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 있던 아이가 사산되거나 임신 중일 때 혹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여성 작가들의 경우 평소보다 몇 배 더 쓰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갖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여자들은 왜 그럴까. 나 역시도 임신은 해본 적 없지만 어쩌면 머릿속으로는 나도 모르게 사산에 버금가는 충격을 입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이 나긴 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힘들었다. 굵은 노트에 한 줄씩 뭔가를 적어 나가며, 컴퓨터 앞 자판을 노려보며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발표도 안 하는 글을 뭣 하려고 써? 언니 몰골이 어떤 줄이나 알아? 물 먹은 하마 꼴이야.” N은 늘 나를 보며 비현실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물 먹은 습지동물처럼 잔뜩 부풀어 있다고 해도 글쓰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어차피 N처럼 단순한 사람은 절대로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너나 뭘 안 쓰지! 넌 진짜 이상해. 햇빛 드는 양지만 찾아다녀봐야 결국 얼굴만 타잖아.” 난 오히려 N을 마음 놓고 비난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김 작가와 떨어져 살았던 어린 시절에도 쓰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혼자 놀기 위한 대본이 필요했던 것 같다. 혼자만의 공간, 혼자만의 등장인물들, 혼자만의 날씨, 그래서 그런데 그랬거든 그건 아니고 등으로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했었다. 이야기만이 시간을 이겼다.
머리털이 다 꼬이고 팔다리가 잘려 나간 인형들,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악한 장난감에조차도 개별적인 이름을 붙이고 대화를 시켰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고 착각하면서 사랑을 확인하는 아름다운 말들을 미친 듯이 허공에 쏟아 붓곤 했었다. 어릴 때 그 놀이 습관이 지금의 글쓰기 습관으로 옮겨온 게 맞는다면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평생 글을 썼고 앞으로도 그랬고 누구 못지않은 유명 작가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세상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성공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어린 시절에 오로지 나만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게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어느 집이나 아이들이 자주 가지고 노는 인형들은 학대 받은 흔적이 역력했고 그게 바로 모든 아이들이 나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니까 말이다.
어쨌든 시간은 갔다. 몸은 미국에 있었지만 내가 쓰는 글들은 계동의 어느 골목, 또 언젠가 스쳐 지나갔던 서울의 어느 골목길을 배경으로 이어지고 끊어지고 또 이어졌다. 물론 며칠이 지나 읽어보면 또 그냥 그렇고 그런 허접한 쓰레기들에 불과했지만 쓰레기를 잔뜩 넣은 비닐 파일은 내가 애지중지한 야외용 튜브의 높이 정도로 쌓여갔다. 그것의 대가는 자주 터지는 코피와 어지럼증, 그리고 귀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였다. 귀에서 다음에 쓸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위한 문장들이 소곤거리고 있어서 그걸 받아 적어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놀라운 것은 나도 모르게 한번 시작한 스토리의 양이 점점 늘어나 굉장히 많은 분량의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중편 분량이 금세 넘어버릴 때의 짜릿함이란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려웠다. 그때의 기세라면 전쟁을 소재로 한 대하장편소설이나 삼대에 이르는 한 집안의 몰락을 그린 역사소설이라도 쓸 것 같았다. 나도 그즈음엔 서울에 돌아가면 김 작가처럼 허접한 잡지에라도 작품을 한번 보내볼까, 사기충천해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어느 때보다 열정에 넘친 나는 셀리네일샵에 오는 한국 손님들을 대상으로 라이팅 클럽을 같이 해보자는 내용을 담은 광고 전단지까지 만들었다. 물론 길 건너 가게에 갈 때 보면 내가 준 광고지가 쓰레기통 주둥이에 딱 걸려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한 채 펄럭이고 있기도 했지만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볼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