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방 전깃불의 광도를 낮춰놓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주방이며 식당, 복도와 욕실, 화장실, 두 개의 작은 방, 현관까지 차례차례 불을 끄고 다녔다. 계단의 불만 남겨놓고 이층 자신의 방에 올라오자 잠옷 위에 가운을 걸치고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책상 위를 비추는 전등의 팔을 뒤로 밀어 불빛을 조금 멀리 보냈다.
‘기요코가 자꾸만 쓸쓸하다고 말하는 건 뇌 안에서 기억 기능이 급속히 감퇴하는 것과 함께, 그저 나 혼자 상상해보는 것뿐이지만, 컴컴한 세계 같은 게 보여서 고독감은 물론이고 죽음의 예감 같은 것에 시달리는 데서 나오는 공포감 때문이 아닐까.’
반은 자신의 일처럼 그런 것이 상상되었다.
‘이 년 전, KC 병원에서 처음 진찰을 맡았던 의사는 반년쯤이면 자리보전을 하게 될 거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기요코는 아직껏 서서 돌아다닌다. 하긴 돌아다닌다고 해도 극단적으로 느긋한 사람이 아닌 한, 도저히 함께 걸을 수 없을 만큼 슬로 템포의 걸음걸이지만. 그래도 아무튼 보행이 가능해서 자리보전을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어쩌면 지금도 복용하고 있는 신약 아리세프트의 효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KC 병원에서 현재 치료를 맡은 의사도 어차피 머지않아 자리보전을 하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한다. 자리보전 상태에 들어가면 이삼 년 안에 죽는 경우가 많다는데…….’
거기까지 생각하자 스기의 시야는 불빛을 멀리 밀어내 어둑어둑한 데서 다시금 한층 나락으로 떨어지듯이 어두워지는 마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든 뒤에는 아내가 죽으면 반드시 삼 년 이내에 남편도 죽는다’라고 친구들 사이에서 수군덕거리는 전언 같은 것이 당연한 일처럼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스기의 가까운 작가 친구도 이 징크스에 부합하는 이가 세 명쯤 있었다. 가장 최근의 예가 2002년 3월에 ‘고독사’ 한 작가 F.K다. 아내가 급성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 년 삼 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기요코가 사 년 후에 죽는다고 가정하면 나는 칠 년 뒤쯤에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얘기지만, 뭐, 얼추 그 정도인가, 하고 손가락 꼽듯이 여명의 주판을 놓아가며, 아아, 싫다, 싫어,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앞으로 칠 년을 더 산다면 스기는 96세가 되어 글 같은 건 쓸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싫다 싫어, 하고 고개를 흔들고 있으니, 81세에 돌연 죽어버린 F.K는 죽음 직전에 세상을 죄다 깨달은 듯한 글을 남기기는 했지만 역시 어지간히 싫었던 것이리라. 앞서 말한 징크스에는 실은 그다음에 딸린 구절이 있다. ‘남편이 먼저 죽으면 아내는 그 뒤로 십육 년을 산다’라는 것. 하지만 스기의 경우에는 그 말이 아무래도 실감나지 않았다.
덧문 틈새로 바깥의 희뿌연 공기가 들어오는 것이 아침이 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스기는 책상에 붙은 조명과 베드 램프를 끄고 침대에 기어들었다.
…… 집 앞의 길은 조금만 나가면 오른쪽으로 꺾어진다. 사카나카 레이코의 모습이 거기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스기가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도 잠깐 밖에 나갈까?”
기요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럼 준비할게”라면서 열려 있는 대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조금 전에 사카나카 레이코가 지나갔을 터인 쭉 뻗은 길을 걷고 있었다. 집 앞 길 끝의 유료주차장 울타리를 타고 골목을 십오 미터쯤 나가면 쭉 뻗은 이 미터 폭의 도로로 나서는 것이다. 치과의원이며 파출부 소개소며 중화요리점이 있는 외에는 주택이나 맨션만 빈틈없이 줄줄이 서 있는 조용한 길은 정확히 백 미터쯤 간 곳에서 문득 넓어지면서 상점이 많은 도로와 직각으로 만나게 되는데, 이 백 미터쯤의 길이 스기에게는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지팡이를 짚지 않은 쪽 손으로 스기의 팔에 매달려 걷는 기요코의 보행 속도가 극도로 느리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삼 분이면 저 끝의 미용실 앞길까지 갈 수 있는데 아내와 함께 나오면 그 몇 배나 시간을 더 들여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혼자 걸을 때보다 몇 곱절이나 피곤하다. 자신만 먼저 십 미터나 이십 미터쯤 앞에까지 가서 걸음을 멈추고 아내가 따라오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것을 되풀이하는 방법을 취하는 때도 있지만 이건 이것대로 역시 적지 않은 피로감을 몰고 오는 것이다. 휠체어를 탄다면 그나마 약간은 간병하는 스기의 피로감도 덜어질 텐데 도저히 그건 탈 생각이 없다고 끝내 버틸 모양이다.
중간에 유모차를 밀고 나온 여자라도 만나면 다시금 보행 시간은 연장된다. 아무튼 어린아이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치매가 된 뒤부터 기요코는 유아에 대한 애착이 갑자기 강해졌다. 아이에게 말을 건네고 얼러가며 한없이 꾸물꾸물 시간을 보낸다. “이제 어지간히 좀—” 하고 옆에서 떼어낼 수도 없어 스기는 아내가 만족할 때까지 기다린다.
겨우 미용실 앞길까지 가면 스기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미용실 옆이 찻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