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와 내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었었나. 그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다만 우리는 그녀를 ‘울프 여사’라고 불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나는 서른이 넘어서 읽은 《댈러웨이 부인》을 더 많이 기억한다. “꽃은 자신이 직접 사겠다고 댈러웨이 부인이 말했다”로 시작되는 1920년대의 영국 소설. 강한 것 같으면서도 왠지 한없이 약하게 느껴졌던 소설이었다.
어떤 경우 모조품이 진품의 가치를 더욱 빛내주기도 한다. 이 소설의 리라이팅 판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정말 모조품이라고 해야 할까. 버지니아 울프를 소재로 쓴 소설 《디 아워스》를 토대로 만든 같은 제목의 영화에서도 현대판 댈러웨이 부인의 첫 대사는 같았다.
“꽃은 내가 직접 살게.” 내 나이 또래의 여자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메릴 스트립과 니콜 키드먼을 통해 댈러웨이 부인을 기억한다. 늘 파리하게 떨리던 울프 여사의 몸짓이 떠오른다. 그것도 오리지널 소설을 읽을 때보다 더욱 생생히.
할머니는 한쪽 다리를 끌며 낡은 한옥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몸을 돌려 발끝을 올리고 담장 건너편의 창덕궁 안을 들여다보려고 애쓴다. 너무 높다. 그래서 이번엔 제자리에서 껑충 뛰어본다. 그래도 너무 높다.
어차피 그때도 난 창덕궁 안쪽의 궁궐의 삶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이라고는 창덕궁 담장 밖의 원서동 그 어딘가에 있다고 추측되는 쟝의 집, 그것뿐이었다. 여러 차례 미행의 결과로 나는 그가 계동에서 나와 북촌길을 지나 창덕궁 담장을 따라 걸어가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에 그가 교사라고 했을 때 김 작가와 나는 그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계동길 맨 꼭대기에 있는 중앙고등학교를 떠올렸다. 그러나 근사한 학교 건물 앞에 서서 아무리 기다려도 김영철 선생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동적으로 계동길 중턱에 있는 대동정보산업고등학교 앞으로 가 그를 기다렸다. 학교 위치가 높다란 곳에 있어 정문 앞에 서서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나는 자주 그곳에 갔다. 하긴 그때 그가 근무하는 학교와 집을 알았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는 정말 예의 없는 인간이었다. 내가 그리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종이가 이십 장이 되도록 무슨 말을 적어서 건넸다면, 받았다고 읽었다고 반응을 보이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서 곧잘 중얼거렸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런 얘길, 하기 힘든 얘기를 하는데 그럴 수가 있어요?” 허공에 있는 쟝에게 시위하듯 말하는 연습을 여러 차례 했다. 하지만 길고긴 겨울이 다 가도록 그는 나에게 아무 말도 안 했다.
내가 보낸 가장 지독한 겨울이 흘러가고 있었다.
K는 상태가 점점 안 좋아졌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고집도 세고 완전히 이기주의자 그 자체였다. K를 만나고 나면 완전히 기진맥진해져서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어깨를 짓눌렀다. 늘 빛나던 K의 언어 감각도 몹시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평소와 달리 잘 와 닿지 않았다. 어느 순간 K는 내게 과거의 사람으로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참다못한 나는 어느 날 K를 향해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말았다. “병원 간호사는 꼭 졸업을 해야만 시켜준대? 너 빨리 흰 옷 입고 천사 같은 간호사나 됐으면 좋겠다. 아빠한테 부탁 좀 해봐.” K는 그날 날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결국 또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K처럼 차라리 아무 때나 울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왜 그런지 눈물도 잘 안 나왔다.
나는 정말이지 K가 흰 옷을 입고 천사가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내 몸 안에서 뭔가 형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최소한 의리 때문에라도 K를 먼저 버릴 수 없다면 간호사의 흰 옷만이 그걸 할 수 있다고 나는 믿었다. 나는 K가 안정되어 평화롭게 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