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어 되묻는지라 사치코는 시어머니에 대한 용건은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네, 덕분에.”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건강 좀 잘 보살펴줘. 나이 쉰을 넘으면 이래저래 탈이 나는 법이야. 근데 무슨 일이니, 오늘 무슨 볼일이 있어?”
“아뇨, 내내 연락도 못 드려서 어떻게 지내시나 하고…….”
그러고는 적당히 말을 돌리다가 전화를 끊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였지만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겨드랑이에 땀이 나 있었다.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사치코는 심호흡을 거듭했다. 시어머니는 아무래도 거북스러웠다. 게다가 남편의 행방은 여전히 알지 못한 채였지만 어제나 그저께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거리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겨우 하루잖아’라는 마음도 들었다. 햇살은 바로 위에서 부드럽게 쏟아져 살갗의 땀구멍을 하나하나 열어나가는 것 같았다.
도심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역 앞 상점가의 한 귀퉁이였다. 역에서 다시 버스로 십여 분쯤 들어간 곳에 사립대학의 교양학부가 이전해온 뒤로 몰라볼 만큼 북적거리게 되었다. 아침이건 저녁이건 젊은 사람들의 얼굴이 온종일 길거리에 보이고 그 젊은이들을 위한 가게가 몇 군데나 새로 생겼다. 오래된 상점가에 활기가 돌고 사치코가 일하는 리사이클 숍에도 진열하는 상품이 달라졌다. 태평하게 거리를 휘적휘적 돌아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지방대학에 가 있는 사토루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데는 그만 할 말이 없어져버리기는 했지만.
가게 앞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사치코를 향해 한 집 건너 옆쪽의 양식당 환기창에서 풍겨오는 소스 냄새가 식욕을 돋우었다. 양식당이어도 좋고 가락국수집이어도 좋다. 뭔가 따스한 것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도시락이 있었다.
다시 들어온 세 평 남짓한 가게 안은 조명이 켜져 있는데도 환한 바깥에 익은 눈에는 어둠침침하게 보였다. 헌 의류며 가구, 그 밖의 자잘한 물건들이 발하는 독특한 냄새가 가득 차서 창을 열고 환기구를 돌려도 때와 먼지와 곰팡이가 발효한 것 같은 공기는 물건과 물건 사이에 고여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주전자에 물을 끓여 인스턴트 된장국을 만들고 아침에 꾹꾹 쥐어온 주먹밥을 한 입 베어 먹었더니 겨우 정신이 났다. 날짜별로 티백 홍차에 단빵이나 야채빵으로 메뉴를 바꾸기는 하지만 외식은 하지 않았다. 우선 달랑 혼자서 가게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가장 난처한 건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어서 볼일을 볼 때는 가게 문을 잠그고 역이나 슈퍼 화장실까지 달려갔다.
입안 가득히 매실장아찌의 시큼한 맛을 느끼며 사치코는 조금 전 시어머니와 나눈 대화를 밥알과 함께 곱씹어보았다.
남편은 원래부터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세상 남자들이 흔히 말하는 엄마의 손맛이니 하는 얘기도 없었고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얘기도 거의 없었다. 그렇건만 시어머니 쪽에서는 아들에 대해 항상 자신만만한 것이다. 그 격차가 우스웠다. 엄마와 아들이란 원래 그런 걸까. 나와 사토루도……. 하지만 그다음을 생각하는 게 귀찮아서 사치코는 한숨을 내쉬며 된장국을 훌훌 마셨다.
젊은 남자 손님이 들어와 창가에 걸린 멜빵바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남자는 새 멜빵바지를 입고 있으면서도 별로 망설이는 것도 없이 헌 옷을 사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종이봉투를 들고 남자는 환한 길거리에 녹아들듯이 사라지고 그 뒤로 어딘가에서 행진곡 같은 음악이 미풍과 함께 흘러들었다.
한참을 머뭇거린 끝에 저녁나절에야 사치코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남편의 동료 중에서 비교적 사이가 좋아 집에도 몇 번 놀러온 적이 있는 가와무라 씨를 바꿔달라고 했다.
“아, 아주머니세요? 우리도 지금 연락해보려던 참이에요. 실은(이라고 주위를 의식하는 목소리로) 나가이 그 친구가 어제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나간 그 길로 회사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책상도 일하던 그대로 펼쳐놓고 가방도 두고 갔는데 말예요. 오늘도 결국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다들 어리둥절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 친구, 무슨 일 있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