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찻집 앞에서 스기는 여성 편집자와 헤어졌다. 파출소는 성당이 보이는 쪽으로 똑바로 가다가 은행 모퉁이를 오른쪽으로 돌아선 곳에 있는 것이다.
‘향수의 멜로디가 역시 기요코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걸까.’
바로 옆 미용실 앞에서 백여 미터쯤 쭉 뻗어나간 이 미터 폭의 길을 급한 걸음으로 걸으면서 스기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음속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기억 구조의 범주에는 속해 있지 않은 걸까. 어떻든 알츠하이머의 두뇌 안에는 앞뒤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들이 가득하겠지.’
백 미터쯤 쭉 뻗어나간 길에는 인적이 없었다. 조금 전에 기요코가 집에 가려고 이 길로 접어들었다면 저만치에 그녀의 모습이 보일 터였다. 집 앞 길로 꺾어지는 모퉁이까지 한 사람도 인적이 없는 걸 보면 기요코가 집에 돌아가려고 찻집에서 뛰쳐나간 게 아니라고 판단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기요코가 갈 만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은 채, 스기는 어떻든 집에 돌아가 기다리기로 하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사람 없는 집안을 돌아다녔다. 딱히 찾는 것도 없이, 문득 깨닫고 보니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복도를 오락가락, 있지도 않은 분실물을 찾는 것 같은 꼴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십 분쯤 지났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스기 씨인가요?” 그다지 젊지 않은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노가와 강변에 <와트맨>이라는 전기기구점 아시지요? 그 바로 옆의 과일가게인데요, 지금 부인께서 여기 와 계세요.”
“아, 예, 고마워요.”
“몹시 지쳐 계셔서 좀 앉아서 쉬시라고 했어요.”
“지금 바로 데리러가지요.”
“아뇨, 여기까지 나오시려면 힘드실 테니까 파출소에 전화해서 순경 아저씨한테 댁으로 모셔다드리라고 할게요.”
“…….”
“부인은 괜찮으세요. 자, 그럼 그렇게 아시고.”
아내에게 명함을 갖고 다니게 하기를 잘했다고 스기는 생각했다. 노가와 강은 성당 건너편이니까 그리 멀지는 않지만 강가의 보도를 <와트맨>까지 허청거리는 걸음으로 더듬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남편의 팔에 매달려 걸을 때와는 다르게 비합리적일 만큼 빠른 보행을 한 건 아닐까, 하는 두서없는 생각이 떠올라서 스기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단조로운 경치 외에 아무것도 없는 노가와 강변도로까지 아내는 뭘 보겠다고 허위허위 찾아간 것일까.
삼십 분쯤 뒤, 아내는 제복 경찰의 손을 잡고 무사히 귀가했다. 중년의 경찰은 자전거를 타고 노가와 강변의 <와트맨> 옆 과일가게까지 달려가, 그다음에는 기요코를 부축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도보로 스기네 집까지 왔다고 한다. 죄송해서 머리를 숙이는 스기에게 체격 좋은 경찰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뇨,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데요, 뭘. 여기자분께서 할머님의 특징까지 잘 알려주셨어요. 마침 과일가게에서 전화가 와서 한숨 놓았습니다. 무사하셔서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그러고는 “또 오세요”라고 엉뚱한 인사를 하는 기요코에게,
“네, 할머니. 고단하실 테니까 푹 쉬세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라는 말을 건네고, 스기 쪽에 거수경례를 붙이고는 자전거를 놓고 온 과일가게를 향해 갔다.
“어서 들어가자.”
갑자기 지쳐버린 모습으로 지팡이에 매달리는 아내를 껴안듯이 현관문 쪽으로 데리고 가면서 스기는 물었다.
“뭔가를 어딘가에 잊어버리고 온 것 같았어?”
“나도 모르겠어. 순경 아저씨가 어째서 과일가게에 있었지?”
“글쎄, 어째서일까나.”
“어째서 저렇게 착하지?”
“누가?”
“순경 아저씨가.”
집 안에 들어서자 식당 소파에 무너지듯이 주저앉는다.
“쓸쓸해서 어째야 좋을지를 모르겠어.”
“내가 함께 있으니까 괜찮아…….” 곁에 앉으면서, 자신이 하는 말이지만 참으로 공허하게 들리는 어조로 스기는 말했다. “여보, 이제 마음 푹 놓아.”
“정말? 고마워.”
어딘지 어긋나버린 목소리로 기요코는 말하더니 매달리듯이 스기의 품에 안겨왔다. 그 등을 쓰다듬으며 스기는 그 순간,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 그때, 나는 어떤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때라는 건 2.2사건이 있었던 1936년 가을이다. 조금 전에 경찰이 시민을 보호해주는 실제 모습을 목격하고 스기는 경찰이 시민을 이유도 없이 체포하던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스기 게이스케는 화장품 메이커의 마네킹으로서 홋카이도에 출장 중이던 기요코를 한번 만나보려고, 단지 그 목적만으로 우에노에서 도호쿠 본선을 타고 아오모리로 향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하코다테로 건너가는 연락선 승강장에서 특별고등경찰 소속의 형사에게 체포되어 아오모리 미나카미 경찰서 유치장에 일주일 동안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유치장이란 법적으로는 대용 감옥이다. 그것의 또 다른 대체 수단으로서 그 또한 감방인 보호실에 갇힌 채 보내야 했던 일주일이 얼마나 괴로운 것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