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세계에서 왕이 될 미래에 흥분하여 머릿속에 그린 것이 너무도 멋들어져서 이제는 움직일 수 있건 없건 마찬가지라고 자칫 착각할 것만 같았기 때문에 상상은 그 정도로만 해두고 다시금 위의 세계의 빛에 분노하면서 땅속에서 나갈 수 있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다시 어느 누구의 실수인지, 상상력을 너무 많이 써서 흥분해버린 신경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아 지금까지보다 주위의 일을 그 깊은 속내까지 죄다 알 수 있게 되었다. 눈앞에 없는 생물들의 행동이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감지되었다. 저쪽에 개미집에 있고 그 너머에는 지렁이가 지나간 흔적이 있다. 그 아득히 아래쪽에서 비명을 올릴 듯한 색깔의 지네가 달리고 있다. 여기저기에 민달팽이가 있다. 아무리 작디작은 흙 한 톨 한 톨도, 그 한 톨이 예전에 잎사귀로서 속해 있던 지상의 나무와 그 나무에 달라붙어 있던 벌레들과 그 벌레들을 구출해내듯이 통째로 꿀꺽 삼켜버리는 새의 목구멍의 부드러운 움직임까지, 오그려 접고 있는 다리를 뻗으면 죄다 닿을 것만 같았다. 위쪽 세계의 일까지 이토록 확실하게 알아버리니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껍질을 벗어던지고 땅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껍질을 찢고 계속 뻗어나가는 뿔 끝이 몸뚱이를 남겨놓고서 풀 사이에 새싹처럼 지상으로 얼굴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신경만이 성장하고 몸뚱이는 뿔 아래에 혹 덩어리처럼 매달려 있는 것이다. 위쪽으로 가고픈 바람도, 땅속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는 초조감도, 모든 귀찮은 일은 전부 뿔에게 맡겨버리고 싶은 듯한, 상상력이나 신경을 갖고 있는 벌레답게 나른한 감각이 되어 계속해서 기분 좋지 않은 잠에 빠졌고 동체와의 비율을 무시하고 뻗어나가는 뿔에 대항하듯이 혹 덩어리인 자신이 주위의 흙을 밀어내며 점점 팽창하고, 게다가 그 과정을 바깥 측에서 관망하고 있기도 해서 급격한 성장을 체력이 따라가지 못해 금세 지치고, 하지만 뚱뚱해져가는 것이 아무래도 자신에게 도움이 될 일이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뚱뚱해지려고 하는 몸뚱이가 뚱뚱해지지 않으려고 하는 의지를 짓누르고 있는지 팽창을 멈출 수는 없어서 흙의 깊은 곳으로 깊은 곳으로 큼직한 금 물방울 모양으로 축 처져 내려가서 주위의 생물들은 처음에는 재미있어라 하며 와와 웃어댔지만 자신들이 사는 장소가 그의 팽창하는 몸으로 인해 좁아졌다는 것을 알고 그제야 당황하기 시작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서 체력 이상으로 뚱뚱해져버린 그는 금빛이 선명해졌고, 똥구멍에서 불길이 나온 순간, 도망치는 개미들까지 함께 끌고서 마침내 지하 깊숙이에서 파열해버리고, 하지만 눈을 떠보니 아직 뿔에 매달린 채인지라 안심하고서 다시 잠을 자고, 힘을 줄 생각도 없는데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뿔도 움찔움찔하고, 위쪽으로 가는 길이 열려서 흙을 헤치고 몸뚱이 째로 꾸물꾸물 올라갈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아무래도 내가 아닌 것 같다, 아니, 이게 진짜 나인 거야, 라고 생각하며 그는 마침내 위쪽 세계의 생물이 되어 새삼 머리와 다리를 움직이고 동체를 파르르 떨며 흙을 대신하여 몸을 휘감은 대기를 맛보고 벌써 오랜 세월 지상에서 살아온 듯이 당당한 걸음새로 잔풀을 베어내고 처음으로 마주친 한 그루 노목에 달라붙어 여섯 개의 다리로 묵직한 몸을 들쳐 올리듯이
위로 올라가 마침 좋은 기회라고 좋아하며 날개를 펴기 위해 힘을 넣었으나 저절로 움직여준 다리처럼은 되지 않아서, 마찬가지로 흙에서 막 나와 옆으로 올라가는 수컷 장수풍뎅이에게, 너, 제대로 탈피한 뒤에 움직여, 라는 주의를 받고서야 겨우 금색 껍질을 벗어던지지 않고 나왔다는 것을 깨닫고, 주위에서 수액을 빨아먹는 다른 장수풍뎅이를 봐도 아무런 욕망도 일지 않고 어둠이 없어지려고 해도 꼼짝도 하지 않고 비쳐 들어온 빛을 느끼고 그 빛을 되쏘는 금빛 몸을 확인하고, 나는 지상의 왕이로다, 하는 자신의 부르짖음이 분명히 울려 퍼졌는가 싶더니만 퍼뜩 잠이 깨어 여전히 땅속에 혹 덩어리처럼 매달려 있었다.
지상에서는 어둠과 빛이 수없이 뒤바뀌고, 그와 마찬가지로 뿔을 갖고 있는 장수풍뎅이의 수컷과 타원형의 암컷은 빛이 사라지면 흙에서 나와 어둠 속에서 서로 뒤엉켰다. 유충 기간이 있었다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행동이 어둠 그 자체가 되어 어둠 전체가 뒤흔들렸다. 한 마리의 암컷에 몇 마리의 수컷이 덮쳐들어 그 갈색의 집단이 나뭇가지의 표면을 기어 다니는 버석버석하는 소리가 어둠의 중심이고 빛을 대신하는 그 무엇 같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수컷이 암컷과 교미한다. 그 한 마리와 한 마리의 행위는 날개를 접고 있는데도 몸의 내측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 같은, 두 마리의 더러움이 어둠에 스며드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투쟁이었다. 무엇보다 무시무시한 것은 수컷도 암컷도 진지하다는 것이었다. 매미의 성난 울음소리나 나비의 흔들림 없는 숨 막히는 합체, 생명력의 주입과 탈취는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입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명백하게 교미였다. 자신도 그 결과로서 태어났다. 그렇다면 뿔을 파르르 떨며 올라타 몸을 겹치고 있는 수컷은 의식 그 자체였을 터인 아비이고, 하반신으로 맞아들이고 있는 암컷은 꿈에서만 만났던 어미다. 양친은 위쪽 세계의 누군가가 되려 하고 있었다. 투쟁은 여기서 끝나면 또 다른 장소, 또 다른 나무에서 버석버석 거행되고 그 마물과도 같은 모습을 이토록 확실하게 포착해버리고 나자 자신의 신경까지 이상해져서 아무것도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생생한 양친을 어둠이 올 때마다 감지해버리는 바람에, 하지 마, 하지 마, 하고 쓸데없는 줄 뻔히 아는 부르짖음을 올렸다. 살아 있지 않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식물은 그 수액으로 투쟁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가닿지 않는 부르짖음 대신에 다시 뿔이 점점 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