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먹으며 나아가는 동안 몇 마리인가 똑같은 장수풍뎅이의 기척을 탐지했고 그중 또 몇 마리인가는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하는 일도 있어서 조금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봤더니 다른 벌레였다. 이 근처의 흙은 상당히 질이 좋은지 다양한 벌레와 벌레 이외의 생물들도 마주쳤다. 지렁이는 흙의 전문가여서 몸을 신축 반전시키며 헤엄치듯이 나아간다. 귀찮은 것은 개미들로, 아주 작은 흙덩이 틈새를 집단으로 잽싸게 오락가락하고 저희들 집에 다가가면 우르르 몰려들어 쿡쿡 쑤시며 몰아내려 덤비기 때문에 멀리서부터 무수한 발소리가 나면 들키기 전에 얼른 비키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젠가 거대한 무리가 행진해가는 수런거림이 들려오는지라 깜빡 마주치기 전에 행로를 바꾸기 위해 머리를 움직이고 있으려니 발소리가 갑자기 진로를 틀어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나서 온몸을 사용하여 도망간다고 도망갔으나 달리는 능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어서 곧바로 따라잡혀 약한 부분부터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반응해버린 몸뚱이가 등을 바깥쪽으로 하고 둥글게 말려서 머리가 꽁지에 겨우 맞닿은 직후, 개미치고는 시끄럽고 무리의 행진치고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는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다 지나가서 멈칫멈칫 내다보니 검은 동체와 빨간 다리의 지네가 녹아내린 금속처럼 흘러가는 참이었다. 자세를 원래대로 돌리고 난 뒤에도 그 소리가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만 같아 시험 삼아 몸을 바쁘게 움직여 매끈하게 이동하려고 해봤지만 평소의 속도로밖에는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나 혼자 매우 우스웠다. 처음 겪는 감정이었다. 웃음이 가라앉자 먹이를 먹는 입 끝으로 후우 한숨을 내쉬며 다른 생물들에게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나는 대체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배가 불룩하도록 잘 먹고 잠이 든 사이에 개미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알 껍질을 벗어던지고 이번에는 생의 껍질을 따악 깨버리고 죽음에로 변신한다면 꿈이 아닌 어미와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미는 내 자식이 개미에게 오독오독 잡아먹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된다면 자식을 만날 수 있다고 믿고서 알을 낳은 것일까 하고 먹는 입을 쉬지 않고 계속 생각을 해서 소화기관 그 자체가 되어 부르르 떠는 온몸이 뜨거워지도록 빙글빙글 회전하는 사고가, 아비가, 덮쳐들어온다.
몸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침상이자 먹이 창고였던 흙이 잠에서 깨어나자 딱딱해져 있는 것을 그는 느꼈다. 차가웠다. 다른 생물들이 위쪽에서 흙을 파헤치며 하강해왔다. 그 숫자는 점점 불어나서 얇게 깎아낸 푸르스름한 보석을 몇천, 몇만 장이나 붙인 것처럼 비늘로 뒤덮여 땅울림 소리를 일으키는 뱀이 침을 흘리며 어금니를 번뜩이기도 했지만 결국 그의 옆을 그냥 지나쳐갔다. 턱에 넘치는 큼직한 먹이를 입에 물고 앞이 보이지 않는 개미가 그와 부딪쳤다가 다시 동료의 냄새를 맡아내고 무리에게로 복귀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곳과는 다른, 자신과 별도의 감각을 가진 것들이 사는 장소가 머리를 무리하게 뒤로 젖혀봐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위쪽에 퍼져 있는 모양이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언젠가 자신도 그쪽에 가는 걸까, 생의 껍질을 찢고 죽음의 세계에 올라갈 때가 오는 걸까 하고 생각하며 상상력에서 가지를 친 호기심과 일단은 공포도 품으면서 온몸을 끌어올리려고 끙끙거려 몸이 반절쯤 올라간 참에 머리가 아플 만큼 차가움이 몰려오는지라 다시 아래로 돌아와서 뒤를 쫓아와 엉덩이를 물어뜯는 아픔을 털어내고 원래 있던 자리보다 좀더 깊고 따듯한 층까지 기어들어갔다. 생물들은 움직임이 둔해지고 죽은 듯이 잠에 떨어진 것도 있었다. 그도 조금 쉬고 다시 일어나 먹었다.
그렇게 깊디깊은 곳에서 지내는 사이에 시야의 끄트머리에 하얗게 빛나는 물체가 보이게 되었다. 머리를 아무리 흔들어도 따라온다. 모르는 사이에 뭔가 작은 생물이 자신을 붙잡았거나 알을 낳아놓은 건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 하얀 것이 옆의 흙에 닿으면 아아 부딪쳤구나 하는 느낌이 오는지라 크게 자란 자신의 이마의 표면이라는 것을 알았다. 머리에서 꽁지까지의 길이도 어쩐지 길어진 듯한 마음이 들기는 했던 것이다. 그는 새삼 확인해보기 위해 둥글게 말고 있던 몸을 똑바로 쭈우욱 폈다. 그러자 눈앞에 본 적도 없는 생물이 있었다. 둥그스름한 몸은 노란빛을 띤 흰색과 회색의 두 가지 색깔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몹시 슬퍼져서 격한 떨림과 함께 오랜만에 눈물이 흘렀다. 괴물처럼 뚱뚱한 생물은 틀림도 없이 자신과 똑같은 장수풍뎅이인 것이다. 그쪽도 이쪽의, 즉 스스로의 이상한 모습에 화들짝 놀라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비대했다. 개미들이 바로 곁의 큼직한 하얀 덩어리를 무시하고 달려갔다. 그렇게 비웃어주는 게 오히려 좋았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몸의 무게를 느끼고, 이런 비참한 일을 겪지 않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위쪽의 죽음의 세계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