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에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것이 오고야 말았다. 김 작가는 길거리를 지나가던 요정이 돈 키호테의 둘도 없는 여인인 둘시네아의 마법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하인 산초가 엉덩이에 매질을 당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이었다. 일종의 복화술의 장면, 나는 이 장면을 좋아했다. 우리의 돈 키호테 하인 산초가 매를 맞지 않겠다고 먼저 고집을 부렸다.
“제 몸에 아무도 손대지 못해요. 제가 뭐 엘 또보소의 둘시네아를 낳기라도 했답디까? 그녀의 눈이 죄진 것을 제 엉덩이가 갚게요? 우리 주인 나리라면 그럴 수 있지요. 나리는 그녀의 일부여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녀를 ‘나의 영혼’ ‘나의 생명’이라고 부르고, 그의 의지이며 안식처이니 그녀를 위해 매를 맞을 수 있고 또 맞아야지요. 그녀가 마법에서 풀려나도록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 쏟아야지요. 하지만 제가 매를 맞다니요? 절대 사절입니다!”
그러자 시골 농사꾼의 여자로 살고 있는 둘시네아의 입을 빌어 요정이 둘시네아 대신 신세 한탄을 시작했다. “오, 불행에 빠진 하인이여! 물통 같은 영혼. 코르크나무 같은 가슴, 돌멩이처럼 차갑고 돌처럼 무정한 심장이여! 파렴치한 도둑놈, 누가 자네에게 시키던가? 누가 자네에게 높은 탑에서 땅으로 뛰어내리라고 하던가, 이 인간의 탈을 쓴 원수여. 누가 자네에게 두꺼비 열두 마리, 동아뱀 두 마리, 뱀 세 마리에게 먹혀 죽으라고 청하던가? 아니면, 무슨 잔인한 날카로운 신월도 칼로 자네 아내와 자식들을 죽이라고 자네를 설득하려 하던가? 그리했다면 그때 자네가 대답을 피하며 아첨을 떠는 모습을 보여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닐지 몰라. 그런데 매질 삼천삼백 대 정도를 문제 삼다니.”
그래서 산초는 돈 키호테와 한솥밥을 먹는 도리로 “고행을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하고 기쁨에 찬 돈 키호테는 “산초의 목을 끌어안고 볼에다 수천 번 키스를 퍼붓는다.” 물론 그 후로도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둘시네아의 마법이 풀렸다는 소문을 들은 돈 키호테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엄마로부터 열입곱번째 편지를 받은 파울라도 끝이 난다. “너는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니? 너를 이 세상으로 다시 데려오기 위해, 파울라, 너를 위해 글을 쓴다”는 엄마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파울라도 끝이 난다. 나는 돈 키호테의 결말 부분을 김 작가에게 읽어주지 못했다. 읽을 수가 없었다. 다만 돈 키호테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멋진 남자였다.
여기 그 용맹성이 아주
극단에 치닫던 강력한
시골 양반이 누웠노라
죽음도 그의 삶을 죽임으로써
승리하지 못한 듯 보이도다.
온 세상 사람들을 얕보았던
그는 온 세상의 허수아비이며
무서운 도깨비였다, 좋은 기회를
맞았던 그의 운명의 평판,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다시 말하지만 돈 키호테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무모하고 가장 멋지고 상상력이 뛰어난 남자였다. 얼마나 멋진 남자였으면 그런 묘비명이 붙었을까. 돈 키호테는 죽으면서 말했다. “여러분, 서서히 이야기합시다. 과거는 과거이고 지난날의 보금자리에 오늘의 새들은 없지요. 나는 미치광이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정신입니다.” 돈 키호테는 죽었다. 돈 키호테의 사인(死人)은 “불쾌감과 권태, 우울증”이었고 김 작가도 죽어가고 있었다. 모두 다 패배였다.
미쳤던 사람이 멀쩡한 정신으로 돌아오면 죽는다는 말이 정말일까. 돈 키호테처럼 김 작가도 어느 순간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침대를 높이 세운 채 베개를 두 개 받치고 기대고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뭔가 불편해하는 것 같아 어깨 부분에 담요를 말아 끼워 넣어주었다. “훨씬 편하네.” 김 작가가 말했다. 그 목소리의 느낌이 노란색 카스텔라의 느낌처럼 폭신폭신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붙이고 왠지 무척 긴장해 있었다. “미국에서도 뭘 좀 썼니?” 나는 웃었다. “써봐야 그렇지 뭐. 다 쓰레기지.” 김 작가는 머리를 창 쪽으로 천천히 돌렸다. “넌 똑똑한 애였어. 정말 똑똑했어.” 나는 또 웃었다. “글은 말이야, 처음 다섯 페이지를 잘 써야 해. 그래야 계속 쓸 수 있어. 그래야 계속 읽을 수도 있지. 다들 시간이 없잖아.”
뉴욕의 요양시설에서 펼쳐진 김 작가의 글쓰기 강의는 아주 심플했다. 그녀는 말을 마친 뒤 신문을 읽고 싶다고 했고 나는 신문을 갖다 주었다. 그녀는 혀를 차기도 하면서 아주 천천히 신문을 읽었다. 어느 순간 신문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그녀는 신문을 접었고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고 싶네”라고 말했다. 김 작가가 죽기 일주일 전, 우리가 서로 뭔가 얘기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간에 관한 묘사를 하자면 이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