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사가 말한 것처럼 심한 몸 떨림이 오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무서운 발작이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아까보다는 조금 가라앉은 듯했다. 다가가 앉아 어깨를 꽉 잡고 무슨 얘기든 해야 했다. 김 작가가 순간 내 목을 끌어안았다. 너무 꽉 끌어안아 나도 모르게 힘을 주어 밀쳐내려고 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내가 그녀를 자극했고 김 작가는 토할 것처럼 또 구역질을 해댔다. “빨리 집에 가고 싶어!” 김 작가가 겨우 입을 열어 발음했다. “가게 될 거야. 며칠 후면 가게 될 거야.” “내가 다 잘할게. 제발 집에 가자.” 김 작가가 아기처럼 내 목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복도를 지나가던 환자들이 문 앞에 서서 구경했다. “제발 이러지 마. 좀 진정하라구.” 그래서는 안 되는데 결국 내가 환자에게 화를 내고야 말았다.
그러다 침을 흘리고 헤헤 웃기도 하고 또다시 몸에 힘을 주어 매달렸다. 몸이 막대기처럼 단단하게 뭉쳤다. 곧 굳어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곧 갈 거야. 뉴욕으로 갈 거야. 뉴욕에서 살고 싶다고 했잖아.” 뉴욕이라는 말이 마술을 일으킨 걸까. 김 작가가 순간 몸에 힘을 풀고 뒤로 축 늘어진다. 나도 같이 축 늘어졌다. 다행히, 다행히 발작만은 피한 것 같다.
가평의 정신병원을 뉴욕에 있는 고급 요양시설로 바꾸기로 했다. 김 작가에게는 환상이 필요하다고 나는 믿었다. 이곳이 병원이 아니라는 환상, 당신은 병원에 있는 게 아니라 뉴욕에 있다는 환상을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환상 안에서 평화로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해야만 했다. 나는 오랜만에 김 작가를 방문하기 위해 뉴욕에 온 사람이 되어야 했다.
김 작가는 아침마다 막 구운 크루아상 두 개를 사기 위해 맨해튼 중심가의 횡단보도를 아주 천천히, 느린 보폭으로 건넌다. 푸른색이 아닌 분홍색 옷 위에 길고 검은 코트를 걸치고, 세상에서 제일 여유로운 표정으로 걸어간다. 뉴요커들이 김 작가에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봉주르 마담, 헬로우 레이디!
종이에 알파벳 하나씩을 써 벽에 붙였다. 브이아이피라는 단어와 김 작가의 이름도 붙였다. 푸르스름한 환자복을 입고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김 작가의 등 뒤에 베개를 두 개 넣어주었다. 잠시 후 김 작가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조금 있으면 네일 케어를 담당하는 사람이 와서 김 작가님 손을 예쁘게 다듬어준대요. 정말 여기 서비스 끝내주죠?” 김 작가가 힘없이 대답했다. “네, 당신들 마음대로 하세요.”
다행히 내 가방 속에 미니 손질 도구가 들어 있었다. 의자를 당겨 침대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힘을 주어 손을 잡으려고 해도 김 작가의 손끝에 힘이 주어지질 않았다. 손톱 층이 아주 얇고 큐티클 층이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무슨 색을 발라 드릴까요 작가님? 아무래도 작가님처럼 우아한 분에게는 연두색과 흰색의 배합이 좋을 것 같은데요.” 김 작가는 눈을 휘둥그레 돌리다 내 얼굴을 쳐다봤다.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대로 하라니요, 제가 알기로 성질 나쁘기로 유명한 분인데 이렇게 고분고분하시다니. 아휴 놀라워라.”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하고 있는 내가 너무 대견했다. 손톱 끝을 갈아내는 소리가 들렸다. 삭삭삭삭, 내 허벅지 위로 김 작가의 흰 손톱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아직 경련 억제 효과가 살아 있어 발작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또 언제 몸을 부들부들 떨지 알 수 없었다.
그 후 며칠 동안 김 작가는 매우 조용히 지냈다. 우울증 증세가 심해지고 몸이 축 늘어져 소란을 피울 힘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김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나는 짐작할 수 없었다. 건강함이 사라진 대신 얼마나 많은 미지의 것들이 김 작가의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지, 어쩌면 그녀는 뿌리도 약한 들꽃 몇 개를 잡고 언덕 위에서 수차례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중인지도 몰랐다.
그 주 토요일 낮, 몇 명의 음악가들이 병원을 찾아와 연주회를 했다. 세미 정장을 입은 음악가들이 반짝거리는 악기를 꺼내 베토벤, 모차르트 등 귀에 익숙한 음악들을 연주했다. 환자들을 문병 온 가족들도 환자 옆에 같이 앉아 음악을 즐겼다. 침을 흘리는 입술을 닦아주기도 하고 손을 잡고 미소를 짓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가족을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다. 갈등을 주고 아픔을 주고 혼돈을 불러일으켰던 가족들은 이미 환자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버린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