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것 같지 않은 양친들의 투쟁이 한창인 중에 지표에서 귀뚜라미며 방울벌레 소리가 들려오고, 어둠이 오고 다시 빛이 오는 사이에 소리는 점점 불어나고, 그러자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처럼 생각되던 투쟁은 버석버석 하는 소리가 점점 줄어들어 힘이 다한 무수한 아비들은 나무에서 떨어지더니 신음 한 번 올리지 못한 채 숨이 끊기고, 뒤에 남은 어미들은 예전에 살던 흙 속에 알을 낳고 돌아다녔다. 교미 못지않게 추하고 무시무시한 투쟁이었다.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어미의 자세, 거기서 떨어지는 알의 번들거림, 다 낳기를 기다려 찾아오는 조용한 죽음, 그중 어느 과정도 폭력이 아닌 것은 없었다. 그도 이전에는 동그란 모양의 껍질을 몸에 붙이고 있었고 지금도 알처럼 흙에 묻혀서 배도 고프지 않고 죽어 있는 것도 아닌 채, 투쟁을 하지는 않아도 상상력과 신경으로 세계를 보면서 살고 있었다. 그에게 세계는 땅속에서건 위쪽에서건 보고 듣는 대상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
주위의 알에서 유충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에게는 그것이 자신으로 생각되었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보고 있었다. 흙을 먹는 소리가 소란스럽고, 이것도 투쟁의 소리다, 다시 식욕이 생긴 자신이 싸우고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흙이 단단하게 조여지더니 냉기가 밀려오고 위쪽에 있는 생물들이 땅속으로 도망쳐 들어왔다. 뱀이 바로 옆을 슬슬 내려와 그의 바로 밑에 똬리를 틀고 잠이 들었다.
그도 잠이 들어 어미를 만나지 않은 채 눈을 뜨고 나는 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고 생각에 잠겼다가, 그저 자고 있었을 뿐이다, 라고 생각했다. 위쪽 세계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나무가 벌거숭이가 되었다. 지표를 덮은 시든 잎들은 그러다가 점차 습해져서 흙으로 변한다. 어느 구석에도 낭비가 없는 그 느긋한 추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것이 자연의 힘인 것이다, 아무 말 않고 있어도 잎사귀가 떨어지고 흙이 생기는, 마음에 걸리는 것도 혼란도 전혀 없이, 너는 장수풍뎅이잖아, 냉큼 껍질을 벗어던지고 위로 나가, 이봐, 이봐, 어떻게 된 거야, 너는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어도 괜찮은 그런 신분이 아니야, 빨리 위로 올라가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돼, 마음껏 투쟁하는 게 허락되어 있잖아, 수액을 들이켜고 좋아하는 암컷과 교미하는 게 네게는 가장 행복한 일이잖아, 왜 위쪽 세계를 거절하느냐고, 자연에 순응하여 자유로워지란 말이야, 라는 식물의 소리를 들었다.
그는 상상력과 신경이 피곤해져서 잠이 들었고, 눈을 뜨고 깨어나자 냉기의 고통이 덮쳐왔다. 위쪽 세계에 몇 번이나 어둠이 오고 다시 환해졌는지, 땅속에서 몇 번이나 잠이 들고 눈을 떴는지, 잠들어 있는 동안 어미의 꿈을 꾸었는지 말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어미는 언젠가 위쪽 세계의 누군가로서 투쟁하고 알을 낳고 그리고 죽은 거였다.
그의 주위에 있던 유충들이 이윽고 금색의 몸뚱이가 되어가고 냉기가 약해지면서 딱딱했던 흙이 풀리고 잠들었던 생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땅울림 소리가 나고 흙속에서 위로 위로 올라가기에 적합한 형태의 머리를 가진 뱀이 올라갔다. 또다시 뭔가가 들리고, 신경은 여기저기서 껍질을 찢고 벗어던지려는 장수풍뎅이들의 모습을 포착하고, 저건 아비와 어미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하자면 아비와 어미에게서 태어난 그 자신일 터였지만, 자신은 이미 껍질을 벗어던지고 이곳에 있는 것이라서 지금 올라가는 수컷과 암컷은 아비와 어미인 것이었다.
어둠과 빛이 번갈아 바뀌고 투쟁이 되풀이되고 아비들이 사해가 되고 어미들은 지상에 내려와 끙끙 배에 힘을 주었다. 알을 낳는 어미를 무시무시하다고 느끼는 게 죄송스러웠다. 일반적으로 하자면, 추해지면서까지 낳아준 어미에게 자식은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자신도 빨리 성장해서 아비처럼 위쪽 세계의 누군가가 되어 뿔을 휘두르며 투쟁하는 게 올바른 것이겠지만 그건 절대로 못 한다. 어미와는 교미하고 싶지 않다. 투쟁하고 싶지 않다. 껍질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일까. 어미와 투쟁하고 교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포가 위쪽에 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걸까, 아니면 위쪽에 갈 힘이 없기 때문에 투쟁하고 교미하는 것을 못 하는 걸까, 그중 어느 쪽이 답인지를 안다면 껍질을 벗어던지고 위쪽에 갈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그러한 의문을 갖는 것 자체가 상상력과 신경에 방해를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어미를 더럽히지 않아도 된다. 껍질을 계속 쓰고 있는 의미는 아무래도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