. 어디서 놀고 왔는지 만족스러운 듯한 온몸에서 문득 시든 풀 냄새가 났다.
* 이로써 <가와바타 야스나리 상 수상 단편> 연재가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