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시계를 보니 오후 세시다. 김 작가의 말에 의하면 나는 오후 세시에 태어났다. 언젠가 내가 외국에 나가 오래 있게 되었을 때 집을 떠나는 나에게 김 작가가 준 편지가 생각났다.
“너는 오후 세시에 태어났다. 오후 세시는 누구나 후줄근해지는 시간이지. 매일 오후 세시가 되면 진한 커피를 한 잔 마셔. 그리고 ‘난 지금 막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하며 살아. 뭘 하든 우울해하지 말고. 너는 오후 세시에 태어났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내가 널 낳았으니까.”
지금이 바로 오후 세시다. 내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시간. 한때는 저주의 시간이었다. 김 작가의 말대로 나는 커피를 한 잔 마신다. 그리고 커피값을 내고 커피집에 있는 사람에게 말도 안 되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커피집에서 나온다. 세시야 제발 빨리 지나가라!
다시 창덕궁의 담장을 따라 걷는다. 조금의 겨울바람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꽁꽁 닫아둔 대문들 사이를 훔쳐본다. 운동화, 구두, 털신 순으로 신발 몇 켤레만 커다랗게 보이거나 용도를 알 수 없는 가구들, 얼어 죽은 열대 화초만 눈앞을 꽉 채운다. 어떤 집은 그냥 비어 있다. 먼지와 그늘만 가득한 채로 그냥 비어 있다.
그 집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다 쓰러져가는 기와집이었다. 오른쪽 옆에 있는 반듯한 빌라의 담벼락 아래, 왼쪽에 있는 또 하나의 쓰러져가는 기와집과 담벼락으로 맞대고 서 있는 집이었다. 겨우 틈새에 존재하는, 알록달록한 천들을 이어서 붙인 이불을 덧씌워놓은 것 같은 인상의 매우 좁고 오래된 집이었다.
왜 그런지 그 집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김영철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니, 그 전에 타닥타닥 슬리퍼 끄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줄무늬가 쳐진 긴 파자마를 입고 연탄집게를 든 채 서 있던 김영철. 그의 뒤로 한 여자가 연탄난로를 끼고 앉아 석쇠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생선을 구웠다.
그 여자는 애석하게도 김 작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김영철의 어머님이거나 할머님이거나 이모님은 더더욱 아니었다. 물론 나도 아니었다.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우리 애인 춥지.” 김영철이 마루 끝에 걸쳐 있는 스웨터를 들어 여자의 어깨에 둘러주었고 여자는 미소를 지은 채 계속해서 생선을 구웠다. 석쇠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구워지던 생선, 그리고 그 지독하고 역겹고 징그럽던 생선살 타는 냄새.
나는 그 쓰러져가는 기와집 아래, 두 사람이 자연스레 배치된 그림을 가슴속에 고스란히 박은 채 오도 가도 못 하고 서 있었다. 겨우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좁은 골목에서 조금 비켜나는 것뿐이었다. 귀에서 피가 나올 것처럼 얼굴 전체가 아팠다.
그러고 보니 그는 전혜린의 에세이에 나오는 쟝이 아니었다. 게다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지적인 교사도 아니었다. 목소리도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같은 성대에서 나오는 다른 버전의 목소리. 줄무늬가 쳐진 파자마를 입은 엉덩이 사이로 방귀를 풍풍 내뿜을 것 같은 평범한 인상의 계동 아저씨들 중의 한 명이 김영철이었다.
그것으로 그를 극악무도한 나쁜 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 작가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순간 죽을 때까지 김영철을 봤다는 사실을 김 작가에게 얘기하지 않겠다고 거듭거듭 결심했다.
문학작품을 읽는 행위, 그것은 어차피 침대 위에 누워 다디단 과자를 먹으며 전쟁에 참가해 팔다리가 잘리는 주인공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시몬느 베이유의《노동 일기》를 펼쳐 들었다. 생각해보면 1934년, 1935년에 걸친 그녀의 공장생활 체험기는 건조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