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B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몸에 기운이 없다고 했다. B가 무슨 말끝에 작은 목소리로 “통닭 먹으러 갈까?”했다.
우리는 북아현동 추계예대 입구 골목까지 걸어가 대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있는 치킨 집에 들어갔다. 치킨 한 마리를 금세 다 먹고는 팝콘을 안주로 또 사회주의 강의가 시작되려고 했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이건 아니야.’ 내 입술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집에서 책만 볼 건데? 오빠 생활비를 내가 다 대고 있잖아.”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잠깐 주변 사람들이 일시에 침묵했다. 옆자리에 앉은 대학생들이 이마에 힘을 주고 우리를 쳐다봤다. B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가 먹다 내려놓은 닭다리를 다시 집어 들어 입속에 넣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B를 외면했다.
왜 그때 그런 말을 하게 됐을까. 내가 먼저 그런 말을 함으로써 동거의 숭고함을 깨버린 것 같은 자책감이 들어 몹시 괴로웠다. 그때 비에 젖은 먼지 냄새가 훅 끼쳤다. 배달 가는 사람이 열어놓은 문 밖에서 더운 기운이 몰려 들어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봄이었다.
이불가게, 반찬가게, 전파상, 서점들이 다닥다닥 붙은 북아현동 추계예대 앞길을 지나 사람들이 굴레방다리라고 부르는 고가 밑에 서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왜 행복하지 않은지 잘 알 수 없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슬그머니 계동의 글짓기 교실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아현동 시장 골목 입구가 보일 때 나는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B에게 말했다. “오빠 먼저 가. 난 시장 좀 돌아보고 갈게.”
백열등을 매단 시장 골목은 튜브 속처럼 환했다. 슬리퍼를 끌고 팔짱을 낀 채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골목길이 끝나면 또 다른 골목으로 이어지는 코너를 돌아 다른 골목길이 끝날 때까지 또 걸었다. 평생 그렇게 골목길을 방황할 것 같은 느낌, 길고 깊은 물고기 내장 속 같은 골목 안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뭉툭한 칼로 잘리는 고등어 몸뚱이를 내려다보면서 나도 모르게 순간순간 몸을 떨었다.
사람들이, 사람들이 거기 다 모여 서 있었다. 생활연기 전문 배우들처럼 콩나물 값, 갈치 값을 깎아달라며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구질구질하고 치사하고 역겨웠다. 자기가 먹은 술값도 못 내면서 소리를 질러대고 가래침을 뱉고 세상 탓을 해댔다.
그런데 정말 웃긴 건 그 순간에 내 입에서 갑자기 계동 사는 J 작가 욕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이다. 나는 J 작가가 내 앞에 있는 것처럼 갑자기 허리에 팔을 얹었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여기 이런 시장 사람들, 이 구질구질한 사람들 얘기를 그대로 옮겨 쓰면 그게 소설이냐구요? 대답 좀 해보시죠 J작가님.” 지나가던 여자가 미친 여자 보듯 날 쳐다봤다.
시장 골목길을 빠져나왔을 때 내 손에는 두부 한 모가 든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어떤 생활환경에서 글쓰기는 가능할까. 그즈음 가졌던 절실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서른 살이 되던 무렵에 가서야 찾을 수 있었다.
그 해에 어느 문화센터에 개설된 글쓰기 워크샵에 가입한 첫날, 튜터가 물었다. “당신은 왜 글을 씁니까? 당신은 왜 글을 쓰려고 합니까?” 평일의 금요일 저녁. 직장 일을 끝내고 뭔가 써보겠다고 모여든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가혹하면서도 또 어쩌면 가장 정확한 질문이었다. 모두 긴장해서 의자가 길게 끌리는 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던 강의 첫날. 튜터는 나이가 들어 안경을 쓰지 않으면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며 돋보기 같은 안경을 꺼내 쓰고는 수강생들을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