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아무런 맥락도 없이 스기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마음속에 대고 중얼거렸다. ‘그게 인간이라는 것이 아닐까. 그토록 전심전력을 다했던 내 사랑을 지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 사랑이 기억 속에 있을 뿐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지금도 사랑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인간답게, 내 사랑에 책임을 져야지. 시간의 흐름이 멈출 때까지. Till the end of time, Till the end of time.’
인지증 노인의 가장 큰 문제점의 기준은 실금과 자리보전이다. 기요코의 경우, 실금은 이미 시작되었다. 아직은 가벼운 정도지만 머지않아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게 옳을 것이다. 자리보전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것인지 스기는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자리에서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리라. 실금이나 자리보전이 아내의 현실이 되었을 때, 스기는 그걸 간호해줄 자신은 없었다. ‘특별 양호 노인 시설’의 신세를 지는 건 판에 박힌 형식이지만 거기 말고는 아내를 맡아서 돌봐줄 장소는 없는 것이다. 사랑에 책임을 지는 것도 끝장에는 남에게 내맡기는 부분이 많아지는 건가. 게다가 그 복지시설이라는 게 몹시 좁은 문이어서 신청한다고 금세 들어가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 ‘특양(特養)’과는 별도로 ‘노건(老健)’이라는 게 있다. ‘개호 노인 보건시설’의 약칭으로 1개월, 2개월, 3개월 단위로 노인을 맡아 두루두루 자상하게 돌봐준다. 그나마 가장 미더운 곳은 현재로서는 ‘노건’이다. 일주일 뒤에 다마 시에 새로 생긴 ‘노건’에 기요코를 2개월 계약으로 입소시키기로 했다. 사람들의 평가가 꽤 좋은 곳이다.
아내를 ‘노건’에 입소시킬 때는 화가인 둘째딸이 자동차로 태워다준다. 날씨도 좋은데 드라이브나 하자, 라고 달래서 데리고 간다. 갈아입을 속옷 등을 챙겨 넣은 가방은 미리 차 트렁크에 넣어둔다. ‘노건’ 근처에서 조금 괜찮은 식사를 하고, 대개는 오후 두 시쯤에 시설의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이때쯤이면 아내도 어디에 가는지 대충 짐작하는 모양이지만 싫다거나 집에 돌아가겠다고 떼를 쓰는 일은 아직은 없다. 두루두루 자상한 ‘노건’에는 인지동(認知棟)이라는 플로어가 있어서 인지증을 앓는 노인은 그곳에 수용한다. 환자를 맞이하기 위해 개호 도우미와 간호사가 문진을 하고 소지품에 대한 상의 등이 끝나면 담당자는 “지금 마침 차를 마시려던 참이에요”라면서 입소자의 손을 잡고 일어선다. 따라온 가족들에게 슬쩍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고는 식당 쪽으로 데려간다. 둘째딸도 스기도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그 틈에 얼른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 홀 쪽으로 나온다. 엘리베이터는 암호번호를 누르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 구조다.
“마음이 안 좋아…….”
내려가기 시작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둘째딸이 중얼거리고 아버지인 스기도 마주 고개를 끄덕여주지만, 그런 때 그의 내면을 가득 채우는 건 해방감이다. 아내가 가엾고 헤어진 게 섭섭하다는 감정이 그를 덮치는 건 좀더 지난 다음이다.
다마 시의 ‘노건’에 기요코를 맡기고 스기 혼자 살기 시작했을 즈음, 사카나카 레이코에게서 교토 마루야마 공원의 벚꽃 그림엽서에 빽빽하게 작은 글씨를 채워 넣은 서신이 날아왔다.
‘니시키고지의 시장 등을 취재하기 위해 카메라맨과 함께 교토에 왔습니다. 일이 금세 끝나서 카메라맨은 다시 도쿄로 올라갔는데 저는 왜 아직도 교토에 남아 있는지 아세요? 선생님께서 대화하던 중에 수수께끼처럼 말씀해주신 기야마치의 프랑스 요리점, 제가 찾아냈습니다. 고급 일본요리점을 본뜬 듯한, 교토 뒷골목 거리에 잘 어울리는 카운터 레스토랑. 팁과 관련된 사모님 이야기를 했더니 셰프가 금세 기억하고 그때의 감동을 말해주었습니다. 기야마치의 프랑스 요리점도 멋있었지만, 선생님의 사모님은 그보다 훨씬 더 훌륭한 분이세요. 좀더 소중하게 대해주시지 않으면 벌 받습니다, 라고 건방진 말씀을 드리는 거, 부디 용서해주세요…….’
삼 년쯤 전의 일이다. 기야마치의 그 프랑스 요리점에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다. 시푸드가 주 종목이고, 나이프와 포크는 그대로 둔 채 센스 넘치는 요리를 소량씩 몇 번이고 접시를 갈아가며 차례차례 내주는데, 하나하나 스기 부부의 입맛에 맞았다. 계산을 마치고 밖에 나왔을 때, 기요코가 다카세가와 강변을 걸으며 핀잔하듯이 스기에게 말했다.
“왜 팁을 안 줬어?”
“팁? 어라, 당신답지 않은데?”
“그런 맛있는 요리는 웬만해서는 없어. 이럴 때 팁을 주지 않으면 당신, 틀림없이 후회해.”
“일단 나왔는데 새삼스럽게 다시 돌아가는 것도 모양새가 안 좋지만, 당신이 그렇다면 좀 주고 올게.”
천 엔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는 것을 보더니, 평소에는 깍쟁이 짓을 하던 아내가 “한 장 더”라고 말했다. 어리둥절하기는 했지만 여행길의 일인지라 아내의 말대로 스기는 가게에 다시 들어가 삼천 엔의 팁을 셰프에게 건넸다. 하지만 아무래도 결례가 되는 일이라서 일의 앞뒤를 설명해주듯이 있는 그대로 “집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무렵부터 이상했었어, 라고 여성 편집자의 여행길 서신을 다시 읽으며 스기 게이스케는 생각했다. (끝)
* 다음 주부터 가와바타 야스나리 상 제29회 수상작인 「스탠스 도트」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