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잘 들리는 쪽 귀를 통해, 고맙습니다, 라는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그는 앞쪽 레인의 핀 데키에 지장보살처럼 서 있는 핀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선을 소리 나는 쪽으로 옮겼다. 청년은 주위를 둘러보며 여자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더니, 젖어 있는 두 손을 탈탈 털다가 그 손으로 던져진 그의 시선에 겸연쩍은 표정을 보였다. 리틀베어 볼링장의 화장실에는 핸드 드라이어가 없다. 청소기를 연상시키는 소음이 싫어서 주위에서 몇 번이나 권했는데도 설치하지 않았다. 청년의 손이 젖은 걸 보니 회전식 수건을 깜빡 잊고 갈아놓지 않은 모양이다. 잘못한 건 이쪽인데 오히려 청년이 염치없다는 듯이 조명을 낮춰놓은 장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는 “어째 한적하네요”라고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계가 오래되어서 그런가요?”
“그럴 거야”라고 그는 대답했다. 청년의 목소리에는 목젖에서 떨어지는 순간에 찰진 듯한 윤기가 있었다. 아직까지는 왼쪽 귀의 상태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아마 요즘은 전국을 다 찾아봐도 없을 게야. 핀 보이가 활약하는 곳이라면 또 모르지만.”
“좀 칙칙한데요?” 청년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음, 칙칙하지. 그래도 아무 문제없이 작동해.” 그도 웃음을 지었다.
“실은 벌써 문 닫았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정리하시는 시간에 폐를 끼쳐서 죄송해요.”
“천만에. 어쨌거나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지. 두 분이 어쩌면 우리 가게를 찾아주신 마지막 손님이 될 테니까.”
안을 기웃거렸을 때의 침침하게 가라앉은 가게 안의 인상이 되살아났는지 청년의 얼굴 표정이 슬쩍 바뀌었다. 마침 그때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여자의 모습을 시야 끝으로 포착하면서 청년이 물었다.
“마지막이라니, 무슨 뜻이에요?”
“앞으로 삼십 분이면 이 일 그만둘 거거든. 내가 이래 보여도 경영자야. 내일부터는 영업을 안 해요. 즉 폐업이지. 아, 걱정은 말아요. 도산이 아니라 가게를 접는 거야. 오늘은 이제 아무도 안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을 마친 그를 향해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조금 전과는 딴 사람처럼 환해진 얼굴로 여자가 인사를 차렸다. 역시 꽤 오래 참고 있었던 모양이다. 국도 변에 식사할 수 있는 곳이 있긴 하지만 오후 아홉시 이후까지 영업하는 식당은 인접한 동네의 역 주변밖에 없다. 자동차라면 십오 분 정도면 갈 수 있는데 그걸 알지 못하고 뛰어든 걸 보면 이 지역 사람이 아닌 모양이다. 여자 쪽도 대화의 끝부분이 들렸는지 청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폐업이라니, 무슨 얘기야?”
“이 볼링장, 오늘로 문을 닫는대. 앞으로 삼십 분.”
“어머, 그래요?” 그녀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 쪽을 보았다. “어쩐지 조용하다 했어요. 한창 바쁘실 때 폐를 끼쳤네요. 저는 정말 다행이었지만요.”
“아, 아니,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뭘.”
잠깐 생각한 뒤, 그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어때요, 이것도 뭔가 인연일 텐데 괜찮으면 종업 때까지 게임 한판 하고 가요. 물론 요금은 안 받을게.”
카운터 뒤편 벽에 있는 스위치 두 개를 딸칵딸칵 올리자 양 사이드의 간접 조명이 켜지고 장내가 부드러운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어둠 속에 가라앉았던 레인 안쪽에도 그 빛이 퍼져서 회색 핀이 엷은 복숭앗빛 디오라마 안에서 전경으로 불쑥 튀어나온다.
“그럼 기왕 왔으니까 잠깐 하고 갈까요?”
“안 돼, 너무 미안하잖아. 화장실도 빌려 썼는데 공짜 게임까지 하다니.”
“실례는 무슨, 내가 부탁한 건데. 하긴 하실 마음이 있으면 그러라는 거야. 원하는 대로 해요.”
혼자서 조용히 막을 내리고 싶다는 조금 전까지의 생각과는 반대로 그는 스스로도 뜻밖일 만큼 친밀함이 담긴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친척을 어서 들어오라고 붙잡는 듯한, 그런 마음의 흔들림이 그리웠다. “하지만 여기서 시간을 끌면 너무 늦어져”라고 여자는 청년에게 말했다.
“저희가 유키누마(雪沼)까지 가야 하거든요. 오늘 밤에 친구가 하는 여관에서 묵기로 했어요.” 몸을 돌려 그에게도 설명했다.
“유키누마? 이 앞은 산길이라 커브가 많아서 그리 빨리 달릴 수 없어. 한 시간쯤은 예상하는 게 좋아.”
“거봐. 빨리 가는 게 좋겠어.”
“안전운전이니까 괜찮아.”
“지금 진심으로 얘기하는 거야?”
“딱 한 게임만.”
작게 한숨을 내쉬며 여자가 말했다.
“아이, 진짜 못 말리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