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꽤 오래,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나는 저쪽의 빈 책상 앞에 앉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있는 거라고는 ‘결재서류’라고 쓰인 검은색 비닐 파일 하나와 볼펜 몇 자루가 다였다.
“어이, 미스. 커피 잘 마셨네.” 손님이 가고 다시 나는 처음에 만난 아저씨와 박 사장이란 사람 앞에 앉았다. “어이, 미스. 아까는 정말 미안했어. 우리한텐 아주 중요한 손님이라서 말이야. 그러더니 두 사람은 또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에 올려놓으며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말했다. “그래, 미스, 자기소개 좀 해봐.”
이력서도 안 읽어본 게 뻔했다. 이력서를 읽으면 될 것을 왜 나한테 또 내 입으로 직접, 하기도 싫은 얘기를 하라고 하는지 절망스러웠다. 나는 정말이지 짧은 내 인생에 대해서 더 할 얘기가 없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심심한 얘기를 하는 동안 처음에 만난 아저씨는 여전히 한쪽 발을 마사지하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또 박 사장이라는 사람은 지나치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얘기를 듣고 있어서 몹시도 부담스러웠다.
여의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한강에 빠져 죽을까 잠깐 고민했다. 강이 거기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있는 건 날더러 안심하고 빠지라는 의미 같았다.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었다. 커피를 타라는 것도 참을 수 있었고 갑자기 손님이 와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린 것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아저씨들이 말할 때마다 자기 발바닥을 만지는 행동을 하는 건 죽어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걸으면서 한강에 대고 외쳤다. “교양 있는 사람들과 일하게 해주세요.” 날씨도 춥지 않았고 바람도 세지 않았다. 한강 다리 하나를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지나가긴 처음이었다. 숨이 차고 힘이 들어서 온몸이 다 홀쭉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머릿속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발바닥을 만진 건 아니지만 그 이후로 이어진 여러 차례의 면접도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번은 무슨 무역회사라는 곳에 갔는데 명동성당 골목 건너편의 을지로에 있었다. 밖에서 보면 식당들이 즐비한 평범한 길이었는데 천장이 낮은 계단 위로 걸어 올라가면 모두 다 굴속같이 작은 사무실이었다. 작은 철제 책상 하나, 전화기 하나, 점퍼를 입은 여직원과 사장이 앉아 일을 봤다.
그 회사의 사장은 아주 늙은 할머니였다. 할머니 혼자 일본어로 된 자료를 입력하고 난 뒤 프린트를 해 교정을 보고 있었다. 타자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컴퓨터도 아닌 나무로 만든 것 같은 이상한 기계가 앞에 놓여 있었다. 도배도 하지 않은 벽면이 그대로 드러난 굴속 같은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아무리 착한 사람도 속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할머니 사장님이 앞에 앉으라고 해서 앉았는데 거리가 너무 가까워 눈 둘 곳이 없었다. “아가씨는 꿈이 뭐야?” 나는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못했다. 꿈이고 뭐고 빨리 면접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자기가 만든 일본어 서류를 큰 무역회사에 갖다 주고, 그들이 뭘 고치면 그걸 다시 받아다 할머니에게 전달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구하는 데 꿈 따위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아가씨는 너무 어두워. 사람이 성격이 어두우면 가까이 하고 싶지가 않아. 밖에 나가서 길거리 식당들을 봐요. 손님들이 어떤 집으로 제일 많이 들어가는지 알아? 밝고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들어가기 마련이야. 사람도 동물이야. 동물은 볕이 드는 쪽으로 몸이 움직이기 마련이거든.”
서울 시내를 혼자 돌아다닐 힘도 없으면서 잔소리를 하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은 덕지덕지 붙은 검버섯에, 어둡기로 말하면 나보다 백배는 더했다. 그때서부터야 비로소 내가 취직이 안 되는 이유는 어쩌면 인상, 그 잘난 얼굴 때문일 수도 있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채용은 안 하면서 갖가지 충고를 늘어놓은 경우도 좋지 않지만, 면접 과정 자체가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종로에 있는 어느 회사였는데 일단 지원자들이 아주 많이 모여 있었다. 특별하게 여직원만 채용한다는 광고를 보긴 했지만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많은 여자들이 종각 옆 한 빌딩의 꽤 넓은 강당을 꽉 메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