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현관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기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사카나카 레이코가 말했다.
“괜찮아요. 밖에 나가셔도 먼 곳까지는 안 가실 거예요.”
조모가 인지증이어서 어머니와 함께 크게 고생한 경험이 있는 그녀는 이른바 ‘배회 증상’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꽤 잘 알고 있었다. 스기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내가 집에 있는 한, 밖에 나가더라도 먼 곳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건가?”
“네, 기껏해야 댁 근처를 배회하시는 정도예요.”
“신경내과 닥터처럼 말씀하시네.” 스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층에 남편과 여자 손님이 있으니 괜히 신경이 쓰여서 그러나.”
“그럼요, 아직 젊으신데.”
“내가?”
“아뇨, 사모님이요.” 여성 편집자는 푸훗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무도 여든을 넘으셨다고는 생각 안 할 거예요.”
“그렇지도 않아.”
“선생님이 젊으시니까 사모님도 젊으신 거예요.”
십여 분 뒤, 사카나카 레이코는 15매의 원고가 든 봉투를 가방에 챙겨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기는 복도 끝의 식당에 아내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현관문을 열고 손님보다 먼저 밖으로 나왔다. 초록색 대문까지 5미터 남짓한 징검돌에 온통 매화 꽃잎이 떨어져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밟기가 아까워요.”
스기 뒤에서 하이힐을 조심스럽게 디뎌 밟듯이 걸어오며 사카나카 레이코가 말했다.
“우리 안사람은 어디로 갔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활짝 열린 대문을 지나 스기는 길 쪽으로 나섰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은 길의 저만치, 옆집 기와 담장이 조금 튀어나온 모퉁이를 돌아선 곳에 기요코가 서 있었다. 그 길 끝이 유료 주차장이고 주차장 울타리를 따라 길은 오른쪽으로 꺾어진다.
“여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공허한 눈빛으로 아내가 말했다. “손님에게 선물 좀 하려고.”
그러는데 사카나카 레이코가 나와서 돌아가겠다는 인사를 했다.
“손님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는데?”
“아휴,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아마 저기를 오른쪽으로 꺾어서 똑바로 가면 역이에요.”
“거기서 아마는 필요 없는 말이지.”
“자, 그럼.”
스기에게 한 차례 인사를 건넨 후 도망치는 듯한 걸음으로 길이 꺾어진 쪽으로 사라져가는 손님을 배웅하며 스기는 혼자 중얼거렸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이렇게 조용하지를 않았는데.”
그때도 역시 2월 중순경이었다. 원고를 받으러 온 사람은 사카나카 레이코가 아니라 아직 서른 살이 채 못 된 젊은이였다. 삼십 분쯤 있다가 그가 돌아간 뒤, 현관에 서 있던 스기에게 식당에서 달려 나온 기요코가 말했다.
“저 사람, 누구야?”
“전에도 왔었잖아. 원고 받으러 온 편집부 사람이야.”
“저 사람이 원고만 받아간 게 아니라 내 진주 목걸이도 가져갔어.”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틀림없이 뒷문에 한 패가 지키고 있다가 바통 터치한 거야.”
“어지간히 좀 해!”
스기는 큰소리를 냈었다. 그때 원고를 받으러 온 젊은이는 신입사원이었다. 농담을 해도 통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잡지 편집자로는 별로 소질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착실하기만 한 사람이었다.
“내가 맡아둔 그 목걸이 말이지? 그건 오늘 아침에 당신한테 다시 줬어. 증거를 보여줄까?”
주머니에서 종이쪽을 꺼내 아내에게 건넸다. 종이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던 것이다.
‘오늘(2월 21일) 당신 서랍에 보관했던 목걸이 두 개는 내가 받아갔습니다. 기요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