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업자의 작업 창고에서는 김을 씻는 모터 소리가 울렸다. 나는 급경사의 절벽 길에서 갯벌로 내려가 바다 쪽으로 튀어나간 잔교로 향했다. 간소한 목재의 조립식 작업 창고 안에는 그물 다발이며 플라스틱 바구니, 굵은 파이프에 둘둘 말아놓은 나일론 로프 등이 쌓여 있다. 그 한가운데서 굴뚝이 달린 거대한 스토브가 소리를 내며 타고 있지만 활짝 열어놓은 창고 안에서는 몸을 녹인다기보다 손을 덥히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을 것 같았다. 안에서 중년 부부가 수확한 김을 틀이 있는 나무 상자에 깔고 있었다. 바닷속에 쳐놓은 김 양식의 섶나무 가지에서 흡인식 장치로 빨아들인 김은 잔교에서 창고 입구까지 늘어선 수많은 양동이에 흐물흐물 빽빽하게 차 있었다. 묵직한 윤기가 있는 느른한 김에서 비릿한 바다향이 피어올랐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산책 나왔어요?”
“예.”
“이번에는 계속 있는 거예요?”
“아뇨, 이번에도 며칠 뒤면 돌아가요.”
몇 번인가 마주친 적이 있는 부부다. 도회지에서 이따금 찾아오는 중년 여자를 그들은 항상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묵한 눈꺼풀 안에 작고 검은 눈을 가진 남편과 머리를 빗어 올려 넓은 이마를 드러낸 꾸밈새 없는 아내. 어머니와 여동생과도 만났던 적이 있는 이 마을 사람은 무지한 우리 모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굴을 캘 때는 바위에 찰싹 달라붙은 것이 아니라 바닷가에 떠 있는 뗏목의 로프에 붙은 걸 캐는 게 안전하고 맛있다, 막 채취한 김은 올리브오일에 볶은 잔멸치를 넣어 스파게티에 넣으면 좋다, 근처에 자생하는 나리꽃 구근은 튀김을 해서 먹는다, 참억새나 새는 꺾은 뒤에 아무 데나 버려서는 안 된다, 나무나 풀꽃의 발치에 깔아주면 비료도 되고 흙의 건조를 막아주니까.
나는 진주의 핵을 넣는 방법도 배웠지만 상세한 순서를 기억한 건 불과 며칠뿐이고 눈 깜빡할 사이에 죄다 잊어버렸다. 이 부부는 진주와 김, 양쪽 다 양식업을 하고 있다.
퐁퐁퐁 하고 증기선의 배기음 같은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걸 보니 아직도 바다 어딘가에 김을 수확하는 배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부부의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창고를 떠나 평소처럼 잔교 끝에 서서 바닷속을 들여다보았다. 물결에 씻기는 잔교 기둥에 굴이며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서 치이치이 하는 묘한 소리를 내고 있다. 창고와 가까운 갯벌에는 굴 껍질이 이 또한 다닥다닥 흩어져 있다. 입 벌린 껍질 속에 거뭇거뭇한 흙을 가득 담고 침묵하는 죽은 굴들. 그 한편에서 살아 있는 굴은 껍질에 새끼 굴을 몇 개나 들쳐 업어서 어디가 머리고 어디가 꽁지인지 알 수 없다. 서로 겹쳐져 비비적거리고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 암벽과 잔교 기둥에 우둘투둘한 초록을 새기고 있다. 생식(生殖)의 원시가 그대로 조형이 된 듯한 그로테스크한 모습이다. 이런 모습으로 대체 굴은 어떤 일생을 보내는 걸까. 조개의 일생에도 시간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흘러갈 텐데, 나는 굴의 일생이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 몸을 겹치고 생식의 순간을 맞이하는 걸까. 껍질을 열고 태내의 알을 찬찬히 살펴봤지만 전혀 다른 종에 대한 생경함이 있을 뿐이었다. 그 깊은 침묵이 갯벌에도, 파도가 철썩철썩 들이치는 부교 아래에도 은밀히 가로누워 있다.
겨울의 갯벌은 황량했다. 황량한 그만큼 그 진흙 속에 몸을 묻고 드러눕고 싶은 그리움이 엄습해온다. 한 번쯤이라면 굴이 되어보는 것도 좋겠다. 나는 인간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헤어진 남자들의 얼굴이나 떠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꽉 다문 껍질 속에 밀어 넣고 앞으로도 내내 살아갈 수 있으리라. 뱀의 허물을 발견했을 때처럼, 그 단단한 것과 교접하고 서로 지분거리며 하룻밤을 갯벌에서 보내는 것이다. 굴의 죽음을, 굴의 생식을 알 때까지.
잔교에서 한 떼의 굴 덩어리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진주의 핵을 넣는 우아한 핀셋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슬금슬금 살덩이의 주름으로 들어가는 가느다란 은빛 침. 여자의 성기를 닮은 부드러운 조개 살이 파르르 긴장하며 몸 안에 침입한 핵을 받아들이는 순간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런 시간이 내게도 있었다. 내 안에 뻗어온 핵은 모두 치자나무 꽃이 떨어져 바짝 마르는 꿈속에서 멸해갔다. 아직 가까이에 있어, 아직은 괜찮아, 생각하는 족족 죽고 말았던 나의 핵들. 내 안을 지나간 수없이 차고 기울었던 달(月). 쾌감인지 고통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일순 몸의 깊은 곳을 스쳤다. 분명 굴은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 인간의 일을. 그럼 그걸로 좋은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꾸욱 감았을 때, 잔교 주위의 바닷물이 크게 출렁이며 작은 배가 다른 작업 창고로 다가가는 게 보였다. 바다 안쪽에서 모터 소리를 내고 있던 김 채취선이 돌아온 것이다.
잔교 아래 가 있던 시선을 돌려 물결이 일렁이는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변함없이 바닷물은 중간에서 색깔이 변하고 이따금 뭔가가 하늘하늘 움직인다. 어두운 빛을 띤 그 암록색이다. 나는 천천히 잔교에서 창고로 돌아가 김과 격투하고 있는 부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등판만 석유스토브 덕분에 따스해진다. 일하는 손맡을 한참이나 바라본 뒤에 꼭 한번 묻고 싶었던 것을 입 밖에 냈다.
“저 너머에 거뭇거뭇한 초록색이 있던데 그건 뭐예요? 역시 김인가요? 물이 빠지면 잘 보이는 이상한 초록색 부분 있잖아요.”
부부는 까매진 손을 멈추고 “어디?”라고 바다 쪽으로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다. 남편의 우묵한 눈꺼풀이 몇 번 깜빡거린 끝에 “아, 저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