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쓸데없이 내 삶을 연장하려 하지 않으리라. 나는 나의 시간을 쓸 것이다.” B가 한 손을 들고 잭 런던이 생전에 했다는 말을 큰소리로 읽어주었다. 그 순간 B에게 잭 런던은 교주였고 희망이었다.
“내 말을 들어봐. 계급투쟁은 사회 발전의 한 법칙이다,라고 그는 말했어. 그는 계급투쟁을 유발시키는 이해 대립의 본질에 대해 환히 꿰뚫고 있었거든. 정말 놀라운 사람이지.”
처음 몇 분은 열심히 들었지만 오후 내내 세무서 매점의 커피 배달로 딴딴해진 종아리를 두드리다 보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이 나기도 했다. “그래? 근데 난 지금 오빠 얘기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나는 솔직히 말했고 그러면 B는 연필로 설명까지 써가며 이해시키기 위해 열을 올렸다.
“잭 런던은 주인공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입을 빌어서 교회마저도 신랄하게 비판했어.《강철군화》는 1900년대 초에 나온 소설이야. 그때 그는 자본주의 체제의 의미를 돼지의 윤리학에 기초해 있다고 말했어. 놀랍지 않니!”
그쯤 되면 난 정말 피곤해져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는 “어, 돼지? 놀라워”라고 대답했고 B는 투사처럼 흥분했다. “주인공 어니스트가 말하길, 교회는 자본가 계급에 의해 부양되고 있다고 했어. 그래서 교회하고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영 상관이 없다는 거지. 교회는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대하는 데 있어서 사용하는 그 무서운 잔학성과 야만성을 전부 묵인해주고 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어. 난 정말 이 대목을 읽을 때 머리끝이 주뼛했어.”
그러면서 그는 내가 뭔가 강력하게 동의해주길 바라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쯤 되면 나는 정말 반쯤은 잠이 들었고 그러다 입을 열어 한다는 말이라는 게 좀 그랬다. “근데 오빠 진짜 똑똑하다. 여기서 이렇게 책만 읽고 있기에는 진짜 아깝다.”
그 책에서 정작 나를 감동시킨 대목은 따로 있었는데 B와는 관점이 전혀 달랐다. 어니스트의 아내이자《강철군화》의 화자인 애비스는 남편을 가리켜 “사람들을 끊임없이 격발시키는 사람, 내리치는 망치와 같이 무자비한 공격 방식으로 사람들이 제정신을 잃게 만드는 투사요 운동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남편에 대해서 말하길 “그의 팔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입술은 내가 항의하거나 물리치기 전에 내 입술을 덮쳤다. 그는 그의 어마어마한 무적의 돌격으로써 내 두 발을 공중에 띄운 다음 그대로 휩쓸어가버렸다. 그는 청혼도 하지 않았다. 두 팔로 나를 껴안고 키스를 하면서 우리가 결혼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만들어버렸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나도 B가 그런 사람이길 바랐던 것 같다. 나는 그런 감정에 대해서 너무나 세속적이라고 스스로를 비판했지만 그런 감정은 내가 제어하면 할수록 점점 더 커졌다. 사실 내가 그 소설에서 반한 부분은 혁명이니 계급투쟁이니 하는 것보다 혁명가의 이면, 부드럽고 열정적이고 강렬하게 사로잡는 사랑에 관한 표현들이었다.
불을 끄고 어두운 방에 누우면 B는 무슨 마술에 걸린 것처럼, 조금 전에 열정적으로 말하던 달변가에서 겁 많은 어린아이로 변해 몸을 잔뜩 웅숭크렸다. 막상 손을 뻗으면 그의 몸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나를 향해 거의 손을 내밀지 않는 B, 나는 그를 찾느라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러다 지치면 뭐가 문제인지 잘 알지 못한 채 양을 몇백 마리쯤 세고 난 뒤에야 잠이 들곤 했다.
동거하는 우리의 일상은 어떠했을까. 나의 동반자, 나의 소울 메이트, 나의 우상 B는 하루 종일 집에서 놀았다. 나는 세무서 오층 계단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내리면서 밥을 벌었고 그는 하루 종일 집에서 책을 봤다. 나는 길을 걷다가도 ‘이게 옳은 걸까’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