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근처의 흙도 차가워져왔다. 껍질을 뚫고 나와 얼마나 지났고 얼마나 이런 상태가 계속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또 한 가지 새로운 감각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움직임보다 늦게, 개미의 행렬보다 길게, 몸의 바깥 측에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내측에 있는 듯한 시간의 감각이었다. 아비와 마찬가지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온 시간을 아비가 포섭해서 지배했는지, 명령하는 대로 휘둘릴 때의 힘 때문에 그는 먹는 양이 줄어들었고 그러다가 조금도 공복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추위도 아주 멀리에서 오는 것만 같았다. 오로지 먹기만 했던 시절이 벌써 한참 옛날 일만 같다. 몸이 너무 뚱뚱해져서 돌아다니기도 귀찮아 이곳에서 어딘가로 나가는 건 포기하고 좀더 손쉬운 방법, 이대로 가만히 있자는 방법을 실행하기로 했다. 시간의 흐름을 타고 있다 보면 자연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이렇게 편한 방법은 다시없다. 나의 생애는 완성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어미와는 다른 색깔과 모습으로 죽는 것이라고 한다면 꼭 그렇지도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자신은 수컷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먹지 않게 된 뒤부터는 잠을 자도 어미를 만나지 못하고, 아비 그 자체인 의식은 명확해져서 머리에 탄탄히 뿌리를 내리고 생생하게 굳어져 이윽고 이마가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것을 느끼고 그것이 슬금슬금 커나가 끄트머리가 창이 되어 흙을 찢고 힘이 주어지는 듯한 마음이 들어 위를 보니 뿔이 반짝이고 있었다. 눈을 움직여 자신의 몸을 보았다. 온몸이 금빛이 되어 어느새 다리와 날개도 생기고, 어째 자신의 몸이 아닌 것만 같았다. 아아, 나는 얼마 전까지 유충이라고 불리는 상태였구나, 라고 생각했다.
땅울림 소리를 들었다. 생물들이 냉기를 견디고 있는 층의 아득히 아래쪽에서의 울림은 멈췄다가는 다시 일어나고 그때마다 점점 커져서 가까이 다가오더니 울림이 흔들림으로 바뀌면서 그의 옆에 뻐끔 구멍이 뚫리고, 보석을 촘촘히 붙여놓은 듯한 그 뱀이 올라와 물큰한 냄새를 풍기며 슬슬 위쪽 세계에 빨려들어갔다. 긴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몹시 배도 고플 텐데 이번에도 그냥 지나갔다. 유충이던 시절처럼 몸이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주위의 흙이 차가워지기 전의 온도로 돌아왔다는 건 그도 느끼고 있었다. 그 그리운 따스함도 아무래도 위에서부터 전해져오는 것 같아서 그는 위로 가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건 뿔이 너무도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고 상상이며 신경만이 앞서가서 몸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언젠가는 자유로워질 거라고 확신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부자유의 의미가 없다.
따스함과 습기가 돌아온 땅 속에서 개미들은 아주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는 그 검은 행렬을 지그시 바라보며 내가 자유로워지면 우선 저놈들부터 무릎을 꿇리겠다고 결심했다. 이런 어둠 속에서 언제까지고 시간을 보낼 건 없다고 이쯤이 되어서야 의식했다. 흙을 헤치고 위쪽 세계로 자신을 이끌고 나가기 위해 뿔이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언젠가는 나갈 수 있다. 아니, 언젠가 라는 둥의 희망을 가지는 건 좋지 않다. 희망은 약한 자의 비천한 도구다. 언젠가가 아니라 바로 다음 순간일지도 모른다. 몸에 힘을 실어본다. 오, 그 순간이 왔다, 아니, 아니다, 다음이구나, 거봐, 다음이 왔어, 아니, 아직이다, 그럼 이 다음이네, 안 되는 건가, 힘이 부족한 건가, 좋아, 마음을 굳게 먹고 가보는 거야, 영차, 라고 몸을 움직일 마음은 먹어봤지만 주위의 흙을 조금도 뒤흔들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힘 그 자체가 온몸을 꽁꽁 묶어서 도리어 더 꼼짝도 못 하게 되는 것 같았다.
뭔가 소리가 들려와서 눈을 움직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몇 마리인가 존재하는 장수풍뎅이의, 뿔이 없는 탓에 어미로 착각할 것 같은 암컷들 중의 한 마리가 몸을 굼실굼실 움직이자 접혀 있던 다리가 몸에서 떨어지는 동시에 발톱이 몸의 표면의 금빛을 찢고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 금빛은 껍데기였던 거라고 그는 깨달았다. 암컷은 머리며 등에도 갈라진 곳이 생겨서 너무 가려워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흙에 몸을 비벼댔고 껍데기가 딱지처럼 너덜너덜 떨어져 나가 전부 벗겨지자 위로 위로 나아갔다. 다른 장수풍뎅이들도 몸을 뒤흔들어서 등이 먼저 벗겨지는 놈, 우선 머리부터 자유로워지는 놈 등이 있어서 땅속은 일시에 소란스러워지고 다른 갑충들도 저마다 껍데기를 벗으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서 위쪽 세계로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좋아, 때가 온 거야, 라고 그가 다시금 몸을 움직이려고 버르적거렸던 힘은 몸과 동화되어 있던 금빛 껍데기에 흡수되어버렸다. 장수풍뎅이는 묵직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경쾌하게, 누군가 부르기라도 한 것처럼 위로 향한다. 다들 그리 싫어하지는 않는 걸 보니 위쪽은 분명 죽음이 기다릴 뿐인 곳이 아니라 멋들어진 장소이고 그곳이야말로 벌레에게 본래의 세계라는 건 바로 눈앞에서 벌벌 올라가는 벌레들보다 자신 쪽이 더 잘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도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