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는 후유 하고 반쯤 웃으며 마리코의 기백에 졌구나, 아아, 다행이다 하는 마음으로 아내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마리코가 그렇게 엄하게 사람을 몰아치는 건 처음 보았다는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바로 그때부터였다, 기요코가 큰딸 마리코를 기억에서 잃어버린 것은.
몇 주일 만에 목욕탕에 들어갔던 그날 밤, 서재 의자에 앉아 있던 스기에게 기요코가 다가와 말했었다.
“여보, 아래층 방에 있는 이상한 여자, 누구야?”
남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묻는 것이었다. 스기는 놀란 마음을 감추며, 곁에 서 있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이상한 여자가 있어?”
“응, 아주 잘난 척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설치고 있어.”
“여보, 마리코야.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당신 딸—, 잊어버렸어?”
비와 호수의 나가하마에서 스기가 상업고교 교사로 재직하던 육십여 년 전, 매미 소리가 한창이고 쨍쨍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마리코가 태어났던 그날이 일순 스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 딸은 요코하마에 있어.”
“그건 둘째 딸이고.”
“저 외국인은 누구야?”
“마리코의 남편, 우리 큰사위야. 사이가 아주 좋지?”
“착한 사람이야. 하우아유래.”
스기의 손을 뿌리치듯이 떼어내고 기요코는 서재를 나갔다.
‘아아, 마리코가 가엾구나. 모녀간의 생이별 같은 꼴이야.’
파더 콤플렉스가 강한 딸이라서—, 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다지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기가 드센 편이라 제 어미에게 버려진 듯한 마음에 빠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가 드센 큰딸의 성격이 모녀의 생이별을 불러들인 것이라고 해야 할까.
거의 일 년 뒤, 똑같은 이층 기요코의 침실이다.
“마리코는 왜 일본에 안 들어올까?”
남편의 품 안에서 기요코가 말했다.
“이제 곧 올 거야.”
오지 않는 편이 좋다고 내심 중얼거리며 스기는 대답했다. 큰딸이 영국에 있는 한, 모녀관계는 관념 속에서나마 붕괴되지 않는다.
“피터가 무슨 힘든 병이 있어서 병원하고 인연을 끊을 수 없다고 하던데.”
“외국인 허즈하고 사이가 좋지?”
“허즈?”
“우리도 사이가 좋지?”
“나이를 먹어도 이상하게 사이가 좋지.”
“당신이 도망쳐도 난 당신 안 놓을 거야.”
“도망칠 리가 있나.”
“가장 소중한 사람.”
어느 쪽이랄 것도 없이 우리는 의사 놀이를 시작했다. 오래간만이었다. 기요코의 중요한 부분은 개구부가 약간 작아졌지만 분명하게 젖어 있었다. ‘재가 될 때까지’라는 말 그대로인 것 같지만 사내는 그렇게는 안 된다. 하지만 여든 살을 진즉에 지난 사내로서는 이례적인 일로, 이 사내가 아직껏 미량의 사정을 한다. 그 사정에 이르는 쾌감은 참으로 격렬해서 젊은 시절의 안이한 그것을 자칫하면 뛰어넘는 구석이 있었다.
“다시 한 번 잠을 청해봐.”
라는 말을 남기고 스기는 잠시 뒤에 아내의 침대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