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잖습니까. 그 말이 방아쇠가 되어 사치코는 문득 그런 대화들을 선명하게 떠올렸다. 작은 한마디 말이며 정경이 거품처럼 기억의 밑바닥에서 떠오르자 덩달아 또 다른 거품이 떠오르고 이윽고 의식의 수면에 거품 꽃을 피우는 것 같았다.
가게 전화가 울렸다.
“아, 아주머니, 가와무라예요. 조금 전에는 내가 말이 좀 지나쳤던 거 같아요. 미안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다른 사람에게 좀 물어봤더니 실종신고를 하는 것도 괜찮지만 두세 가지 미리 확인해두는 게 좋겠다는군요. 여보세요?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그 친구에게 혹시 여자가 있었는가, 그리고 사채 빚은 없었는가, 그 두 가지예요. 저기, 지금 몹시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기운내세요. 자, 그럼 이만.”
거의 대답할 여지도 없을 만큼 일방적으로 가와무라는 말을 마쳤다.
여자, 사채 빚…….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떠들썩하게 하는 그런 말이 번쩍번쩍 빛을 내며 사치코의 뇌리를 뛰어다니는 한편으로 명치 언저리에 맹렬한 위통의 징조가 느껴졌다.
돌아가는 길에 시어머니 집에 들렀다. 중간에 약국에서 위장약을 사서 그 자리에서 먹고는 진땀을 흘리며 지하철을 갈아타고 갔다. 목을 빼고 기다리던 시어머니는 사치코에게 잠시 쉴 틈도 주지 않고 종이봉투 두 개를 들이밀더니 자신은 보퉁이와 가방을 들고 꼼꼼하게 문단속을 하러 한 바퀴 돌았다.
맨션에 도착한 사치코는 짐을 내려놓자마자 주저앉아 버렸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자기가 쓰겠다고 정한 방에 냉큼 짐을 가져다놓더니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어라라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점심때부터 아무것도 먹질 못했어. 이 노인네가 차 한잔도 못 얻어먹고 그냥 자야겠니?”
멍한 얼굴로 사치코가 올려다보니, 말과는 달리 시어머니의 눈은 웃고 있었다.
“죄송해요. 지금 차려올게요. 사다놓은 게 없어서 남은 걸로 그냥 먹어야겠네요.”
주전자를 가스 불에 올려 차 준비를 해놓고 냉장고 안을 보았다. 반찬이 담긴 밀폐용기를 꺼내고 유부 두 장과 무 한 조각을 찾아냈다. 차를 끓이고 남은 뜨거운 물에 유부를 데쳐 기름을 빼고, 된장국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볶음을 하기로 했다. 무는 강판에 갈자.
“여자가 있었나…….”
바로 옆에서 시어머니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화들짝 놀란 사치코는 채칼에 손가락 끝을 쓸려버렸다.
“그렇게 놀랐니? 근데 어떤 남자라도 방심할 수 없는 법이야. 마가 끼는 일도 있잖니. 그런 융통성 없는 남자가 도리어 더 위험해. 여자의 감으로 뭔가 느껴지는 거 없어?”
손에 휴지를 말다가 사치코는 무거운 입을 열어 낮에 가와무라에게서 걸려온 전화 얘기를 들려주었다. 물기 뺀 유부를 오븐토스터에 펴놓는 동안 좁은 주방에서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문 채 서 있었다. 이윽고 사치코가 억양 없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는 가와무라 씨가 말한 두 가지 중 어느 쪽도 해당이 안 되는 거 같은데……. 그렇다고 딱히 부부 사이가 좋았던 것도 아니라서 자신은 없지만요.”
유부가 열기에 톡톡 튀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토스터 틈새로 새어나왔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말을 마쳤을 때, 타이머가 찡 하는 소리를 냈다.
“아유, 냄새가 아주 맛있게 나는구나. 무 즙 얹고 간장 좀 뿌리자.”
그때까지의 분위기를 일소하는 어딘가 신이 난 듯한 시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데운 밥과 반찬에 유부를 차려낸 식탁에 둘이 마주 앉았다.
“맛있다.”
김이 나는 찻잔을 손에 들고 시어머니가 방글방글 웃었다.
“네, 맛있네요.”
사치코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끝>
* 다음 주부터 가와바타 야스나리 상 제27회 수상작인 「무사시마루」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