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어둠 밑바닥에서 흙을 파헤치고 장수풍뎅이 수컷이 모습을 드러내 지상의 공기를 파르르 떨게 하였다. 근처 나무의 수피(樹皮)에 달라붙어 몸을 말리고 색이 엷은 날개가 갈색으로 변하기를 기다려 날아올랐다. 스스로의 묵직한 몸을 받아들이고 용기가 넘실넘실 넘쳐 한참이나 허공을 날았으나 이윽고 촉각을 움직여, 뻗어 나간 나뭇가지의 잎사귀로 밤하늘을 파먹으며 수액을 흘리고 있는 거목에 큼직한 날개소리를 내며 내려가, 수컷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태평하게 식사를 하고 있던 벌레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풍이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물러섰지만 제 힘을 과신하여 도전한 하늘가재나 비슷한 크기의 똑같은 장수풍뎅이들은 발길에 차여 떠밀리거나 떨어졌다. 수컷은 튼튼한 다리로 몸을 나무줄기에 고정하고 불꽃 색깔의 혀로 수액을 빨았다.
아침 해를 느낄 즈음에는 배도 불룩해져서 미련 없이 날개를 펴고 나무줄기를 떠나, 햇볕에 몸을 드러내는 건 자부심이 허락하지 않는지 한낮에는 나무 틈새나 땅속에 기어들어 지상 어디에도 밤새 군림했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밤마다 교미를 목적으로 호기롭게 암컷을 물색했지만 마음에 흡족한 상대를 만나지 못하고 오히려 적으로 여겨져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일도 있어서, 욕망이 첩첩 고이고 고인 끝에 그만 난폭해져서 어떤 나무에 내려서건 그곳에 있는 것이 장수풍뎅이의 수컷이건 암컷이건 혹은 다른 갑충이건 관계없이 쫓아내고 때로는 뿔끝으로 찔러버려 하룻밤이나 걸려 겨우겨우 빼내는 판이어서 주위의 벌레들은 아무리 좋은 먹이 터라 해도 그 요란한 날개 소리를 들으면 일제히 날아가버려서 수컷은 상질의 수액으로 점점 더 퉁퉁해지고 윤기를 더해가고 욕망은 첩첩이 쌓여 늠름하고도 고독했다.
나무 위의 벌레들이 아득히 아래쪽 풀숲의 가을벌레들 소리를 듣기 싫어도 듣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오고, 그러다 보니 기온의 하강과 함께 한 마리 한 마리씩 사해(死骸)가 되어가자 자신도 체력이 정점을 지난 것 같다고 깨달은 수컷은 구름이 하늘을 메워 한 방울의 습기를 말리지 않는 마치 여름이 돌아온 듯한 어느 날 밤 마침내 마음에 흡족한 암컷을 만났다. 수액보다 더한 향기를 뿜고 있었다. 갈색에 아주 조금 초록이 섞인, 솜털로 감싸인 타원형의 몸에 유혹을 걸자 곧바로 응하는 몸짓이 있어서 수컷은 욕망이 충만한 자신을 암컷에 겹치고서 태어난 의미를 잠시 찬찬히 맛보고 암컷 아래의 나무줄기와 그것을 뒤덮은 밤을 암흑의 군주처럼 정복하여 한 찰나의 통치를 완전히 마치자 지표에 거꾸로 떨어져 수컷이 아니게 되었다. 하늘처럼 높은 곳에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죽음이 아주 잘 어울렸다.
