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서명 말고는 모두 스기가 난폭한 글씨로 써넣은 것이었다. 그런 증거라도 남겨두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목걸이를 맡겼다, 어서 내놓으라면서 떼를 쓰는 것이다. 하긴 증서를 받아둬도 쓸데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수없이 조르고 떼를 쓴 끝에 잃어버렸다는 물건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끝내 나오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목걸이에 관한 증서의 경우는 쓸데없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현관 신발장에 아무렇게나 몰아넣은 구두 중 한 켤레의 발가락 쪽에 목걸이 두 개가 들어 있는 것을 스기가 발견했다. 시간도 수고도 그다지 많이 들지 않았다. 감이 발동했다고나 해야 할 일이었다.
오메가 시계를 손녀(큰딸의 딸아이)가 가져갔다면서 새벽 첫 전차를 타고 이십 분쯤 떨어진 곳에 사는 그녀의 아파트까지 찾아간 적도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나 손녀가 집에 없더라면서 기요코는 돌아왔다. 스기가 미리 전화를 걸어, 아무리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말했던 것이다. 단체여행으로 런던에 갔을 때 리젠트 스트리트 스위스시계 전문점에서 스기가 사다준 손목시계였다. 그건 한참 지난 뒤에야 신발장 안쪽에 굴러다니는 것을 찾아냈다. 하지만 또다시 없어져서 손녀딸과 요코하마에 사는 둘째딸이 범인으로 내몰렸다. 화가인 둘째딸은 제법 세련된 니나리찌 시계를 싸게 구입해서 대신 쓰라고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 무렵에야 오메가 시계가 침대 매트와 담요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둘째 딸은 고등학교 교사인데 그쪽의 손자 녀석도 이따금 범인으로 몰리거나 제 엄마의 앞잡이라고 욕을 먹었다.
액세서리와 화장품뿐만 아니라 블라우스, 양복 같은 의류도 차례차례 없어졌다. 그리고 제각각 범인이 날조되었다.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놓은 자리를 잊어버린다는 걸 깨닫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블라우스나 양말 같은 건 별로 없어지지 않지만 속옷이며 팬티가 연일 없어지는 바람에 아내가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깜짝 놀랐다. 스타킹은 슈퍼에서 쇼핑을 하는 길에 스기가 간간이 사다줄 수 있지만 팬티는 아무래도 선뜻 사오기가 어려웠다. 스기로서는 팬티스타킹이 고작이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는 길로 가운을 걸치고 화장실에 들어선 스기는 세면대와 양식 변기 사이의 타일 바닥에서 초콜릿 빛깔의 물컹하고 큼직한 고물 묻힌 떡 같은 걸 발견하고 슬리퍼 신은 발을 흠칫 멈췄다.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굳이 만져볼 것도 없이 배설물 덩어리였다.
스기는 팔짱을 끼고 쪼그리고 앉아 찬찬히 바라보았다.
‘이게 마누라의 그건가.’
더럽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던 건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충격이 앞섰기 때문일까. 하지만 역시 손을 대는 건 머뭇거려졌다.
그 전날이었나 전전날이었나, 이층의 이 화장실이 아니라 아래층 화장실 문을 열어놓은 채 아내가 “여보!”라고, 복도를 지나 욕실 쪽으로 가던 스기를 불러 세웠다.
“왜?”
“…… 이거, 어떻게 앉아?”
시트를 올려놓은 변기를 가리키며 쩔쩔 매는 얼굴로 아내가 물었다.
“이걸 이렇게 내리고……”라면서 스기는 시트를 변기 위에 내렸다. “그리고 팬티를 내리고 여기 앉으면 돼.”
“아, 알았다!”
“이쪽을 보고 앉아. 저쪽 보고 앉으면 안 돼.”
“네~!”
겨우 알아들었다는 기색으로 아내가 급히 팬티를 내리려고 해서 스기는 화장실을 나왔었다. 그때 일을 떠올리면서, 이번에도 변기에 어떻게 앉아야 하는지 몰라서 그랬구나, 하고 배설물을 바라보며 스기는 생각했다. 그리고 “쳇, 뭐가 ‘네~’야?”라고 혼자 피식 웃었다. 적당한 크기의 두툼한 종이쪽을 찾으러 복도를 끼고 맞은편 서재로 들어갔다. 아내가 요즘 ‘네~!’라는 순진한 대답을 하는 일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늘 느닷없는 느낌으로 그런 대답을 했다. 어떻든 아내가 잠이 깨어 나오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기는 마음이 급했다. 아내의 침실은 복도 옆으로 나란히 스기의 방과 바로 이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