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마당에서 손에 집히는 대로 시든 나뭇가지를 모아서 태우고, 저녁에는 무 하나를 통째로 끓이는 게 일거리였다. 오늘의 첫번째 일거리는…… 그래, 겨울딸기를 따야지. 그렇게 결정하고 나면 기분은 그 즉시 고양된다. 역 앞 슈퍼마켓에 나갈 때마다 한 시간에 한 대뿐인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이 마을에서 잼 만들기는 아주 중요한 일거리다. 한 냄비 가득 만들면 냉동고에서 반년은 너끈히 간다. 그 반년분의 기쁨이 내게 엄청난 힘을 준다.
겨울딸기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어머니가 놓고 간 야외 식물도감을 들춰보다가 이게 과일의 일종이라는 내용을 보고서 알았다. 학명은 Rubus buergeri Miq. 그 이름으로 상상해보면 블루베리, 블랙베리, 오디와 한 친구인 모양이다. 포도 잎과 모양새가 꼭 닮은 꺼끌꺼끌한 하트 모양의 잎사귀가 겹쳐 나고, 이리저리 뒤엉킨 줄기 여기저기에 새끼손가락 끝마디만한 크기의 루비 빛 열매가 고개를 쳐들고 있다. 수분은 약간 적지만 입에 넣자마자 야생종다운 소박한 새콤함이 입안에 번진다. 처음 겨울딸기를 발견한 해에 설탕을 넣고 졸였더니 보통 딸기보다 훨씬 진한 와인색 잼이 만들어졌다.
스테인리스 바구니가 금세 빨간 열매로 가득 찬다. 마지막으로 이 집에 왔던 게 작년 초가을이었는데 그 이후로 넝쿨은 무성하게 자라나 땅바닥 여기저기에 번식하고 있었다. 집의 지붕을 덮을 만큼 자란 나무들은 마당 대부분을 그늘로 만들고, 그렇게 그늘이 늘어나면서 이끼와 덩굴류가 저절로 번식한다. 모든 것이 자유분방하고 자기 마음대로다. 숲을 걸으면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종류의 버섯이 눈에 들어온다. 미끈미끈한 것, 귀이개 같은 것, 그물 모양, 빨강이나 오렌지 색깔의 반점이 있는 것까지 다양하다. 겨울이 되면서 버섯은 약간 줄었지만 그 대신 덤불 속에는 빨간 열매가 빽빽하게 번성해서 따도 따도 줄지 않았다.
그 곁을 고양이가 느릿느릿 지나간다.
도쿄에서는 맨션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던 고양이가 이곳에서는 하루에 몇 번이고 베란다 문을 들락날락하며 마당에 나가 뛰어논다. 도마뱀이나 매미, 메뚜기, 두더지 등 야생동물과 노는 것을 배운 고양이는 한 번 밖에 나가면 더 이상 캣푸드 통조림 같은 걸로는 불러들일 수가 없다. 고양이는 내 쪽을 한번 흘끔 쳐다보고는 저만치 양지쪽으로 가버린다. 분명 오늘도 양지쪽에서 양지쪽으로 돌아다니며 두더지 구멍을 들여다보고 나무에 올라가기도 하면서 어두워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다. 겨울의 고양이는 잠자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어왔던 나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자꾸만 나가고 싶어 하는 녀석에 깜짝 놀랐다. 언제부턴가 집 안에 불러들이는 건 포기해버렸다. 그저 돌아오기를 기다릴 뿐.
6킬로그램 가까운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는 여행은 힘이 들지만, 베란다 문을 ‘결계(結界)’로 삼아 도시 고양이의 얼굴에서 사냥꾼 고양이로 변모하는 모습을 본 뒤로는 아무리 힘들어도 데려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네 나이를 좀 생각해. 그러다가 허리 삐끗할라. 동물병원이나 페트 호텔에 맡기면 되잖아.”
비슷한 또래의 여자 친구들은 그렇게 경고하지만, 아직 허리가 삐끗한 적은 없다. 고양이도 캐리백에 넣어주자마자 ‘그 집’에 간다는 걸 뻔히 아는지 네 시간 남짓한 여정 동안 별로 보채지 않는다. 처음에는 혹시라도 대소변 실수를 할까 봐 페트용 시트를 몇 장이나 준비했지만, 요즘은 얇은 수건 한 장을 가방 속에 넣어올 뿐이다. 그것도 아직까지 한 번도 사용한 일이 없다.
