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리틀베어 볼링장’은 납작한 콘크리트 상자를 몇 개의 기둥으로 떠받친 별로 크지 않은 이층 건물이다. 아래층은 사방이 뚫린 주차장이고 바깥 계단에 곰이 핀을 안고 있는 장식 간판이 서 있지만 교외의 볼링장이라면 으레 있는 지붕 위의 거대한 핀은 없다. 외벽에 반으로 가른 통나무를 붙여 로그하우스 분위기를 냈기 때문에 먼눈으로 보면 레스토랑처럼 보인다. 레인이 다섯 개밖에 안 되는 내부도 퍽 아담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게임기는 핀볼 한 대와 나인볼 용 빌리어드 한 대가 있을 뿐이다. 도로가 내다보이는 한 귀퉁이의 전면 유리벽 쪽은 커피숍 부문으로 꾸몄지만 두툼한 유리문에는 ‘오늘 영업은 끝났습니다’라는 나무패가 가는 체인에 매달려 있었다. 각 테이블 사이의 박스형 칸막이에는 초록색 플라스틱이 두드러지는 화분이 끼워져 있다. 카운터 옆의 비상등 불빛이 그 한 귀퉁이를 비춰서 엽맥(葉脈)이 없는 맨들맨들한 잎사귀가 형광도료라도 칠한 것처럼 빛났다.
아내가 건강하던 시절에는 이런 알량한 음료수 코너라도 꽤 북적거렸다. 다리에 가벼운 장애가 있었던 아내는 취직 때 불리해질 것을 예상하고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에 조리사 자격증을 따두었다. 그게 생각지 않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게임을 하고 쉴 때나 시간을 기다리는 공간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음료나 가벼운 간식 메뉴뿐이었지만, 날마다 재료를 바꿔 넣는 샌드위치가 사람들 사이에 제법 소문이 나서 게임과는 관계없이 찾아오는 사람이며, 들고 갈 샌드위치를 부탁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아예 바깥 계단으로 직접 들어올 수 있게 개장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 근처에 좋은 부동산을 구해 독립적으로 식당을 차리면 어떻겠느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해서 그는 진지하게 검토해볼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다. ‘리틀베어 볼링장’이라는 이름은 자신의 결혼 전 성씨를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기도 하고, 커피숍 부문도 볼링장 안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게 아내의 주장이었다.
레인이 다섯 개뿐이라서 한창 경기가 좋던 시절에는 주말이면 순서를 예약해놓고 옆 동네 쇼핑센터에서 장을 보며 시간을 때우는 가족 동반객도 많았다. 대충 이쯤에 돌아올 거라고 예약해둔 시간에 돌아오지 못할 때, 레인을 비워둘 수도 없어 한 팀 건너뛰고 다음 손님으로 돌렸다가는 야무진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하긴 그가 중고차 매장을 경영하던 1970년대 초반이었다면 그런 정도의 항의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만 해도 한 게임이라도 더, 한 번이라도 더 볼을 던지고 싶다는 사람들이 볼링장으로 와와 몰려들었다. 그가 아는 단골 볼링장 사장이 은행에 근무하는 고등학교 동창이 사업 확장을 전제로 대출 좀 해가라고 졸라대는 통에 거절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던 게 아직도 똑똑히 생각난다. 그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직장에서 일하는 틈틈이 볼링 게임에 열을 올렸던 그조차도 이런 볼링 붐이 계속 이어질 리는 없다고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도쿄의 회사에 다닐 때 고향에서 중고차 매장을 경영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떨떠름하게 그 뒤를 이은 그는 한때 차갑게 얼어붙었던 사업을 궤도에 올리고 결혼을 하고, 자, 이제부터 행복 시작이다, 하는 단계에 돌연 중고차 매장을 걷어치우고 재고용 차량을 놓아두던 자리를 싸악 밀고 볼링장을 세웠다. 이미 볼링 붐이 지나간 뒤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 이십여 년, 한 세기가 바뀌는 해까지 그럭저럭 꾸려 나오다 문득 깨닫고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나이를 훌쩍 넘어선 뒤였다. 아내마저 세상을 떠난 뒤로는 자신의 건강도 점점 여의치 않아서 경비 절약을 위해 중고차 사업 때부터 쓰던 폴리셔를 안고 왁스칠을 하거나 기사를 도와 오래된 기계를 관리할 체력이 없었다. 이제 그만 슬슬 빠질 때다. 한 달 전에 달랑 한 명 있던 아르바이트 주부를 내보내고 그는 폐업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이 이런저런 뒤처리 수속을 위한 일정을 빼고는 마지막 영업일이었다.
볼링장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하지 않았다. 소식을 전했다가는, 학교 다닐 때 친구들하고 어지간히 신세를 많이 졌다느니, 회사 모임으로 참 뻔질나게 들락거렸다느니, 이런저런 고마운 이유를 달아 이별 모임을 열자고 서두르는 사람이 없지 않을 터였다. 개업 때는 광고지를 인쇄해 나름대로 홍보도 했었으니까 이번에도 똑같은 형식으로 막판 손님 끌기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되도록 조용히 막을 내리고 싶었다.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처리하고, 대충 정리된 다음에 실례가 안 될 만큼 인사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