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박스 한쪽을 뜯어내 화장실에 들고 돌아간 스기는 다시 한쪽 귀퉁이를 찢어서 그걸 주걱 삼아 아내의 배설물을 냉큼 종이 위에 옮겼다. 이런 일련의 작업이라면 스기는 난폭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재빠르고 간단하게 처리해버린다. 그다지 싫다는 둥의 느낌은 없다.
종이에 떠올린 아내의 배설물을 변기에 버리고, 그 참에 종이 위를 주걱으로 사용한 종이쪽으로 쓱쓱 비벼서 씻어냈다.
버튼을 눌러 내용물을 깨끗이 흘려보내고, 지저분해진 종이는 두 개로 접어 주걱으로 사용한 것과 함께 서재에서 주워온 비닐봉투에 넣었다. 오래된 수건을 세면대 물에 적셔 타일 바닥을 말끔히 닦아내는 청소도 했다. 더러워진 수건을 종이와 함께 비닐봉투에 넣고 끝을 묶었다. 그다음은 태우는 쓰레기를 버리는 날에 다른 쓰레기와 함께 큼직한 봉투에 넣어 20미터쯤 떨어진 소정의 장소에 가져가면 된다.
그때였다. 아내는 실금하여 지저분해진 팬티를 대체 어디에 내버리는 걸까 하는 의심이 생긴 것은. 세탁기를 돌리는 것도, 세탁된 옷가지를 뒷마당에 내다 말리는 것도 스기의 일거리지만, 아내의 팬티가 세탁물 안에 섞여 있는 건 어쩌다 한 번씩밖에 없었다. 더러워진 팬티는 죄다 내버리는지도 모르지만 쓰레기를 봉투에 넣어 내다놓는 것도 스기의 일이라서 여자 팬티가 쓰레기 속에 섞여 있다면 대개는 알았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아래층 화장실에 종이기저귀가 버려져 변기가 가득하도록 부풀어서 착지 직전의 낙하산처럼 둥둥 떠 있는 것을 스기가 발견했던 게 그 이 주쯤 전의 일이다. 역시나 물은 흘려보내지 않은 모양이지만 아차 잘못해서 버튼을 눌렀다면 배수구로 흘러드는 물이 막혀버릴 뻔했다. 그때 서둘러 종이기저귀를 건져내고 그 참에 그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더러워져 있었다. 곧바로 비닐봉투에 넣어서 처리했다. 하지만 그 종이기저귀는 대체 어디서 난 것일까. 종이기저귀를 약국에서 산다는 것쯤은 스기도 알고 있지만 그걸 약국에서 사다준 일은 없었다.
작년 연말부터 정월까지 도쿄 변두리의 M 시에 있는 노인 복지시설에 한 달쯤 아내를 입소시킨 적이 있었는데(맡겼다), 거기서 실금하는 버릇이 들었는지 출소하여 돌아왔을 때 종이기저귀가 채워져 있었다. 스기는 그때 종이기저귀라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 뒤로 종이기저귀는 아마 세이조 케어센터에서 받아올 것이다. 일주일에 세 번씩, 센터에서 버스로 데리러 와서 여섯 시간 남짓 개호 도우미와 함께 지낸다. 점심식사와 간식이 나온다. 간호사도 있다.
물건이 자꾸 없어졌다 나타났다 하는 사건이라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기요코의 황폐해진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었다. CT나 MRI로 뇌를 투시하여 알츠하이머형 인지증을 여실히 관찰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 인지증으로 점점 더 황폐해져가는 인간의 마음을 투시하는 기계는 없는 것일까.
아니, 기계에 의지할 것도 없다. 이를테면 식당과 주방의 칸막이로 쓰는 큼직한 찬장의 유리문만 열어봐도 그곳에 펼쳐진 광경은 황폐한 인간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본래 찬장에 수납되어야 할 그릇이나 유리잔, 칠기 같은 식기류가 예전의 단정한 자기 자리를 잃어버리고 난맥의 극치라고 할 취향을 드러내고 있는 건 그나마 낫다. 안경, 식칼, 쓰던 비누가 담긴 비눗갑, 브러시, 찌그러진 티슈박스, 둘둘 뭉친 블라우스와 팬티가 젓가락이나 나이프나 포크가 들어 있어야 할 서랍에 한꺼번에 들어가 있고, 밥공기와 찻잔이 선반이 아니라 서랍에 뒤죽박죽 쑤셔 박혀 있다. 도저히 통상의 감각을 가진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아내가 침실에서 나왔을 때, 스기는 세면대 앞에 서서 얼굴을 씻고 있었다.
“잠 좀 잤어?”
“응”이라고 멍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어디야, 여기?”
“글쎄, 어디일까?”
스기는 느닷없이 시야를 흐리게 하는 눈물을 수건으로 훔치며 대답했다. 아내는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빈도가 예전보다 더 많아진 것 같다.
“이즈미 다마가와인가?”
“아차차, 아쉽게 틀렸네요.” 복도로 나가면서 스기는 말했다. “이즈미 다마가와는 십삼 년 전에 살던 곳이야.”
스기는 아내를 품에 안았다. 자연스럽게 입을 맞췄다. 귀엽다고 그는 생각했다. 귀여운 아내가 돌아왔다고,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