이제 걱정 따위는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걱정해봤자 앞날이 환히 트이는 것도 아니다. 이곳의 땅을 사들여 집을 지을 때도 나는 왕복 여비며 이중생활에 드는 지출을 걱정했었다. 아이치 현의 어머니 집에서라면 교통비는 몇천 엔 정도면 되지만 도쿄에서 올 때는 그것도 함부로 볼 수 없는 경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항상 어떻게든 해결되었다. 새 집의 대출금도 어김없이 차곡차곡 갚아왔고 예금통장의 잔고가 제로가 된 일도 없었다. 그만큼 받아들인 일거리도 많아졌지만, 새 집에 가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귀찮고 수고스러운 일거리라도 그 보수가 고마웠다. 거의 돈이 되지 않는 일도 있었지만 어떤 일거리든 일단 받아들이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친구가 경영하는 편집 프로덕션에서 책 만들기를 돕기도 하고 업계지의 여행 취재며 영화 소개 기사 등, 아무리 작은 일거리라도 거절하지 않았다. 개근(皆勤), 정근(精勤, 근검(勤儉). 짬짬이 어머니에게서 “신변 정리를 위해 토지와 주식을 팔았다”라면서 몇 차례에 걸쳐 뜻밖의 ‘분배금’이 굴러들어온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물과 쌀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짜디짠 다시마와 야채만 놓고 밥을 먹는 것도 아무렇지 않다. 보존이 잘되는 말린 재료의 요리는 몹시도 가난했던 젊은 시절부터 내 주특기이기도 하고……. 녹미채, 박고지, 무말랭이, 말린 미역, 콩류, 냉동 건조두부, 당면, 유바(湯葉, 두유를 끓여 표면에 생긴 얇은 막을 걷어 말린 것-역주), 모두 다 물에 담그면 크게 불어나는 재료를 여차할 때를 위해 산더미처럼 보존해둔다. 말린 음식을 준비해둔 것만으로도 큰 부자가 된 것 같고 절대로 굶을 일은 없다고 믿을 수 있었다. 가늘게 썰어서 말린 미역과 매실 장아찌로 지은 밥은 얼마나 맛있는지……. 냉동 건조두부로 퓨전 그라탱을 요리하는 것도 배웠다. 나는 내 식탁의 수호신을 만나기 위해 슈퍼에 갈 때마다 특매품을 찾아 말림 식품 매장을 돌았다. 열심히 일하고 그러다 돈과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신칸센의 디스카운트 티켓을 사들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불러 이쪽 집으로 뛰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쓰지 않고 따로 챙겨둔 어머니의 ‘분배금’을 활용하여 대출금을 모두 갚았다. 저당권이 말소된 집은 한결 환하게 보였다.
여자 친구들이 어이없어한 고양이 동반의 여행도 불안했던 건 처음 한두 번뿐. 이제는 잠시도 떼어놓을 수 없는 여행의 반려자가 되었다. 물론 이 고양이도 언젠가는 이 집에 올 수 없는 날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럴 때의 탄식과 슬픔도 모두 받아들이는 여행인 거라고 어느 새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 십 년쯤 지나면, 내가 먼저냐 고양이가 먼저냐, 하는 각오를 다져야 할 때가 오는 것이다. 뜻하지 않은 병이 덮쳐 양쪽 집을 오가기도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그날까지 고양이는 지금의 고양이인 채로 ‘결계’를 신나게 들락날락하면 된다. 내가 이 땅에서 나 자신의 ‘결계’의 입구를 찾아냈듯이 고양이에게도 자신의 자리를 찾을 자유는 있는 거니까.
양지쪽까지 고양이를 배웅하고 시선을 겨울딸기 덤불 속으로 돌렸을 때, 눈에 익지 않은 하얀 것이 너풀너풀 시야를 가로질렀다. 반으로 잘려진 뱀의 허물이었다. 발밑의 쓰러진 나무와 뒤엉켜 허공에 중간쯤 떠올라 흔들거리고 있다. 가을 긴 비가 내리는 동안 아무도 모르게 어두운 덤불에 방치되어 있던 것치고는 별로 퇴색한 데 없이 비늘이 또렷했다. 이 집 마당에는 살무사를 포함하여 몇 마리의 뱀이 서식하고 있다. 살무사의 동전 무늬가 아닌 걸 보면 곧잘 마주치는 구렁이의 허물이다. 반투명한 껍질에 엷은 회색과 갈색이 섞인 긴밀한 무늬가 전면에 떠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