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20일 아침, 무사시마루가 죽었다. 무사시마루라고는 해도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스모의 요코즈나(일본 스모의 최고위-역주) 무사시마루 고요(武?丸光洋)를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 집의 애완동물인 수컷 장수풍뎅이다. 내가 요코즈나 무사시마루 고요의 팬이라서 늠름한 뿔을 휘두르며 분노하는 장수풍뎅이에게 무사시마루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내 아내 다카하시 준코(高橋順子. 시인. 1944년 생. 도쿄대학 불문과 졸업-역주)는 처음에는 “무사시마루 짱”이라고 불렀지만 고유명사를 줄여서 말하는 일본인의 악습에 따라 나중에는 “무사시 짱”이라고 하더니 이윽고 “무사 짱”이라고 했다.
무사시마루가 우리 집에 오기까지의 경위를 간단히 적는다. 우리가 고마고메 도자카초 골목 안쪽에 가정을 꾸린 것은 1993년 가을이었다. 아내는 마흔아홉 살, 나는 마흔여덟 살, 둘 다 초혼이었다. 그 직후, 나는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야마노테 선 니시니츠보리 역 앞의 도칸야마 산 절벽에서 칡 잎사귀 한 줄기를 끊어왔다. 집에 돌아와 꽃병에 꽂으려고 하는데 널찍한 잎사귀 뒤에 작은 벌레가 숨을 죽이고 붙어 있었다. 다음 날, 일본 곤충도감으로 조사해보니 호리가시허리 노린재였다. 이 벌레는 울지 않는 벌레지만 칡 잎사귀의 이슬을 빨아먹고 이따금 꽁무니에서 아름다운 구슬 같은 소변을 보는지라 우리는 퍽 감동했다.
이윽고 1994년 정월이 되어 우리는 장난삼아 나쓰메 소세키의 ‘소세키 산방’을 흉내 내어 우리 월세 방에도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충식산방(蟲息山房)’이라고 이름을 짓고 손으로 뜬 화지에 내가 묵을 갈아 붓글씨를 쓰고, 아내와 둘이 각각 ‘초키츠(長吉)’, ‘쥰(順)’이라고 붉은 낙인을 찍어 벽에 걸었다. 그런데 정월이 지나자 호리가시허리 노린재는 어딘가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우리는 크게 실망했다.
그 뒤, 내가 실직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집세를 낼 수 없어 이웃 동네인 고마고메 바야시초의 좀더 작은 월세 방으로 이사했다. 여기에서도 ‘충식산방’이라는 액자를 벽에 걸어두었지만 벌레라고는 바퀴벌레와 개미가 방바닥을 기어 다닐 뿐이었다. 가을 끝 무렵이 되면 우리는 해마다 이리야 오오토리 신사의 오토리사마에게 간다. 아내는 작은 갈퀴 하나를 사더니 “이걸로 내년에는 돈을 싹싹 긁어모으는 거야”라고 몇 번을 말했다.
그런데 세상에는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있는 법인지 1998년 여름에 나는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그러자 가난뱅이였던 우리로서는 입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엄청난 돈이 굴러들어왔다. 즉 명예와 돈이 한꺼번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되자 욕심이 뻗친 아내는 크게 기뻐하며 집을 사겠다는 말을 꺼냈다. 그리고는 옆 동네인 고마고메 센다기초의 골목 안쪽에 매물로 나온 허름한 집 한 채를 찾아왔다.
그 집은 간다 이와모토초의 부동산업자 A 주택판매(주)가 취급하는 물건으로, 같은 부동산업자 간의 친분으로 네즈 스가초의 부동산업자 T 부동산기획(주) 가게 앞에도 그 광고지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1999년 1월 4일 아침에 나도 아내를 따라 나가서 그 집의 외관을 보았을 뿐이지만 일단 마음에 들었는지라 우리는 즉시 T 부동산기획(주)에 구입하겠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곧바로 A 주택판매(주)에 연락해서 집의 내부를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전에 살던 사람의 생활필수품, 서랍장이니 양복이니 책상에 의자와 책, 그밖에 온갖 것들이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주방에는 고양이 먹이까지 어질러져 있었다. 요컨대 요즘 도쿄에서 어느 가족이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던 중에 주인과 고양이와 불단의 위패만 쏙 빠져나갔다는 그런 풍정이었다.
-----------------------
작가 소개
구루마타니 초키츠(車谷長吉)
2001년 제27회 수상. 1945년 효코 현 생. 게이오 대학 문학부 독문과 졸업. 1972년 「난만다 그림」으로 데뷔하였으나 소설 집필이 되지 않아 회사를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30세부터 9년 동안 여관의 신발 담당이나 요리인으로 각지를 떠돌며 주소가 일정치 않은 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담당 편집자의 강력한 권고로 다시 도쿄에 올라와 작가로서 재 데뷔에 성공했다. 고향 반슈 지방의 사투리를 사용한 민중 언어로 써내려가는 하층 서민의 리얼한 생활 묘사는 현대사회와 그 자신에게 강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스스로 <반시대적 독충(毒?)>으로서 ‘사소설 작가’임을 표방하며 소설 속에서 실제 지명과 인명을 적나라하게 사용하는 이색적인 작가이다. 필명 초키츠(長吉)는 당대의 시인 이하(李賀)의 이름에서 따온 것. 1992년 「소금 항아리의 숟가락」으로 제6회 미시마 유키오 상, 1997년 「표류물」은 아쿠타가와 상 후보작에 올랐고, 1998년 「아카메시주야 폭포 정사 미수(情死未遂)」로 제119회 나오키 상 수상. 2001년 「무사시마루」로 제27회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수상.
--------
역자 소개
양윤옥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히라노 게이치로 『일식』 번역으로 2005년 일본 고단샤의 노마문예 번역상을 수상했다. 그간 번역한 책으로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 『장송』 『센티멘털』,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 마루야마 겐지의 『무지개여, 모독의 무지개여』 『납장미』,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칼에 지다』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장미도둑』,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스무 살 도쿄』 『올림픽의 몸값』,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성의 인연』 『붉은 손가락』 『악의』 『졸업』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이치카와 다쿠지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연애사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1,2), 그 외 『도쿄타워-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약지의 표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