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에 석방되어 아오모리 미나카미 경찰서를 나선 스기가 세이칸 연락선을 타고 하코다테에 도착한 것은 그날 한밤중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다시 구시로 행 열차를 갈아타고 삿포로에 도착한 건 새벽 거리가 슬슬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기요코의 여관과는 다른 여관에 숙소를 잡고, 바로 근처의 백화점 옆 ‘5번관’이라는 붉은 벽돌의 찻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깨끗하게 맑은 아침의 태양. 느릅나무 가로수가 추운 바람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발밑을 온통 채운 낙엽이 강 같은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휩쓸리고, 날카로운 방울소리를 내며 고무 타이어의 짐마차가 달려갔다.
찻집의 창가 테이블을 끼고 마주앉은 기요코에게 아오모리에서 일주일씩이나 지체하게 된 사정을 말했다.
“저런, 역시 그랬군요. 요즘 세상, 정말 지긋지긋해.”
언제나 그렇듯이 잠에서 막 깨어난 듯한 눈동자를 번쩍 치켜뜨고 빤히 쏘아보며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이것도 경험이야.”
“제가 죄송하네요.”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아.” 왠지 파랗게 갠 하늘을 보는 듯한 마음으로 스기는 이어서 말했다. “단 한 번의 귀중한 체험이야.”
회색 정장을 입은 기요코는 한층 어른스럽게 보였다. 그때의 그녀가 스기가 본 가장 아름다운 기요코였다. 스기가 그때까지 몇몇 여자들을 사랑했었다면 그 여자들의 영향이 모조리 그때의 기요코 안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스기의 눈에 익은, 이제 막 세트한 듯 반짝이는 머리칼 아래에서 그녀의 얼굴은 뭔가를 지그시 참고 있는 듯한 단면을 내보였다.
‘홀로 창가에 서서 허무한 마음…….’
찻집 안에는 <어두운 일요일(Gloomy Sunday)>의 번역 가사가 흐르고 있었다. 삿포로 거리 곳곳에서 <어두운 일요일>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다미아는 파리의 무대에서 바닥을 기어가듯이 애절하게 이 샹송을 노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두운 일요일>이 삿포로 거리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 노래였던가.
스기는 삿포로에서 세 번 기요코를 만났다. 그중 한 번은 기요코의 직장인 이마이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배니싱 크림을 사는 손님 자격으로 매장의 그녀와 장난스러운 대화를 나누었다. 왜냐하면 바로 곁에 있던 여간내기가 아닌 홍보부 선배의 귀를 속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마이 백화점의 관내방송도 <어두운 일요일>을 틀어주고 있었다.
스기는 삿포로에서 이틀 밤을 머물고, 상쾌한 안개비가 내리는 아침에 도쿄를 향해 출발했다. 배웅하러 역에 나온 기요코와의 이별도 괴로웠지만, 하코다테까지 여섯 시간 반 동안 백주의 차안은 환해서 더욱더 힘겨웠다. 하지만 이게 좋은 거라고 자신에게 되뇌었다.
기요코는 그로부터 아사히카와, 오타루까지 여행자처럼 북녘 땅을 전전한 끝에 그다음 달 중순에야 도쿄에 돌아올 예정이지만, 모두 총무 마음대로 하는 거라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면서 불안한 기색이었다.
늙은 아내의 등을 쓰다듬으며 스기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삿포로는 어디에 가도 <어두운 일요일>이었어…….’
스기의 품안에서 기요코는 잠든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도 한때는 고독감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감각이 둔하게 닳아빠져 심각한 고독감이라는 건 어딘가에 잃어버렸어. 그 대신 당신이 알츠하이머 덕분에 귀찮은 고독감에 자꾸 사로잡히는구나.’
돌연 기요코가 잠이 깨어 부스스 일어섰다.
“케어센터 버스가 와요. 어서 준비해야 돼.”
소파에서 벌떡 일어서려고 하지만 쉽게 일어설 수가 없다.
“케어센터는 내일이야. 내일 오전 아홉 시.”
세이조에 있는 노인 서비스센터의 버스가 계약자인 노인들을 데리러온다. 순서대로 태우며 한 바퀴 도는 것이다. 기요코는 일주일에 사흘을 나가는데 버스가 오는 날은 한 시간 전부터 입고 갈 옷을 고르느라 헌옷 집 창고를 뒤엎은 것처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당신이 다 기억해주니까 나는 마음이 놓여.”
“그보다 머리 좀 깎아야겠어.”
스기는 이발소에 가지 않는다. 머리 깎는 전용가위와 통신판매로 사들인 전기면도기로 이따금 머리 손질을 한다. 그런 도구로 아내의 머리칼을 깎아주려고 하는 것이니, 참 난폭한 일이다. 하지만 아내가 전혀 저항하지 않고 남편이 하라는 대로 해주기 때문에 일하기는 쉽다. 사실은 단골 미용실에 데려가 머리도 감기고 커트와 파마를 해달라고 하면 될 텐데 왜 그런지 아내는 미용실에 가는 것을 싫어했다. 게다가 한 번 가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 사이에 실금이라도 하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지라 미용실에 데려가는 것 자체에 저항감과 불안이 생긴다.
기요코의 머리칼은 비교적 검고 부드러워서 그냥 두어도 별로 덥수룩하지는 않지만 그것도 한도에 이르러 있었다. 세면실 삼면경 앞의 의자에 앉히고 목 아래로는 하얀 천을 덮어씌운 뒤에 가위로 깎기도 하고 전기면도기로 밀기도 한다. 그것만으로는 모양새가 나지 않아 자신이 사용하는 남성용 무스를 뿌려가며 빗으로 매만져주었다.
“잘하네.”
“너무 많이 깎았나?”
“아니, 괜찮아.”
“슬픈 나의 연인, 머리를 빗겨주는, 봄날 저녁…….”
라고 자신도 모르게 띄엄띄엄 흥얼거리는 사이에 눈물이 터지려고 해서 서둘러 거울에서 얼굴을 돌렸다. 빗에 달라붙은 반백의 머리칼을 손 맡의 타월로 닦아내고 있으려니 기요코가 불쑥 말했다.
“나 배고파. 당신은?”
“나도 요즘에는 어떤 요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 좀 이르긴 하지만 오늘 저녁은 배달 초밥으로 때울까? 당신은 어때?”
“당신만 좋다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거울 속의 아내에게 스기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자아, 다 됐습니다.”
그녀의 상반신을 덮고 있는 하얀 천을 벗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