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접어들자 우리 집 목욕탕 가스가 고장이 났다. 도쿄 가스 직원에게 부탁하여 수리에 들어갔다. 가스업자는 전동 톱으로 가스 보온기의 뚜껑을 열려고 했다. 드르르륵 엄청난 진동음이 집 전체를 울렸다. 그러자 무사시마루는 그 소리에 또 잔뜩 겁을 먹고 소쿠리 안에서 마구 버둥거렸다.
이윽고 9월 15일이 다가왔다. 마리코 씨네 장수풍뎅이가 죽은 날이다. 하지만 우리 집 무사시마루에게는 아무 일도 없이 그 액일(厄日)이 지나갔다. 다음 목표는 9월 19일이다. 왜냐하면 9월 19일은 무사시마루가 <충식산방>에 온 지 두 달째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때쯤부터 우리 부부는 아침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나무 소쿠리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 9월 19일도 무사히 지나갔다.
9월 20일, 아츠미에 사는 신도 료코 씨(1932~. 시인. 구루마타니, 준코 씨 부부와 절친한 사이여서 셋이 함께 세계 일주여행을 하기도 했다-역주)에게서 아내 앞으로 편지가 왔다.
‘오늘로 우리 남편(주. 긴키대학 중국문화사 교수인 후루야 게이지 씨)의 긴 여름방학이 끝났어요. 우리 집에서도 벌레 통에 장수풍뎅이를 키우는 중이라 남편이 ‘곤충 먹이 매트’라는 흙을 사다가 그 위에 영양 젤리라는 천연수액 꿀 같은 것도 주더라고요. 뿔이 1밀리미터 자라면 백만 엔이라나 뭐라나, 가쓰오부시를 강판에 갈아 영양 젤리에 섞어줬는데 장수풍뎅이가 그걸 싹 무시하고 먹지 않더군요. 나뭇가지도 사다가 거기에서라면 먹이를 좀 먹어줄까, 이래저래 궁리해가며 애를 쓰고 있어요. 요즘은 흙 속에서 잡니다. 육 년쯤은 산다고 하던데요?’
나는 ‘백만 엔’이라든가 ‘육 년쯤 산다’라는 글귀를 보고 신도 씨가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착각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 편지에 ‘우리 집에서 키우는 건 장수풍뎅이가 아니라 사슴벌레였어요. 먹이를 주면 손가락을 물고 덤비는지라 ‘은혜 모르는 놈’이라고 부른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얼마 뒤에 신도 씨에게서 전화가 왔기에 물어봤더니 이즈의 오무로 고원 별장 창문으로 날아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신도 씨, 당신이 은혜 모르는 놈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던데 그건 기르는 사람을 닮았기 때문에 그런 거야.”
“흥, 무슨 말씀을. 우리 사슴벌레는 칠 년은 살아요. 댁의 장수풍뎅이는 기껏 반년이지? 내일 죽을걸?”
신도 씨가 그렇게 얄미운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제기랄, 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마음에 걸려 하는 약점을 치고 들어온 것이다.
10월이 되었다. 점점 가을이 깊어갔다. 무사시마루가 여태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건 이제 단순한 벌레가 아니라 마치 우리 집안의 신이 된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요요기 공원까지 장수풍뎅이가 좋아하는 상수리나무 잎을 잔뜩 주우러 나갔다.
하지만 난처하게도 이즈음부터 야채 가게에서 수박이 사라졌다. 그래도 아내는 일부러 몇 군데나 돌아다니며 어렵사리 사왔다. 당뇨병인 사람의 이뇨식으로 수박이 요즘 세상의 필수품이란다. 그런데 잘라놓고 보니 안의 빨간 부분이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이런 걸 무사시마루에게 먹일 수는 없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수박은 한 통에 2백 엔이었다고 한다. 큰 맘 먹고 내가 1천8백 엔을 내서 멜론을 사왔다. 나는 천성적으로 쩨쩨하고 인색하고 욕심이 많아서 길에 가래를 뱉는 것도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무사시마루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돈이 들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