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줄줄이 얘기하는 바람에 사치코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고 싶은 건 이쪽이었다.
“저어, 어제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걱정이 돼서 전화한 건데…. 그럼 어제 점심시간에 나간 뒤로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그런 건가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럼 아주머니도 모르시는군요. 무슨 짐작 가는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없어요. 어제 아침에 나갈 때도 평소와 똑같았는데.”
“어딘가 몸이 안 좋았다든가?”
“글쎄요, 딱히 어디가 안 좋았던 거 같진 않은데…. 정기검진에서 중성지방이 좀 많다고 한 정도였어요. 혈압도 낮은 편이고 밥도 다른 때처럼 잘 먹었어요.”
“거, 이상하네. 회사에서도 눈에 띌 만큼 달라진 기색은 없었는데? 아, 가끔 혼자 틀어박혀서 대답도 하지 않는 일은 좀 있었죠. 요즘 워낙 불경기니까요. 우리 회사도 권고사직이 있고 해서….”
“정리해고 대상에 올랐었어요?”
“글쎄, 나한테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런 거라고 해도 갑자기 사라지는 건 이상하죠. 그보다 어디서 사고나 사건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있는 거 아닌가요? 아, 놀라시게 해서 죄송하지만, 경찰 같은 데서 연락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에엣, 하고 내심 놀랐지만 가와무라의 말도 맞는 말이었다. 회사 쪽에는 잘못하면 무단결근이 되기 때문에 가와무라가 제안한 대로 아픈 것으로 해달라고 부탁하고, 남편의 가방은 같은 지하철 노선에 사는 그를 중간에서 만나 받아오기로 했다.
책상도 일하던 그대로 펼쳐놓고 가방도 두고 갔다…. 그렇다면 남편은 적어도 점심 식사를 먹으러 나갈 때까지는 회사에 다시 들어올 생각이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본인도 예기치 못한 어떤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 계획이 변경되었다. 어떤 일이었을까, 그게. 사치코는 머리를 움켜쥐고 자칫하면 흐늘흐늘 정처도 없이 흩어지려는 생각을 한 점에 집중하려고 했다.
구두 소리가 마룻바닥을 울렸다. 커플 손님이 들어와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의류며 작은 액세서리를 물색하고 있었다. 여자 쪽이 약간 옛날 티가 나는 라이팅데스크를 요모조모 뜯어보기 시작하자 남자도 곁에 다가가 가격표를 가리키며 작은 소리로 속닥거렸다. 부부구나, 하고 짐작한 사치코는 왠지 그들에게 관심이 갔다. 여자는 데스크를 놔두고 이번에는 낡은 피아노 의자에 눈길을 던졌다. 앉는 자리에 둘러씌운 비로드는 닳았지만 다리의 목재는 묵직하게 탄탄하다. 다르륵 소리를 내며 원형 좌석이 돌아갔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며 소리 없이 웃더니 “이거, 얼마예요?”라고 사치코에게 물었다. 붙여둔 가격표가 떨어져나간 걸까. 사치코는 노트를 뒤적여 가격을 알려주었다. 예상했던 가격과 크게 차이가 났는지 두 사람은 포기한 채 아무것도 사지 않고 가게를 나갔다. 남자도 여자도 극히 평범한 얼굴형이라 그리 눈에 띄는 구석은 없었지만 사치코의 눈에는 두 사람이 무심히 주고받는 몸짓 하나하나에서 부부 사이가 유난히 다정한 것으로 비쳤다.
가게 문 닫기 오 분 전쯤에 주인이 나와 계산과 현금을 확인하고 갔다. 친구인 아내 쪽이 오는 일도 있고 그녀의 남편이 오기도 한다. 물건 매입이며 팔린 상품의 경향, 요즘 경기 동향 같은 별스러울 것 없는 잡담을 나누고 문단속을 한 뒤에 가게 주인은 자동차를 타고 다음 가게로 향하고 사치코는 걸어서 역으로 향했다.
개찰구에도 플랫폼에도 남녀 대학생이 대부분인 속에서 사치코는 하나하나 골라내듯이 중년이나 초로의 남자들을 눈으로 찾았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 시간, 남자들의 지쳐버린 표정에 남편의 얼굴이 겹쳐지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저런 식으로 하품을 하고 담배를 입에 물고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쑤시고 석간신문을 펼치고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고 미니스커트의 여자를 핥듯이 쳐다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