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해봤는데, 이렇게 하는 게 가장 좋을 거 같다. 그래서 우선 급한 물건만 챙기고 있던 참이야. 금방 다 준비할 거니까 잠깐만 기다려.”
천만 뜻밖에도 시어머니는 그날 밤 당장 사치코의 맨션에 가겠다는 것이었다. 왜? 무엇 때문에? 사치코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얘, 자식에게 변고가 있다는 말을 듣고 뛰어가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니?”
“그야 그렇지만, 어머니, 잠깐만 진정하세요. 우리 집에 오신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혹시 애 아빠가 어머니 보려고 이쪽으로 찾아올지도 모르잖아요.”
시어머니의 마음을 돌리게 하려고 사치코가 좀더 달래려고 했을 때, 단호한 말이 날아왔다.
“아무 말 마라. 나는 이미 가기로 마음을 정했어. 그게 아니면 넌 내가 가는 게 싫다는 거니?”
얼굴을 마주하고 그렇게 물어보니 더 이상 반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는 건가, 하고 사치코는 가슴속에서 수없이 자문하고 있었다.
시어머니의 짐을 들고 택시와 전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집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지쳐서 뭘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제발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빌며 잠이 든 사치코는 눈이 뜨인 순간, 거북 등처럼 가늘게 죽죽 쪼개지는 듯한 두통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게다가 옆방에서는 시어머니의 잠든 숨소리가 들려와서 간밤의 일이 피할 도리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금 얼굴을 찌푸렸다. 창으로 비스듬히 아침 햇살이 내달렸다. 날씨가 좋을 모양이다.
“글쎄, 좀더 기다려보는 게 어떻겠니? 그런 다음에 신고해도 늦지 않잖아. 분별력 있는 오십대 남자인데, 회사나 가정을 그리 쉽게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무슨 사고나 사건에 휘말렸을 가능성도 있는데 그렇다면 빨리 신고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얘가 별 소리를 다하는구나. 불길한 소리는 하지도 마.”
실종신고를 하는 것에 대해 사치코는 시어머니와 상의해서 빨리 결정해버리고 싶었다. 크게 당황한 기색으로 당장 아들네 집으로 달려오시더니 시어머니는 그 얘기만 나오면 두 마디 째에는 벌써 “걔가 어린애도 아니고”라는 말만 거듭했다. 그러다가도 “너무 걱정이 되어서 밥이 목을 넘어가지 않는다”라고 사치코보다 풍만한 가슴을 두 손으로 꼭 누르며 하소연했다.
“그럼 좀더 기다려볼까요.”
그릇을 싱크대로 옮기고 물을 받아 진통제 두 알을 삼킨 사치코는 반걸음 양보해서 그렇게 대답했다.
“저는 아홉시 전에 일하러 나가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하실래요?”
“얘, 어떻게 하고 말 것도 없어. 여기서 마사오하고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거야.”
“그럼 그쪽 집은…….”
“아참, 그렇지. 우선 옆집에 이사한다고 인사라도 해둬야겠네. 그래, 너랑 함께 나가서 일단 집에 가봐야겠다. 필요한 것도 있고, 이번에는 짐을 제대로 챙겨올 테니까 저녁때 한 번 더 나를 데리러 와.”
정말로 일이 커져버렸다, 라고 사치코는 생각했다. 언젠가 시어머니가 좀더 나이가 든 뒤에는 함께 살아야 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엉겁결에 함께 살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당신 아들이 행방불명이 된 집에서 둘이 살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