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부터 미친 사람처럼 길거리를 싸돌아다녔다. J 작가가 말한 소설 쓰기의 기본인 묘사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소설이 다른 장르와 비교했을 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제일 비슷하기 때문이야. 설명하려 들지 말고 보여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라구.”
J 작가의 말을 들었을 때 먼저 화가들이 떠올랐다. 화가가 눈앞에 꽃병을 하나 세워두고 요리 조리 쳐다보며 화폭에 옮겨 담는 모습 말이다. 그렇다면 그림을 그리지 왜 소설을 써, 정말 그렇다면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화방에서 데생하는 것부터 배워야 하는 게 아닌지, 구체적인 모습이라는 게 뭔지 혼란 그 자체였다.
J 작가의 설명에 기초해 다시 읽어본 K의 편지 또한 머릿속의 생각들을 장황하게 나열한 유치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절망에 빠졌다. 어디서 제대로 된 샘플을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것이 진짜 글일까, 어떤 것이 진짜 소설일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허공에 대고 머리를 조아리기도 하고 턱을 괴고 앉아 멍하니 글짓기 교실 천장을 올려다보는 시간이 자꾸만 반복됐다. 지나치게 신경을 썼던 것일까. 전보다 좀 잦아드는 것 같아 안심했던 이마의 여드름이 다시 솟아났다.
온몸의 신경줄이 꽉 막힌 것 같아 밥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았다. 바람 부는 소리만 크게 들려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쓸데없이 예민해져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내 인생에서 그때처럼 어떤 깨달음이 저절로 찾아와주기를 기다렸던 적은 없었다.
간절히 원하면 얻을 수 있다는 말을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믿는 걸까. 아니면 내 몸이 나보다 먼저 그 답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머리로 답을 찾을 수 없게 되자 몸이 먼저 길 밖으로 뛰쳐나갔다. 봄비가 좍좍 내리던 어느 날 나는 온통 붉은 줄이 그어진 치욕의 원고지 뭉치를 들고 우산을 쓴 채 무작정 계동 골목으로 뛰쳐나갔다.
생각만 해도 웃기는 일이었다. 김 작가가 처녀 시절에 입다가 옷장 구석에 넣어둔 베이지색 바바리코트를 입은 내 모습은 상상만 해도 부끄럽다. 그런 꼴로 어깨에 힘을 주고, 눈을 똑바로 뜨고 저만치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입만 열지 않았지 사람들에게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도대체 묘사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와이셔츠 다림질에 열심인 세탁소 사람들의 행동도 미장원 바깥 창문에 붙여놓은 팔랑거리는 미용잡지 한 페이지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하물며 지나가는 개의 뒷발질,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는 검은 비닐봉지의 움직임조차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멈춰 섰다 가곤 했다.
그때 계동의 현대건설 빌딩 자리에 휘문고등학교가 있었는지 이미 현대건설 빌딩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해질녘에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모습조차도 묘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 기억나는 걸 보면 현대건설 빌딩이 있었던 것 같다.
큰 빌딩이 계동을 막고 서 있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럭저럭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그 건물 앞 버스 정류장에 초조한 얼굴로 앉아 있던 이상하게 생긴 여자애를 누군가 주의 깊게 봤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어느 곳보다 잘 묘사하고 싶었던 곳은 사실 공간 사옥이었다.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검은 벽돌 건물은 늘 보는 사람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차갑고 무거운 기운이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으면서도 담쟁이덩굴로 인해 그 색깔이 늘 달라 보였다고 할까. 담쟁이덩굴을 비추는 햇빛의 양에 따라 건물은 순간순간 달라 보였고 보는 각도에 따라 또 느낌이 달랐다.
그렇게 공간 사옥 주변을 헤매다 큰길 쪽으로 나오면 커다란 차들이 내 몸 옆으로 바짝 붙어 휙휙 지나갔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어느새 불빛들이 차도에 꽉 찬 저녁 무렵이 되어 있곤 했다. 왜 아침이면 희망에 가득 차 있다가도 해가 지고 나면 그토록 집착하던 일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하찮게 느껴지기 시작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