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들의 이동이 얼마나 계속되었는지, 문득 깨닫고 보니 주위는 괴괴하고 남아 있는 건 개미나 지렁이 같은 면면이고, 그 자신도 여전히 땅속 생물의 한 마리였다. 아직이야, 아직, 이라고 생각해본다. 동료들과 함께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는 것뿐이지 다른 벌레들과는 달리 상상력이며 신경이며 사고를 갖고 있으니까 다른 세계에 나아갈 시기 역시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
투욱투욱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땅속 여기저기에 묻혀 있던 식물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식물이 엄청나게 싫었다. 살아 있는 듯한 기척이라고는 전혀 없고 성장해가는 것도 극히 소극적으로 슬금슬금 무성해지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더라도 살아 있는 것들은 투쟁하고 있다. 자신이 알 껍질을 깨고 이 세계에 나온 것도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둥글게 몸을 말거나 느린 발로 도망치는 것도 일단은 투쟁이다. 다른 벌레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광경은 수도 없이 목격했다. 식물들은 투쟁도 하지 않고 축 늘어져 나태하게 존재한다. 유충이었던 시절에는 식물의 영락한 몰골인 흙을 먹었다. 투쟁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칠칠치 못 하게 죽은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지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나는 강한 것이다. 껍데기 한 장 정도 찢는 건 간단하다. 처음에 몇 번이고 힘을 주며 위로 가려다가 실패했던 경험에서 이번에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그런 다음에 단숨에 껍데기를 찢으려고 해봤지만 순간적으로 방출시켰다고 생각한 힘은 시간이 오래 걸려서 흐물흐물 유출되어가는 것이었다. 아직 시기가 아니다, 특별한 벌레는 특별한 때에 흙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몸은 움직이지 않고 부르짖음만 터져 나와서 어디까지 울려 퍼졌는지는 파악할 수 없는지라 정말로 소리를 냈었는지, 어쩌면 그럴 마음만 먹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또 하나의 새로운 감정, 자유를 빼앗고 땅속에 계속 묻어두기만 하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를 확인했다. 위쪽 세계에 있는 자, 언젠가 그쪽에 불러들이기 위해 벌레들을 파묻고 그 한 마리만은 그대로 놔두는 자, 살아 있는 것의 생사를 조종하는 무시무시한 누군가를 소리가 되지 않는 부르짖음을 수없이 부르짖으며 감정의 격렬한 움직임에 껍데기가 찢어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까지 저주했다.
배도 고프지 않고 잔뜩 오그려 붙인 다리도 아프지 않은지라 다른 벌레들과 달리 특별하다는 건 껍질을 벗고 굳이 위로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식물과 마찬가지로 투쟁하지 않는 것을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설마 어느샌가 죽어버린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특별하다는 건 즉 죽어 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뿔은 머리에 우뚝 서 있었다. 껍질째 계속 자라서 볼 때마다 길어져 있었다. 언젠가 뿔 끄트머리만 위의 세계로 더듬어가고 몸뚱이 쪽은 계속 이대로 있는 거라고 상상하자 자신이 타락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위로 갔던 일도 없는 주제에 타락은 무슨 타락, 이라고 웃으면서 자유를 빼앗고 있는 누군가를 슬쩍 방심하게 해두고 힘을 꾸우욱 모아봤지만 소용이 없는지라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역시 무리였나, 하고 꿈쩍도 하지 않는 어깨를 툭 떨구는 식이었다.
벌레들 중에는 계속 위에 가 있는 것도 있는가 하면 땅속에 다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도 많아서 그들이 들락날락하는 때에 위를 올려다보면 땅속에는 없는 하얗고 큼직한 것이 흙 위에 퍼져 있었다. 저것이 위쪽 세계의 어떤 것인 모양이다. 하지만 장수풍뎅이들은 그 커다란 것이 물러나기를 기다렸다가 나간다. 참으로 비참하구나, 하고 화가 났다. 같은 장수풍뎅이로서 수치스러웠다. 이런 때는 어떻게든 자신이 나서서 그 커다란 것의 힘을 정통으로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특별한 점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일제히 위쪽 세계로 갔으면서 다시 돌아오는 줏대 없는 꼴을 주위에서 보면서, 별다른 고생도 하지 않고 힘을 차곡차곡 재워두고 있으니 내가 그렇게 되는 건 이미 약속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뿔이 가장 먼저 껍질을 벗고 몸이 그 뒤를 따라가 노상 질척질척한 것밖에는 별다른 재주가 없는 흙과 커다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특별한 한 마리를 멀거니 쳐다보고 있는 장수풍뎅이들을 밀어제치고 위로 올라가 흙 밖으로 완벽하게 나선 자신은 번쩍번쩍 빛나고, 그렇지, 그 커다란 것, 암흑과는 다른 그 어떤 것인가를 빛이라고 불러주자, 아직 이름이 없으니 빛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그것은 빛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게 된다. 한 번 위쪽 세계에 나간다면 두 번 다시 땅속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빛의 정점에 서서 지표에서 어슬렁거리는 벌레들에게 비예의 시선을 던지며, 저토록 부자유한 생물이 있다니, 하고 가엾어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