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L에게 보다 많은 양의 전단지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L은 학교에서 뉴저지로 건너올 때마다 컬러 프린트로 뽑은 광고지를 한 봉투씩 가지고 왔다. “너 부업까지 하려고 하니? 손톱 다듬기도 힘든데 무슨 라이팅 클럽이야. 진짜 생긴 것도 이상한 애가 하는 짓도 진짜 이상해. 글을 아무나 쓰냐구! 진짜!”
조종순 사장님은 나를 몹시 못마땅해하셨던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영혼의 생존 조건을 구비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해도 막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언니, 언니가 좋아하는 돈 키호테 그 사람, 언니 그 사람 닮았다.” L의 그 말은 정확했다. 나는 미친, 여자 돈 키호테였다.
나는 ‘조다리’, 그러니까 맨해튼에서 뉴저지로 들어가는 조지 워싱턴 다리를 이곳 사람들은 그냥 조다리라고 불렀다. 운동 나가는 N을 따라 나가 그 조다리가 잘 내려다보이는 공원에 산책 나온 한국 사람들에게 광고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차라리 신문에 광고를 낼까?”
내가 흥분하면 N은 내 엉덩이를 때리면서 한마디 했다. “제발, 연애할 생각이나 좀 해봐. 아니면 그냥 조용히 운동이나 해서 살을 빼든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있던 곳에서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이 있던 세탁소 남자가 생각나긴 했지만 글쓰기에 관해 가지고 있는 욕구보다 그를 만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한 적은 기필코 단 한 번도 없었다. 도대체 쓰는 게 뭔데, 나는 미친 것 같았다.
8. 해캔섹의 라이팅 클럽
마침내 라이팅 클럽이 시작되는 날, 그날은 시월의 첫번째 일요일이었다. 그즈음 나는 꿈일기까지 쓰고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그 전날의 꿈에 대해 분석했다. 세면대에 떨어뜨린 목걸이가 검은 구멍 속으로 후룩 빨려드는 꿈을 꾸고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침 열시였다.
라이팅 클럽은 오후 세시에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늘이 맑기는 했지만 오후 날씨도 계속해서 맑을 것인지는 알 수 없었고, 며칠 전에 간단한 문의전화가 걸려오기는 했지만 누가 올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정말 웃기는 건 건들건들한 목소리의 남자가 “거기가 파이팅 클럽 맞나요?” 하고 전화를 걸었을 때였다. “파이팅요? 아뇨 죄송합니다만 라이팅 클럽입니다”라고 공손하게 응대했을 때 상대방이 여전히 걸걸한 목소리로 “라이팅요? 아 조명!”이라고 대답했다. 네일샵에 있던 모두가 다 깔깔거리고 웃었다. 배를 잡고 웃어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전단지의 한 부분이 찢어진 건지 어쩐지, 뭔가 이물질이 붙은 건지 어쩐지, 라이팅 클럽의 ‘라’가 파이팅 클럽의 ‘파’로 보이려면 어떤 시련을 거쳐야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전화가 걸려온 건 사실이었다. 차라리 김 작가처럼 소박하게 ‘글짓기 교실’이라고 할걸 괜히 잘난 척하고 라이팅 클럽이란 이름을 붙였나 후회스러웠다.
N은 텔레비전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911 신고전화 녹음을 계속해서 틀어주고 신고자의 목소리를 자막 처리까지 하면서 흔하디흔한 총기난사 사건을 지루하게 보여줬다. 정신이 멀쩡하던 사람도 하루 종일 그 방송을 계속해서 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정신이 이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