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것을 기회로 얼른 두 사람의 발 사이즈를 눈으로 확인하고 안쪽 선반에서 슈즈를 꺼냈다. 자기는 괜찮다고 두 손을 흔드는 여자에게 그는 크림색 가죽에 연지색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슈즈를 건네며 말했다.
“아니, 게임은 안 하더라도 바닥이 미끄러워서 넘어질 수 있으니까 이걸로 갈아 신어요.”
구두를 벗고 슈즈를 신자마자 청년은 하우스 볼을 이것저것 물색하다가 초록색 14리터짜리 안고 돌아왔다.
“한가운데 레인에서 던져요. 스코어는 내가 매겨주지. 연습 없이 바로 들어갑니다.”
두 사람의 말소리를 잘 알아듣기 위해 그는 스코어 시트를 손에 들고 카운터를 나와 볼 라커와 일체가 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볼링은 엄청나게 오랜만에 해보는 거라고 말하고 청년은 락의 노란 어프로치에 찍힌 둥근 눈금에 양쪽 발끝을 맞췄다. 천천히 왼발을 내딛더니 서서히 기세를 붙여, 장바구니를 덜렁덜렁 흔들며 걸어오다가 양배추라도 떨어뜨린 것처럼 초록색 볼을 던졌다. 굴리는 게 아니라 발치에 털썩 내던져진 수지(樹脂) 양배추는 오른쪽 거터 옆 아슬아슬한 부분을 지나, 하지만 홈에는 겨우 빠지지 않을 만큼 미묘하게 변화해가면서 1번을 스치고 2번 핀의 좌측으로 틀어 군데군데 여섯 개를 넘어뜨렸다. 3, 6, 9, 10번 핀이 남았다.
깊은 바위 안쪽에 작은 돌멩이를 내던졌을 때처럼 웅웅거리는 울림이 귀에 와 닿았다. 애초에 그는 오래된 핀이 튕겨 나가는 소리가 좋아 이런 골동품 같은 기계에 줄곧 집착해왔던 것이다. 레인도 핀 센터도 볼도, 이래저래 손을 쓴 끝에 겨우 접선이 된 로스앤젤레스의 브로커를 통해, 도산해버린 해묵은 볼링장의 폐품으로 실려 나가려던 브런즈윅 사의 초창기 모델 일습을 거의 공짜나 마찬가지로 인수해왔다. 세팅 동작도 느리고 볼이 돌아오기까지의 시간도 현재 보급된 기계의 두 배가 넘게 걸린다. 핀은 교환이 가능했지만 전체적인 수리 부품이 중고조차 입수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이런 종류의 유흥기구에 정통한 솜씨 좋은 기술자에게 특수한 정밀분해 수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일부분만 새로 바꾸는 건 인형의 머리통만 갈아 끼우는 것 같아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고, 스트라이크 때 멋진 화음을 울리는 대신 희미한 탁음과 어긋남이 뒤섞인 이 시기의 핀 소리가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도 있어서 그는 오리지널을 거의 손대지 않고 계속 사용해왔다. 소리가 균일하게 튀어 오르는 게 아니라 모든 핀이 쓰러진 뒤에 레인 안쪽에서 한 차례 보이지 않는 큼직한 공이 되어 천천히 가속을 하며 던지는 사람 쪽으로 밀려나온다. 그 소리를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자리가 3레인과 동일 직선상에 있는 카운터였다. 그래서 그는 되도록이면 그 자리에 서서 일을 했다.
“갑자기 하니까 역시 감각이 살아나질 않네.”
청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돌아온 볼을 다시 손에 들었다. 조금 전과 같은 위치에 양발을 나란히 놓고 3번 핀을 노린다. 볼은 슬슬 오른쪽 가장자리로 빨려들어가 한 개도 넘어뜨리지 못하고 어둠에 먹혀버렸다. 그는 제도(製圖) 수업에서 F 연필을 쓸 때 같은 필압(筆壓)으로 스코어 시트 첫 칸에 6이라고 쓰고 오른쪽 귀퉁이의 작은 칸에 마이너스 기호를 긋고는 그 아래 다시 크게 6을 새겼다.
“아이, 시시하다. 이렇게 친절하게 해주시는데 한가운데부터 와장창 좀 넘어뜨려봐.” 왼편 의자에 앉아 있던 여자가 당장 청년을 놀려먹는다.
“그렇다면 포켓에서부터 와장창, 이라고 해야지. 한가운데면 안 돼, 스플릿이 된단 말이야.”
“스플릿이 뭔데?”
청년이 가만히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볼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이 년이나 사귀었는데 그런 것도 모른다는 건 전혀 몰랐네”라고 청년은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스플릿이라는 건 핀과 핀이 각각 떨어진 채로 남아서 중간이 뻐끔 비어버리는 거야.”
청년이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2프레임의 투구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백스윙이 너무 커서 뒤로 당겨진 팔을 부드럽게 되돌릴 수가 없었다. 볼은 오른쪽 포켓에 얕게 들어가 개가 우는 듯한 소리를 울렸다. 일곱 개. 노헤드에 오른쪽 구석의 세 개가 남겨졌다는 것을 빨간 램프가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7이라고 적어 넣고 두번째 투구를 기다렸다. 가까스로 두 개를 넘어뜨린 것을 지켜보고 2를 오른편 귀퉁이 칸에 덧붙이고 그 아래에 15라고 적었다. 3프레임은 포켓에 넣었으면서도 거꾸로 힘이 부족해 중앙의 5번 핀을 남겼다.
“아휴, 다 넘어진 줄 알았네, 정말 좋은 소리가 났는데.”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서 안타까운 듯이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 소리가 그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역시 이 시간쯤 되면 귀의 상태가 이상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