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즈음 N의 룸메이트가 이사를 갔다. 정말이지 너무나 불편한 한국인 집에 방만 하나 세 들어 살던 나로서는 N이 같이 살자고 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리고 N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해캔섹의 남미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있는 차고를 개조해 만든 집이었는데 천장이 너무나 낮았다. 또 집 안으로만 들어가면 알 수 없는 기름 냄새와 축축한 땅 냄새가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들어찼다. 다행스럽게도 N은 야외활동을 즐기는 체질이어서 주말만 되면 운동복을 입고 햇빛을 보겠다고 기어이 바깥으로 나돌았다. 그래서 N이 나가고 나면 비로소 그 집은 내 세상이 되었다.
물도 채우지 않은 튜브 속에 수시로 들어갔다 나갔다 하며 책도 읽고 글도 썼다. 전에는 뭘 쓰려고 해도 생각만 있고 쓸 수가 없어서 힘이 들었지만 글도 술술 풀려 힘도 들지 않았고 재미도 있었다. 우울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우울해서 글을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몹시 신기했다. 너무 우울하면 글을 못 쓴다는 건 사실이었다. “네일 아티스트 출신의 작가가 하나 나오겠네”라며 N이 나를 놀렸다. “너도 한번 써봐. 인생이 얼마나 깊어지는데.” N은 또 나를 놀렸다. “깊겠지, 얼마나 깊겠어. 언니는 다른 사람들보다 내장층도 지방층도 두터우니까.”
하지만 내가 쓴 글들이 정말 소설답다거나 문학적으로 뛰어나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그렇고 그런 글일 뿐이었다. 그러나 왠지 일거수일투족이 다 의미가 있는 것 같고 내가 느끼는 걸 표현하지 않으면 중요한 걸 다 놓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 뿐이었다. 시계가 째깍거리는 움직임도 기록해두어야 할 것 같고 그 순간만큼은 충만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언니, 글 쓸 때도 꼭 그렇게 눈화장을 해야 하는 거야? 언니 좀 이상해 보여.” N은 내 얼굴 앞에 거울을 갖다 들이대며 묻곤 했다. “너도 해봐. 다른 사람이 된 느낌, 괜찮아 이런 느낌.”
뭔가 성취감이 느껴지면 차갑게 식은 피자 한쪽을 들고 야외용 튜브 속으로 들어가 내가 쓴 걸 큰 소리로 읽었다. 글이 마음에 안 들면 튜브 속으로 휙 던지며 “쓰레기야 꺼져”라고 소리를 질렀다. 양치도 안 하고 세수도 안 하고 외출도 전혀 안 했다. 글 쓰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모든 생필품들을 미리 잔뜩 사다 두었다. 생리대, 휴지, 세제, 시리얼, 우유, 치약, 바퀴벌레 약 등등 필요한 건 다 있어서 운전도 못하지만 갑자기 밖에 나갈 일도 없었다.
평일엔 네일샵, 주말엔 글쓰기, 다시 평일엔 네일샵, 주말엔 글쓰기 패턴으로 반복적으로 시간이 흘러갔다. 잘 흘러가다가 어느 순간 참을 수 없이 우울해지면서 온몸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지나다니는 사람이라는 사람은 다 보기도 싫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 되면 견딜 수 없이 힘들어졌다. 어딘가로 숨거나 뭔가 극약 처방이라도 받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우울해지는 순간이 오면 대책 없이 가라앉았다. 너무 가라앉으면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하루에 겨우 세 줄, 아니 여섯 줄 정도를 쓰고 괜히 머리칼을 부여잡고 세수만 해댔다.
그러다 문득 변기에 걸터앉아 엄청나게 부어 오른 허벅지 사이에 걸린 팬티를 보면 싱겁게도 생리를 하고 있었다. 매달 생리를 하면서도 왜 매번 닥쳐오는 평범한 생리전증후군에 대해서는 예측이 불가능한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생리가 시작되고 나면 신경이 몹시도 날카로운 상태에서도 강렬하게 뭔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왜 난 생리현상의 흐름조차도 모두 다 글쓰기와 연관이 되고 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