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지은 지 삼 년째 되던 봄에는 나와 여동생, 어머니까지 함께 온종일 베란다의 방부제 칠을 했다. 장갑에 작업복을 차려 입고 머리를 수건으로 포옥 감싸고 목재가 들뜬 부분이 있으면 쐐기를 질러 넣고 못을 박았다. 기분 좋은 봄바람은 베란다 위에도 아래에도 사방오리나무의 꽃가루를 실어왔다. 집의 배경이 된 작은 연못에서 거대한 거북이를 발견한 것도 그해 봄이었다. 인적 없는 밭두렁 길에서 뱀밥풀이 무리를 지어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반나절 동안 껍질을 벗겨 쌉싸래한 달걀 탕을 해 먹은 것도 그해 봄이다.
한 바퀴 체험한 사계절의 행사는 이 집을 찾아올 때마다 으레 되풀이되어서 몇 번이나 우리는 방부제를 다시 칠하고 달래를 캐러가고 뱀밥풀의 달걀 탕을 먹었다. 거북이의 등판이 해마다 큼직해지는 것을 확인하고, 여름에는 ‘다리가 나오는 참나리’가 정원이나 길가 여기저기서 붉은 머리를 쳐드는 것을 보았다.
지금 이 집은 고요하다. 이제는 어머니도 여동생도 이 집을 찾아오는 일은 없다. 어머니는 이 년 전에 다시 새로운 병에 걸려 이제는 휠체어를 이용해야 한다. 하루하루의 생활은 뿌리째 바뀌어 외출은 집 근처에서 재활을 겸한 짧은 산책뿐. 혼자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건 이미 어려운 일이 되었다. 남동생 부부의 두 조카 중 큰아이는 북녘 도시의 대학을 선택해 혼자 떨어져 나갔고 작은 아이는 진즉에 이 집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남자친구와 학교 친구들과의 친밀함에 비교하면 이 집은 이미 ‘색 바랜 여름의 장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항상 함께 와주던 여동생은 직장이 바뀌면서 일이 바빠져서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고 했다.
“예전처럼 느긋하게 지낼 수가 없어”라고 잠이 부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다 돌아오는 휴일에는 온종일 잠이나 자고 싶어. 잠이라도 자야 그럭저럭 기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녀에게도 ‘최후의 만찬’이나 ‘몸속의 배신자’가 슬슬 찾아오는 시기인 것이다.
그때 그 노래들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나는 바람에 실려간 여동생의 소프라노와 차례차례 우리의 입을 뚫고 나왔던 불안정한 음정의 노래를 그리워한다.
여전히 의기양양한 건 고양이뿐이다. 몇 년 전에 엉뚱한 일로 받아다 기르게 된 내 여행의 반려자 고양이는 “슬슬 가볼까?”라고 말을 건네면 곧바로 “냐옹” 하고 대답한다. 이곳에 오면 정원이며 숲을 겁내는 법도 없이 유유히 싸돌아다닌다. 이따금 내 쪽을 돌아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부드러운 소리로 운다. “좀더 먼 곳까지 가도 돼?”, “어때, 나랑 함께 가지 않을래?”라고 말하듯이.
겨울바람 속을 뚫고 밖으로 나가는 고양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동그랗게 큰 눈을 한껏 크게 뜨고서 “저기, 나는 오늘도 좀 늦을 거 같으니까 잘 부탁해”라고 들리지 않는 소리로 덧붙인다.
알았어. 하지만 일곱시까지는 돌아와야 해. 이제 기다리는 건 익숙해졌어. 그러니까 잘 다녀와. 이곳에는 너의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적합한 울퉁불퉁한 길이 있고, 뛰어오르기에 딱 좋은 나무가 몇 그루나 있지? 털 뭉치를 토해내기 위한 신선한 풀도 얼마든지 있고 발톱을 갈아댈 수 있는 생나무 판자도 내다버릴 만큼 많아. 혹시 무서운 것이 있을 때는 큰 소리로 울어야 해. 네가 울면 나도 틀림없이 큰 소리로 대답해줄 테니까. 그게 지금 우리의 노래니까.
오늘 아침에도 또다시 할머니에 대한 정보를 바란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수색은 아직도 계속되는 모양이다.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는 미리 준비한 메모를 읽는 것인지 처음 방송했을 때와 한마디도 다르지 않아서 할머니가 행방불명이 된 날짜와 시간, 나이, 그 당시의 옷차림을 똑같이 전해주었다. 하루에 두 번씩 듣게 되는 방송 때문에 내 머릿속에는 저절로 할머니의 모습이 새겨졌다. 머리에 쓴 수건과 목에 두른 머플러 때문에 얼굴 모습은 어두운 구멍처럼 보이지만, 팔이 달린 긴 앞치마에 검은 바지를 입은 할머니가 조금씩 조금씩 이쪽으로 다가오는 듯한 마음이 든다.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더 이상 아무도 만날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월 10일. 쾌청. 바람은 조금 불지만 오후의 따스한 빛이 쏟아지고 있다. 예정으로는 사흘 뒤에 도쿄에 볼일이 있다. 겨울딸기는 거의 다 따다가 잼으로 만들어 챙겨두었다. 우선 당장 급한 일거리도 거의 끝나간다. 나는 조금 멀리 길을 돌아 숲 속을 지나서 아래쪽 바닷가로 내려가 김 양식장이 있는 잔교(棧橋)까지 가보기로 했다. 벌써 몇 번이나 바닷가 길을 따라 가본 곳이다. 양식업자가 낸 길을 올라가면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간 곳에서 바닷가 전체를 내다볼 수 있다. 이 바닷가의 겨울 석양은 아름답다.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빨강이 시시각각 변화한다. 그 시간까지 바닷가를 휘적휘적 돌아다니려고 스웨터 위에 코트를 걸치고 발목에는 털실로 짠 레그워머에 장화를 신고 나갔다.
간조 때를 노려 찾아온 보람이 있어서 바닷물은 한참 저 멀리까지 빠져나갔다. 고스란히 드러난 암초며 바위에 새파란 해조와 납작한 조개, 하물용 로프가 가닥가닥 풀린 채 달라붙어 있었다. 미역이나 바닷말 종류일까, 만조 때는 보이지 않던 암록색 층이 먼 바다 밑에서 흔들거렸다. 얕은 부분에서 깊은 부분으로 바뀌는 장소를 뒤덮은 불온한 색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