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몽상가 키에르케고르는 한 여성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영원히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 즉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고 하면서 혼약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하지만 스기는 실존철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키에르케고르의 흉내를 낼 수는 없었다. 기요코를 사랑했던 스기는 의식의 저 밑바닥에서는 결혼하여 아이를 만드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첫째로, 결혼하기까지 그녀와 섹스 관계를 가지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던 것이 우여곡절을 거쳐 결혼하고,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고 타락하면서 고독 같은 건 어딘가로 떨려나버렸다.
스기 게이스케가 가장 큰 고독감에 시달린 것은 대학을 졸업하기 전후 무렵이었다. 밤낮없이 거리를 방황하는 것으로 그 고독감을 풀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길거리 방황 속에서 기요코를 만났던 것이다. 벌써 육십 년도 더 된 옛날 일이다. 이토록 맑은 눈을 가진 여자가 이 세상에 있다니, 하고 그때 스기는 생각했다. 사랑에 빠진 그의 고독감은 더욱더 깊은 것이 되었다. 낮이고 밤이고 기요코만 생각했다. 만나서 함께 있을 때 이외에는 점점 더 진한 고독감에 허덕였다. 외로움 속에서 “혹시 지금 기요코에게 총구를 겨누고 쏘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너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 총구 앞에 나설 수 있는가?”라고 곧잘 그는 자신에게 질문하곤 했다. 질문을 던지는 자기 자신에게 “나설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사랑의 자각이었다. 그 뒤로 온갖 괴로운 일과 즐거운 일이 있었지만, 결혼을 하고 차례차례 아이가 태어나고 전쟁이 터지면서 지방으로 피난을 가고 스기는 군에 징집되는 등,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내 아내 기요코에게 총구를 겨누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가로막고 나설 수 있는가?”라고 스기는 자기 자신에게 묻곤 했다. 왠지 그때마다 환상으로서 총구가 떠오르는 것이다. 머뭇거리는 때도 있었다. 고민에 잠기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대답할 수 있었다.
“총구 앞에 설 수 있고말고. 자아, 쏴봐라!”
그렇게 몇십 년이 지났을까. 이제 다시 스기는 그 총구 앞에 서 있다. 총에 채워진 탄환은 알츠하이머형 인지증이다.
몇십 년 전, 고독감 속에서 목숨과 바꿔도 좋다는 뜨거운 마음을 기요코에게 쏟아부었던 그 사랑이라는 이름의 내 마음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금 스기는 그것만 생각하고 있다. 목숨과 바꿔도 좋다고 마음을 정했던 젊은 날의 사랑의 마음은 지금도 생생하게 다시 떠올릴 수 있다.
알츠하이머는 불치병이라고들 한다. 그래도 이 년 전, 자꾸만 물건이 없어지고 기요코가 범인을 조작하기에 공을 들였던 그 일련의 상황은 어느새 사라지고, 증상이 전반적으로 조용해졌다. 병이 나은 건 아니지만 그나마 조용해진 건 아리세프트라는 신약의 효과일 거라고 스기는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아리세프트의 약효가 팔 개월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보고서 비슷한 신문기사를 어느 의료 현장의 의사가 써낸 것을 보았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이해되는 구석이 있었다. 물건이 없어지는 현상이 줄어든 건 분명하지만, 반년쯤 뒤에는 화장품이며 목걸이, 반지 등이 다시 통째로 없어졌다. 아내는 화가인 둘째딸이 몰래 자신의 서랍을 열고 가져간 게 틀림없다고 소란을 피웠다.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네. 그 애가 매번 당신 화장품을 사다주는데.”
“그럼 당신이 딴 여자를 데려와서 가져가게 했지?”
그렇게 소리를 질러댄다. 그런 때, 예전에는 울면서 스기의 등을 주먹으로 때리곤 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일은 없어졌다. 조용해지기는 했지만, 하는 말은 더 사나워졌다.
“당신하고 함께 살 수 없어. 난 나갈 거야.”
“어딜 가려고?”
“어디에 가건 내 마음이야. 여비는 줄 거지?”
“그야 얼마든지 주지.”
3만 엔이든 4만 엔이든 스기가 건네준 돈은 금세 잊어버리고 아무 데나 던져놓기 때문에 다시 거둬들이는 데 그리 고생할 일은 없지만, 한밤중에 느닷없는 억지소리를 하고 나서는 건 노상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