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의향은 물어볼 것도 없이 유리문을 밀고 그 찻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 깊숙이, 가게의 중간 정도의 벽 쪽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조금 전에 헤어진 사카나카 레이코인 것 같다. 그 밖의 손님은 없었다.
아내가 가게 안에 들어선 것을 확인하고 스기는 사카나카 레이코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가서 그녀 앞자리의 의자를 당겼다. 사카나카는 다시 한 번 원고를 읽어보고 있었는지 스기의 원고를 서둘러 봉투에 담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이 찻집에 자주 나오세요?”
웬만해서는 동요하지 않는 성품의 사카나카 레이코는 뭔가 적고 있던 수첩을 가방 속에 넣으며 기요코 쪽을 돌아보고 말했다.
“점심 먹으러 자주 오곤 하지.”
스기는 대답하고, 아내에게 옆자리 의자에 앉으라고 말했다.
“아시는 분?”
“어라, 조금 전까지 우리 집에 있던 손님이잖아.”
“아, 실례했습니다.”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고 아내는 자리에 앉았다.
“사카나카 씨는 오늘 이래저래 첫 경험이겠구먼.”
“선생님, 좀더 성실하게 대하셔야죠. 그러지 않으시면 사모님이 가엾잖아요.” 그리고 기요코에게 “조금 전에 주신 케이크, 정말 맛있었어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역시 요리 잡지의 편집자는 다르군. 캡슐 케이크라는 것도 있는 모양이지?”
“또 또 그런 심술궂은 말씀을.”
찻집 여주인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가 다시 돌아갈 때, 나지막한 음량으로 흐르던 음악이 멎고 잠깐 틈을 둔 뒤 다른 조용한 곡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
스기는 마음속으로 신음 소리를 냈다. 몇십 년 만에 들어보는 곡이지만 듣자마자 진한 정서를 동반하고 한 덩어리의 상황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일순, 그는 꿈꾸는 듯한 심경에 빠졌다. 아내는 별다른 반응이 없는 기색이었다.
“스브니어, 추억이라는 곡이야.”
스기는 맞은편의 여자를 향해 말했다.
“저도 들은 적이 있어요. 좋은 곡이군요.”
“F. 드르들라라는 작곡가가 슈베르트의 묘지를 찾았을 때 악상을 떠올려 작곡했다던가.”
“자세히도 아시네요. 영어로는 Souvenir인가요?”
이 ‘추억’이라는 곡이 스기를 기요코와 맺어주었던 것이다. 그때도 고독감의 포로가 되어 무턱대고 거리를 방황하던 스기는 도바시 근처 니시긴자 거리의 어느 작은 삼층 건물 앞을 지나다가 이층에서 길 쪽으로 이어진 바깥계단 위에서 ‘추억’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것을 깨닫고 저도 모르게 발을 멈추었다. 물론 그 곡을 처음 들은 건 아니었다. 기억에 새겨진 좋아하는 곡 중의 하나였는데 우연의 작용으로 마침 그 순간 그가 빠져 있는 고독감과 길가의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의 파장이 딱 맞아떨어졌다고 할 것이다. 스기의 발은 그 건물 앞 포도에 못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삼층 건물의 일층과 이층을 <프리마스>라는 주점이 차지하고 있었다. ‘추억’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건 이층이었다. 누군가 손님이 막 들어가는 겨를에 그 문이 반쯤 열린 채였던 모양이다.
한참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문득 깨닫고 보니 스기는 어느새 이층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프리마스> 주점은 일층이 본점, 이층은 별관으로 꾸며놓았는지 플로어 부분이 넓게 자리를 차지해서 춤추기 좋게 만들어져 있었다. 주점에서의 댄스는 금지되던 시절이지만 조용한 장소에서 술을 마시며 춤추는 정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곳을 원했던 것이다. 기요코는 그곳에 있었다. 1936년 봄의 일이다.
기요코는 아름답다는 형용이 그 즉시 떠오를 만한 타입의 여자는 아니었다. 생생한 두 눈을 중심으로 내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모종의 영리한 매력은 가볍게 쓰윽 보고 지나치면 그뿐이었을 테지만 스기에게는 피할 수 없는 뜻밖의 만남이었다. 그것이 지성보다는 감성으로 살아가는 그 같은 사내를 이른바 사지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프리마스>의 대여섯 명의 여자들 중에서 기요코는 윤락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 단 한 명의 여자였다. 잘못하여 이 세계로 흘러든 듯한, 여차하면 아직 여학생 같은 느낌마저 풍기는 여자였지만, 독립심이 강한 그녀의, 어느 쪽인가 하면 지적인 성격과 이런 일터가 가진 애매모호한, 허공에 뜬 것 같은 분위기와의 강한 대조에서 우러나오는 모순의 느낌은 처음부터 스기에게 각별히 두드러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여자는 자기 자신에 강하게 집중하고 거기에 푹 빠져 있다.’
손님과 춤추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스기는 기묘하게 깨인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