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김 작가가 어디가 아픈지, 어떤 상태인지 잘 알 수 없었다. 너무 많이 쓰고 너무 열정적으로 움직여서 도무지 아픈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내가 김 작가의 상태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된 건 사실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환자들이 이층 로비에 앉아 텔레비전도 보고 왔다 갔다 하기도 하는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김 작가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막 병실로 돌아온 뒤였다. 그러다 갑자기 이마를 두 손으로 잡고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어지러워서 침대 위에서 내려오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손을 잡아 아래로 내려오게 했고 김 작가는 병실 바닥에 퍼질러 앉자마자 자꾸 웃었다. 자기 몸을 긁적이기도 하고 계속 침을 꿀꺽꿀꺽 소리 나게 삼키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몸을 계속해서 바들바들 떨었다.
비상벨 소리를 듣고 온 건지, 지나다 그냥 보고 들어온 건지는 몰라도 간호사가 달려왔다. 그 병원에서는 아무도 그 정도의 일에 호들갑을 떨지는 않는 분위기였다. 다들 태연히 복도를 지나갔다. 볼살이 발갛게 오른 간호사가 힘 있어 보이는 팔뚝으로 김 작가를 달랑 안아 침대 위에 올려놓고는 밴드로 몸을 조여 침대에 밀착시켰다. “할머니 넘어지면 안 되니까 침대 위에 있어요. 내려오면 큰일 나.” 김 작가는 침대 위에서 눈을 굴리며 계속해서 몸을 바들바들 떨더니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 누구 보고 할머니래 당신?” 간호사는 김 작가가 그러거나 말거나 더 큰 소리를 말했다. “못 내려오게 잡고 계세요. 내려오면 어지러워서 금방 넘어져요. 고관절이라도 부서지면 큰일 나니까. 아셨죠?” 그러자 김 작가가 고개를 돌리며 한마디 했다.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간호사가 나에게 자리를 비우지 말라는 주의를 주고 나갔다. 할머니라니, 그러고 보니 김 작가는 정말 할머니처럼 보였다.
경련이 끝나면 몹시 우울해했고 토할 것처럼 웩웩거렸다. 추워서 몸을 웅크린 채 꼼짝도 안 하려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팔을 풀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니? 말해봐!” “아프다잖아. 치료가 필요하대.” “어떤 미친 인간이 그러니. 난 아프지 않아.” 김 작가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으려고 했다. “난 그냥 길을 가다가 가방을 떨어뜨리고 찻길을 그냥 건너고 그랬을 뿐야. 그랬다고 사람을 병원에 가두니?” “가두긴 누가 가둬, 아프잖아. 눈에서 불이 보인다며?” “그래 불은 보여. 불은 보인다구.”
항경련제를 먹은 김 작가는 이틀간 거의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주변이 너무 고요했다. 건너편 산 위의 나무들은 조금씩 붉게 물들어갔고 병원에 있는 환자들은 나날이 흰색으로 작아지는 것만 같았다. 건물 외벽은 핑크지만 안은 온통 흑백인 병원이 싫었다. 사람들은 왜 여기 온 걸까. 너무 자기 자신에게 집중했던 게 아닐까. 눈이 반쯤 돌아가고 입에서 거품을 뿜어내게 하는 게 뭘까. 환자들의 뇌 속을 시원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병원에 단둘뿐인 의사를 만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웠다. 면담 신청을 해도 거절되기 일쑤였고 좀더 급한 환자들이 있다는 이유로 매번 연기됐다. 그들의 의학 지식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서른을 좀 넘은 듯한 젊은 의사 둘이서 이층부터 삼층까지 빈 병실 하나 없이 꽉 찬 병원의 모든 노인 환자의 병을 캐어했다. 둘 중에 김 작가 주치의라고 소개받은 의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병실이나 의사의 진료실이나 건조하긴 매한가지였다.
“커피 좀 드릴까요?” 남자 의사가 진찰 데스크 앞에 놓인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그래 주시면 좋겠어요. 그런데 설탕은 넣지 않아요.” “미안합니다. 이거밖에 없는데.” 의사가 커피믹스 한 봉지를 들어 흔들고는 종이컵에 넣고 물을 넣은 뒤 스틱으로 저었다. “혹시 가족력이 있으신가요?” 있는지 없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저희가 협력 병원에 의뢰해서 뇌파, 뇌 촬영, 피 검사까지 모든 검사를 다 했는데 환자분 측두엽에 종양이 있습니다.” “정말요? 지금 농담하시는 거 아니죠? 뇌종양이라는 건가요?” 의사는 연필을 잡고 손으로 뱅글뱅글 돌리며 말했다. “네 유감스럽게도.”
믿을 수 없는 진단이었다. “그런데 무슨 뇌종양 환자가 매일 글을 쓰죠? 원래 직업이 작가이긴 하지만요.” “제가 잘 모르긴 하지만 측두엽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 중에 유명한 작가들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백치』를 쓴 그 누구죠? 아, 도스토예프스키도 그랬다더군요. 물론 정확한 데이터가 있는 건 아닙니다. 어쩌면 어머님도 그런 분인가 봅니다. 이거 영광입니다. 작가 분을 저희 병원에 모시게 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