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 난 K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리고 말았다. 편지로 읽는 K의 글은 지적이고 합리적이고 우아했지만 어리광, 아니 땡깡을 피우는 K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글과 사람은 같다, 같지 않다? 전혀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는 말들은 순간순간 정곡을 찔렀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의 성격은 그런 건가, 울고불고 하는 와중에도 K의 단어 구사 능력은 빛을 발했다. “널 만나니까 세상이 평화로워졌어.”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평화란 분쟁 지역 의 갈등 종식을 위한 교황의 메시지에서나 쓰는 단어였지 개별적인 연애 관계에서 쓰는 단어는 최소한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칸딘스키의 그림 한 점이 어정쩡하게 걸려 있는 풍문여고 골목의 분식점에서 라면을 먹었다. 집에서는 보통 라면 두 개 정도는 먹어야 배가 부르고 느긋해졌지만 하나로도 충분했다. K는 나와 데이트 할 때마다 모든 경비를 다 혼자 지불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염치없기도 하고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그러나 난 그때 정말 라면 한 그릇 살 돈도 없었다.
K와 글짓기 교실로 돌아갔을 때 김 작가와 쟝은 수업 중이었다. 우리가 들어가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었다. 최소한 엄마라면 자식새끼가 저녁 시간에 밥은 먹고 다니는지 체크했어야 하는데 아예 그런 발상 자체가 불가능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었다. 쟝은 내가 준 편지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표정만 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김 작가가 일어나 방문을 끝까지 닫아버렸다. 나는 다시 문을 조금 열어 얼른 틈을 내었다. “왜 그래? 누구야?” K가 고개를 옆으로 내밀어 글짓기 교실 쪽을 쳐다봤다.
“응 있어.” 난 대충 얼버무리고 방구석에 깔린 이불 속으로 몸을 넣었다. K도 내 옆에 따라서 누웠다. 누워 있기는 했지만 내 몸은 글짓기 교실에 있는 쟝의 옆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얘기에 너무 집중한 걸까. 바닥이 따뜻해서 금세 노곤해졌다. 둘 다 사랑싸움을 하느라 너무 지쳤던 것이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글짓기 교실은 불이 꺼진 채 고요했다. 창밖은 어두웠고 안채 쪽에서 할아버지가 전화 수화기를 들고 목청 높여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끔 걸려오는 자식들의 전화였는데 할아버지는 늘 “안 들린다, 난 안 들려”라는 말만 하고는 수화기를 할머니에게 넘겨주는 게 끝이었다.
얼마나 잤는지 알 수 없었다. K는 모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온몸이 아팠다. 기분도 아주 우울하고 저혈압으로 머리를 쳐들 수도 없는 순간처럼 방 안이 온통 우울 천지였다. K의 어깨에 이불을 덮어주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애인임에 틀림없었다. 나를 찾아와주고 얘기를 나눠준 친구이자 애인이 바로 옆에서 자고 있다는 게 아주 이상했다. 그것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글짓기 교실에서. 그러나 K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안채 쪽에서 할머니의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한 번도 우리 집 방문을 연 적이 없었다. “홍시 갖다 놨다.” 할머니가 다시 신발을 끌고 마당까지 가서 신발을 벗고 마루 위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네 할머니.” 나는 문을 열고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긴 홍시 두 개를 방 안으로 들여놓았다. 차가운 껍질을 손톱으로 떼어내 입안에 넣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무심코 쳐다본 할머니의 기와집 지붕 위 하늘이 온통 파란색이었다. 그 하늘에 김 작가와 영철 씨가 온몸을 끌어안은 채 둥둥 떠 있었다. 샤갈의 그림 속 남자와 말년에 샤갈의 애인 바바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등장한 그림처럼. 그 환영은 내 마음을 통째로 무너뜨리고 말았다. 나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글짓기 교실을 내다봤다. 그곳은 그냥 무덤처럼 어두웠다.