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은혜 모르는 놈’이 10월 22일, 사망했습니다.
오무로 고원 우리 방에 날아들었을 때 이미 일곱 살쯤이었던 거라고 남편은 말하더군요. 먹이를 이렇게 잔뜩 사두었는데, 라고 몹시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3백 엔쯤 내고 좀더 나이 어린 ‘은혜 모르는 놈’을 사겠대요.
우리를 알아보는 듯한 기척이 있었는데 그건 길이 든 게 아니라 몸이 약해졌던 건가 봐요. 크게 낙심해서 갑자기 온 집안이 휑해졌습니다. 무사시마루는 어떻게 지내는지, 남편이 날마다 궁금해합니다.’
흥, 두고 보라지, 하고 생각했다.
그대로 11월이 되었다. 설마 11월까지 무사시마루가 살아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발바닥에 냉기가 한층 더 스며들었다. 하지만 무사시마루는 건강했다. 우리는 자식이 없는 쉰 살 넘은 부부다. 자식 없는 부부의 비극은 1999년 7월 21일 밤에 자살한 에토 준(江藤淳. 1932~1999. 문예평론가. 나쓰메 소세키 연구자로 유명하다-역주)의 죽음을 통해 똑똑히 실감했다. 에토 준은 아홉 달 전에 아내 에가시라 게이코 씨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 아내가 그리워 자살한 것이었다. 생각하면 7월 21일은 무사시마루가 이 <충식산방>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어느 새 우리 부부는 서로를 무사시마루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돌연, 또다시 무사시마루가 발정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신문지를 발로 할퀴어 찢고 뿔로 소쿠리를 마구 밀어내고 다시 내 왼쪽 가운데손가락에 앉아 성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액은 나오지 않았다. 저울로 몸무게를 재보니 9그램으로 줄어 있었다. 지난번 몸속에 고여 있던 정액을 모조리 쏟아버린 것이리라. 그 중량이 1그램이었다. 자그마치 전체 몸무게의 십 분의 일이다. 몸 껍질 안이 빈 동굴이 되어 내 손바닥에 얹어봐도 가벼워진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 두번째 폭거로 무사시마루는 나머지 다섯 개의 다리 중 네 개의 끝마디를 잃었다. 남은 건 오른쪽 앞다리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무사시마루에게는 자신이 다리를 잃었다는 자각이 없는지, 끝마디 없는 발로 왕성하게 소쿠리 안쪽에 기어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다리 끝 세 마디 째의 발톱이 없는지라 소쿠리 틈새를 붙잡을 수가 없다. 번번이 소쿠리 옆으로 굴러 떨어져 배를 내놓고 벌렁 누웠다. 하지만 다리 끝마디가 없으니 처음처럼 다리를 버티는 모습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가끔 소쿠리 안을 들여다보며 무사시마루를 일으켜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리가 그런 부자유한 상태가 되었으니 무사시마루는 소변을 볼 때 뒷다리를 쳐드는 것도 할 수 없어서 자신의 다리에 소변을 보게 되었다. 수박을 먹을 때는 빨간 소변이었지만 멜론을 먹은 뒤부터는 소변이 하얗게 변했다. 그 하얀색으로 배며 다리가 허옇다. 아내가 그것을 가엾게 여겨 다시 탈지면을 더운 물에 적셔 다리가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닦아주었다.
어느 날, 늦가을 찬바람 1호가 들이닥쳤다. 아내가 보자기 위에 다시 자신의 털 스웨터를 덮어주었다. 그날 문득 깨닫고 보니 오른쪽 앞다리의 끝마디도 없어져 있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이젠 완전 너덜너덜이네”였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처럼 빛나던 등딱지의 광택도 흐릿한 빛깔로 시들어갔다. 물론 자연계에서는 장수풍뎅이는 모조리 사멸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