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으로 방바닥에 앉아 클럽을 진행할 예정이어서 거실 한가운데를 비워놓았다. 방석 다섯 개를 놓고 한가운데는 양초 세 개를 놓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 환한 불빛 아래 있다 보면 어색해져서 서로 인상만 쓰게 될 것 같아서였다. 나는 다시 화장을 고쳤다. 평생 그렇게 긴장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가만히 있어도 겨드랑이에서 땀이 나고 뱃살이 떨렸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고 우리는 나란히 현관 앞으로 걸어 나가 문을 열었다.
“여기가 해캔섹 라이팅 클럽 맞나요?” 한 여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막 코너를 돌아 달려가는 방금 출발한 듯한 장애인 보호 기관의 자동차 꽁무니가 조금 보였다. 손에 작은 화분을 든 채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여자는 얼굴의 반이 커다란 눈 두 개로 꽉 차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 집은 장애인 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요. 어쩌죠?”
나는 첫번째 회원을 돌려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는 커다란 눈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난 최대 다섯 시간까지 화장실에 가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데, 아마 여섯 시간 정도도 가능할 것 같아요.” 우리는 일단 휠체어를 집 안으로 끌어들이느라 소란을 피웠다. 의욕을 갖고 들어오겠다는 사람을 내보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장미자라고 해요.” N이 현관문을 닫자마자 여자가 악수를 청했다. 나이도, 취향도 짐작하기 어려운 스타일이었다. 우리가 차를 준비하는 사이 여자는 자유자재로 휠체어를 밀며 물고기처럼 좁은 집 안을 돌아다녔다. “악어가 된 기분이 드네요. 집이 온통 습기 천지네. 기분이 으스스하고 어쨌든 특이해요.” N이 머그컵을 들고 와 여자의 손에 들려주었다.
“어디서 여기 소식을 들으셨어요?” N이 물었다. “아, 내가 얼마 전에 스시 바에 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거기 테이블에 간장 그릇을 받쳐놓은 종이가 올려져 있더라구요. 무심코 읽었죠. 그게 라이팅 클럽 전단지였어요. 그런데 사실은 사고가 나기 전에 벌써 오래전이죠, 911이 일어나기도 훨씬 전이니까, 그때는 내가 번역을 좀 했거든요. 그 종이에 적힌 글들을 읽고 있는 순간에 글쎄, 어떤 일이 일어났는 줄 아세요? 내 등이 뻣뻣해지면서 힘이 들어가는 거예요. 지난 몇 년 동안 아무런 감각이 없던 등에 힘이 생긴 거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스시 바 사장이 깜짝 놀라 홀로 뛰어나왔죠. 바닥에 뺨을 대고 앞으로 넘어졌어요. 그게 다예요.”
“어떤 걸 번역하셨는데요?” 내가 물었다. “뭐 별 건 아니었구.『세무상담기법』,『부가가치세알기』뭐 그런 책들. 주로 일본책을 한국말로 옮겼죠. 사람들 사는 데 별로 도움은 안 되는 책들이죠. 없어도 그만인 것들.” N이 커다란 초코칩이 수북하게 담긴 접시를 들고 와 양초 옆에 놓았다. “나 그거 하나만 집어줄래요?” 여자가 N에게 말했다. 여자가 입을 꼭 다문 채 초코칩을 먹으며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사이 두번째 회원이 벨을 눌렀다. 우리는 말은 안 했지만 둘 다 ‘아싸’ 하는 기분으로 현관으로 나갔다. 장애인만 아니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시골 할머니들이 논밭에서 일할 때 입는 몸뻬 스타일의 작업복을 입은 우람한 체구의 남자가 현관에 서 있었다. 먼지 탓인지 전체적으로 회색 가루를 뒤집어쓴 것 같은 이미지에 춥지도 않은지 반팔 셔츠 위로 드러난 팔뚝의 근육이 대단했다. 나는 살짝 부담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남자의 손에는 헬멧과 휴대폰이 들려 있었는데 남자가 헬멧 안에서 라이팅 클럽 전단지를 꺼내 들여다봤다.
“해캔섹 라이팅 클럽 맞나요?” 남자가 우리 둘에게 물었다. “네, 무슨 일이신지요?” “저는 레오폴드라고 합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죠.” 우리는 잠깐 뜸을 들인 뒤 두 팔을 벌려 환대의 제스처를 보이며 어서 들어오라고 했다. 신발 끈을 푸는 데 거의 이 분 정도가 걸렸다. 남자의 발은 엄청나게 컸고 뿜어내는 발 냄새가 대단했다. “안녕하세요 레오폴드 씨.” 장미자 씨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