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시몬느 베이유를 ‘불꽃의 여자’라고 불렀다. “1934년 12월 4일 공장에 들어가다”로 시작되는 그녀의 노동 일기. 매일매일의 날짜와 요일, 노동 시간, 많은 숫자들―특히 불량품의 개수, 기계 이름, 임금 액수, 해고된 노동자들의 숫자로만 이루어진 이상한 기록이었다.
금요일 3월 1일. 10시 반까지 작은 쇠고리를 만듦. 그날 아침 3시간 반 동안 2,030개-시간당 580개, 개당 61.6쌍팀-를 만든 것을 포함해서 모두 2,131개. 13프랑 수입. 샤뗄에게 내가 그 전날 두 시간을 허비했다고 말하자 그는 “두 시간이라고?”라고 중얼거리더니 ‘허비된 시간’이라고만 적고는 몇 시간인지는 적지 않는 것이었다. 2시간과 3시간 반으로 기록.
그때의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들고 현명했더라면 바로 이것이 디테일이 살아 있는 훌륭한 묘사의 본보기였다는 것을 눈치챘을까. 아마 나는 나이가 들었더라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한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어느 날 탈의실에서 아름답고, 건강하며, 생기 있는 어떤 처녀가 하루 종일 10시간이나 일하고 나더니 말했다. “지긋지긋한 하루예요. 6월 14일에는 열심히 춤이나 춰야지.” 내가 말했다. “10시간이나 일하고도 춤출 생각이 나요?”
그러자 그녀가 웃으면서 대답하는 것이었다. “물론이죠! 밤새라도 출 수 있는걸요.” 그리고는 진지하게 “춤춰본 지 5년이나 됐거든요. 춤추고 싶은 생각이 들면 빨래하기 전에 추는 거죠.”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 노동의 현장인 공장이라는 공간에는 관심이 없고 시몬느 베이유가 어느 여학생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에만 열심히 밑줄을 그어댔던 것이다.
“우선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를 계속하지 않는 한 어느 분야에서도 아무 힘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너의 정신을 형성해야 된다. (…) 넌 한평생 몹시 괴로워해야만 하는 성격을 가진 것 같애. 난 그렇게 확신하고 있어. 넌 지금의 사회생활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열정적이고 과격해. 넌 홀로 사는 게 아니거든. 하지만 고통이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격렬한 기쁨도 경험할 테니까 중요한 것은 자기의 뜻을 이루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단련시키지 않으면 안 되지.”
‘정신을 형성해야 한다’, ‘자신을 단련시켜야 한다’는 문장의 의미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러나 고통이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니, 불꽃의 여자고 뭐고 시몬느 베이유는 정말이지 정신 나간 여자였다.
여전히 묘사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한 채 졸업식을 맞이했다. 김 작가는 나한테 얘기도 안 하고 글짓기 교실에 오는 허접한 인간들을 모두 다 내 졸업식에 초대했다. 어디서 빌렸는지 알 수 없는 가짜 흰색 모피코트를 입고 머리카락을 잔뜩 부풀린 김 작가의 모습은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였다.
K는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가족들 틈에서 공주처럼 웃고 있었고 R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 아파트 외벽의 가스관을 타고 어딘가로 가출을 한 게 틀림없었다. 김 작가는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나한테는 봉투 한 장을 주고 허접한 인간들을 다 데리고 식사 대접을 해야 한다며 시내로 가버렸다. 봉투 안에는 점심값이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