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문학부 3학년인 그는 단위를 목적으로 강의를 들을 일은 이제 거의 없고, 남은 건 졸업 논문뿐이었다. 게다가 부모 슬하의 가장 자유로운 생활환경이었다.
스기는 이틀 걸러 한 번씩, 하루걸러 한 번씩, 그리고 그다음에는 거의 매일같이 저녁 무렵이면 히가시나카노의 하숙집을 나와 <프리마스>에 드나들었다. 한두 잔의 위스키(당시는 위스키를 물에 타서 마시는 습관이 없었다. 또한 국산 위스키가 없는 건 아니었겠지만 위스키라고 하면 대부분 스카치위스키였다) 글라스를 앞에 놓고 주사위 놀이를 해가며 한밤중까지 한쪽 구석의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하는 스기는 춤추러 오는 손님들에게는 눈에 거슬리는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춤추는 손님이 없을 때면 기요코는 곧잘 ‘향수’ 레코드를 플레이어에 걸었다.
“이 곡, 좋아하시죠?”
“응.” 스기는 대답했다. “아주 많이.”
그리고 당신만 옆에 있어준다면 ‘향수’ 같은 건 아무려나 상관없어, 라고 스기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육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감미로운 애수의 물결에 둥둥 띄워 올리는 듯한 ‘향수’의 멜로디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주인이 이 인분의 커피를 스기와 기요코 앞에 내려놓자 맞은편에 앉은 사카나카 레이코가 자기 앞의 각설탕 통을 두 사람 앞으로 옮겨주었다. 스기는 각설탕을 두 개만 아내 앞의 커피 잔에 넣어주며 말했다.
“이 곡을 왈츠로 다시 편곡한 게 있어. 아주 경쾌해서 원곡의 고답적인 분위기는 사라져버렸지만.”
그 말을 들은 게 그럭저럭 오십여 년 전,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어딘가의 빌딩 창에서 흘러나오는 진주군 대상의 방송 일부분이다.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대화 상대 사카나카 레이코는 그즈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리라.
기요코가 설탕 통을 당겨 각설탕을 다시 두 개, 세 개 자신의 컵에 넣었다.
“그렇게 설탕을 많이 넣으면 달아서 못 마셔.”
스기가 서둘러 만류했다. 꾸지람을 들은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기요코는 스푼으로 얼른 커피를 휘저어 둘러 마신다. 집의 이층 응접실에 놓인 커트글라스 설탕 통 속의 각설탕이 어느새 텅 비어버린 것도 바로 최근의 일이다. 생리적으로 단맛을 원하는 건 알츠하이머 증세와 아마도 깊은 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커피를 한두 모금 마신 참에 기요코가 갑작스레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잠깐만”이라고 중얼거리고는 지팡이를 집어 들고 출입구의 유리문을 당기는 것과 동시에 밖으로 나갔다. 스기가 말릴 새도 없이,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의 잽싼 동작이었다. ‘향수’의 멜로디는 아직도 흐르고 있었다.
“배회하는 게 버릇이 된 걸까요?”
여주인이 곁에 다가와 스기에게 말했다. 이 사람도 인지증에 걸린 어머니를 이삼 년 전에 떠나보냈다. 항상 부부가 나란히 찾아오는 스기와 기요코에게 각별히 마음을 써주는 사람이다. 기요코의 대부분의 증세도 잘 알고 있었다.
“배회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따금 없어지곤 한다니까.” 스기는 대답했다. “그래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어.”
“혹시 이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아닐까요?”
이제야 음악을 꺼도 소용없지만, 이라는 몸짓으로 여주인은 유선방송의 스위치를 끄러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음에 들지 않기는커녕 ‘향수’는 나와 기요코의 만남의 테마 멜로디라고 스기는 내심 중얼거렸다. 하지만 기요코는 스무 살 무렵에 긴자의 술집에서 일했던 것 따위는 기억하고 있지 않다. 물론 기억하고 있었지만 인지증으로 인해 망각의 분야로 밀려난 것이다. 그래서 그것과 연결된 ‘향수’의 멜로디 같은 것도 기억에서 말살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방금 보인 기요코의 행동은 대체 무언가, 라는 생각에 스기는 곤혹스러웠다.
“제가 이 근처를 잠깐 둘러보고, 역 앞 파출소에 들러서 말해놓을게요.”
사카나카 레이코가 가방을 들고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어떻든 그녀는 저녁 시간까지는 편집부가 있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자네에게 괜한 부록이 딸렸네.”
스기도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꺼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근처는 사람들의 통행이 적은 곳이라서 파출소에 부탁해두면 괜찮을 거예요.”
그런 여주인의 말대로 길을 지나가는 사람도 적은 자그마한 동네 뒤편에서 이 찻집도 점심식사 시간을 빼면 거의 손님이 없다.
기요코가 집으로 돌아간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스기는 일단 서둘러 귀가하기로 했다. 집의 현관문은 열쇠가 잠겨 있다. 열쇠는 스기가 갖고 있었다.
“아마 금세 돌아오실 거예요.”
“응. 그럼 파출소는 부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