지상에 내려온 암컷이 뒤를 따라 죽은 것은 알을 떨어뜨려놓은 다음의 일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대체 어느 누가 이런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
그 커다란 수컷을 씨로 하는 장수풍뎅이가 알 껍질을 깨고 어슴푸레하고 축축하고 따스한 흙에 머리를 내밀었던 것인데 그곳에서 그는 눈에 들어올 리 없는 것, 즉 어미의 잔해를 보고 말았던 것이다. 거의 모든 부분은 흙에 뒤섞여 있었지만 날개와 머리와 다리 두 개, 상상력만 발동하면 전체 상이 떠오를 만한 모양새로 부식되지 않고 남겨져 있었다. 불행은 겹치기로 오는 것이라서, 이것도 누군가의 실수일 테지만, 그에게는 그런 상상력이나 신경이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되어 있었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뭔가를 보고 감정이 뒤흔들리는 복잡한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는 당황하여 껍질 속으로 다시 돌아가면 이런 귀찮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 넘게 나와 있던 몸을 다시 물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자신이 주변의 부엽토를 먹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먹기 위해 몸이 움직여서 흙을 파헤치고 어느새 완전히 껍질에서 나오고 만 것이다. 아무 어려움 없이 배가 퉁퉁해지는, 먹이가 지천으로 널린 이 환경에 깜짝 놀라 자신의 운명을 괴이하게 여기며 흙을 파고 들어가기 전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 눈으로 다시 한 번, 아마도 사해라고 불리는 게 적합할 터인 어미를 보았다. 그곳을 떠나 차츰 멀어져갈수록 어미가 마음속에 생생하게 자리를 잡았다. 눈물이 멈춘 건 깨닫지 못하고 계속 먹고 먹어서 싸고 싶다 싸고 싶다 하고 너무 급해지기 전에 똥을 싸고 다시 먹고 역시 깨닫지 못한 사이에 잠이 들어 타원형에 진한 갈색과 초록이 섞인 어미를 만났다.
아비를 본 적은 없었다. 꿈에서도 만나지 못하는 건 자신에게 아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 그건 곤란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비가 어디에도 없을 리는 없다. 하지만 마음속에 그려보려고 해도 아무리 상상을 펼쳐봐도 아비와는 연결이 되지 않고 그 단서로서 어미의 모습부터 더듬어보려고 하면 여러 가지로 변형은 하면서도 마지막에는 다시 어미가 나타났다.
아비는 어딘가 멀리, 눈으로는 미처 다 포착할 수 없는 곳에서 지그시 지켜보고 계실 뿐이라서, 아 그렇구나 이것이 아비인가 하고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은 올 것 같지도 않지만, 아비의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무거워지는 느낌이어서 아무리 상상해도 쓸데없다고 신경을 쉬어보지만, 긴장에서 풀려나 멍하니 흐려진 듯한 의식은 사고의 자취인 열기를 발하기 시작하여 마음먹은 대로 되어주지 않는 이 무겁고 답답한 감각 그 자체가 아비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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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다나카 신야(田中??)
1972년 야마쿠치 현 출생. 시모노세키 시 쥬오 공업고등학교 졸업.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둘이서 살았다. 고교 졸업 이후, 아르바이트를 포함하여 어떤 직업도 갖지 않았다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집필에 십 년이 걸린 『차가운 물의 양(洋)』으로 2005년 신초 신인상을 수상하여 데뷔. 2007년 『도서 준비실』로 제136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올랐다. 2008년에 단편 「번데기」로 역대 가장 적은 나이에 가와바타 야스나리 상을 수상하고, 이 작품이 수록된 단편집 『끊어진 사슬』로 미시마 유키오 상을 수상하여 동시에 두 개의 상을 받는 기록을 세웠다. 2009년에는 『신(神)이 없는 일본 시리즈』가 두번째로 아쿠타가와 상 후보작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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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양윤옥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히라노 게이치로 『일식』 번역으로 2005년 일본 고단샤의 노마문예 번역상을 수상했다. 그간 번역한 책으로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 『장송』 『센티멘털』,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 마루야마 겐지의 『무지개여, 모독의 무지개여』 『납장미』,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칼에 지다』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장미도둑』,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스무 살 도쿄』 『올림픽의 몸값』,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성의 인연』 『붉은 손가락』 『악의』 『졸업』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이치카와 다쿠지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연애사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1,2), 그 외 『도쿄타워-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약지의 표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