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코가 집을 나가겠다고 우길 때,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건 한참 오래전에 돌아가신 장모의 고향인 난키 해안, 오와세와 가까운 A 읍이다. 장모 일가의 묘지 몇 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스기가 나서서 한곳에 합장하자고 제안하여 십여 년 전에 <아케타 가의 묘>를 만들었다. 바닷가 묘지 옆에 있는 석물가게 젊은 주인과 이야기하던 중에 비용이 놀랄 만큼 저렴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스기는 그 자리에서 계약하고 공사를 의뢰한 바 있었다. 1938년에 스기가 아케타 기요코와 결혼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와 여덟 명의 오빠, 언니는 이미 사망했고 가장 위의 언니만 결혼해서 따로 살고 있었다. 그래서 아케타 가의 호적에는 생존자로서 나이 든 어머니와 막내딸 기요코의 이름만 기재되어 있을 뿐이었다. 스기가 기요코와 결혼하면서 필연적으로 아케타 가의 혈통은 끊기고 말았다. 스기의 입장에서는 기요코를 데려오는 바람에 아케타 가의 혈통을 끊었다는 죄책감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래서 바닷가 묘지에 <아케타 가의 묘>를 세워주자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보리사의 스님과도 석물가게 주인이 잘 이야기해서 양해를 얻어주었다. 그 묘지에서 가까운 곳에 내과 쪽 종합병원이 있어서 입원 환자도 제법 되는 모양이었다. 그 원장이 기요코의 사촌동생뻘 되는 사람이다. 기요코는 거기에 환자로서 신세를 질 생각을 하는 눈치지만 그건 그리 간단히 성사될 이야기가 아니었다.
“자, 눈 좀 떠봐. 등산이야.”
스기는 다시 타이르며 아내를 일으켜 세워 복도로 데리고 나갔다. 아래층 소파에서 그대로 자게 했다가는 담요가 흘러내려 감기에 걸리거나 몸을 뒤척이는 겨를에 아래로 떨어질 우려가 있어서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집의 계단은 예닐곱 단쯤 올라가야 한다. 손잡이가 있기는 하지만 180도 방향을 전환하는 곳에서 기요코는 무척 고생을 한다. 게다가 잠이 든 참에 억지로 깨워 등산하듯이 기어 올라가야 하는지라 원래부터 허약한 허리 아래쪽이 말을 듣지 않는다. 층계참에서 이삼 분을 쉬고 난 뒤에 남편의 품에 안기다시피 겨우 이층 복도까지 올라왔다. 스기도 온 힘을 쥐어짜 아내를 이층까지 밀고 왔지만, 사실 심근경색의 전력이 있는 남자가 한밤중에 무리하게 힘을 쓰는 건 상당히 위험한 짓이다.
가까스로 이층 아내의 방에 도착하여 침대에 그녀를 눕혔다. 이번에는 자기와 함께 자자면서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별 수 없이 스기는 아내 옆으로 기어들었다.
아내가 스기의 품에 안겨들었다. 그녀는 질병에 의해 자신의 고독을 깨달은 것이다, 라고 스기는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극히 젊은 시절부터 그녀는 곧잘 고독을 호소하며 쓸쓸해, 쓸쓸해, 라고 그림엽서 등에 써서 보내곤 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진짜인 모양이네, 라고 스기는 중얼거렸다. 큰일났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그와 동시에 정말로 그녀가 고독감에 도달한 것이라면 그건 좋은 일이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당신하고 아이를 낳았지?”
잠이 깬 목소리로 기요코가 말했다.
“셋이나 낳았지.” 스기는 중얼거리듯이 대답했다. “가장 큰 딸아이는 영국에 가 있어.”
“아, 그애 참 착하지?”
착한 것이 무조건 가장 좋은 것인 양 말하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그 착한 큰딸을 작년에는 왜 그렇게 슬프게 했나, 하고 이것도 말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라고 체념하면서도 스기는 생각했다.
작년에 큰딸 마리코는 영국인 남편과 둘이 일본에 와서 삼 주일 남짓 이 집에 머물렀다. 그중 하룻날, 딸에게 어머니 목욕을 좀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왜 그런지 목욕을 몹시 싫어해서 삼 주일이고 사 주일이고 목욕탕에 들어가지 않았다. 마리코는 아버지의 말을 대개는 고분고분 들어주는 편이다. 그런데 욕조에 뜨거운 물도 받고, 들어갈 준비를 다 마친 뒤에 제 어머니를 욕실로 데리고 가려고 해도 한사코 거부하며 듣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려나, 하고 스기는 지켜보고 있었다. 느닷없이 마리코가 큰소리를 냈다.
“정말 안 들어가? 다 준비했는데? 들어가, 응? 정말 안 들어가? 정말 안 들어가면 나, 가버릴 거야! 이 집 나가서 딴 데로 가버린다고. 그래도 돼? 괜찮아? 얼른 들어가. 말 좀 들어!”
기백이 담긴 음성으로 몰아붙이는 말들이 온몸을 내리쳐 점점 기요코의 몸이 작아져가는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알았어. 난 나가버릴 거니까 마음대로 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리코는 어머니 곁을 떠나 현관 쪽으로 나가는 척했다. 그러자 억지로 끌려가듯이 기요코는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입고 있던 옷을 벗으며 욕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